어떻게 그녀들은 위안부가 됐을까

[서평]고혜정의 장편소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

등록 2006.06.03 19:52수정 2006.06.0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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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혜정의 장편소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 겉표지

고혜정의 장편소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 겉표지 ⓒ 소명

책장을 펼쳤다. 한 여기자의 생활이 펼쳐진다. 거기에 고혜정이라는 사람의 여정이 오버랩 되었다. 작가의 삶과 소설과는 무관하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줄곧 정신대 문제에 천착하며 살아왔던 작가의 삶이 중첩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액자식 구조로 되어있는 고혜정의 소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는 위안부로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마당순'라는 할머니를 인터뷰하기 위해 줄곧 좇아 다녔던 한 여기자 '나'가 죽음을 앞둔 마당순 할머니가 남겨놓고 간 일기를 토대로 소설이 진행되고 있다.


처음 책장을 펼쳤을 때, '위안부'에 관한 뭐 그냥 그런 소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작품 속의 화자인 나(마당순)의 삶의 질곡이 펼쳐지는 순간 난 어쩔 수 없이 조선인이 되어야 했고, 마당순이가 되어야 했고, 힘없는 백성의 눈물을 흘려야 했고, 분노마저 드러낼 수 없는 연민을 나도 모르게 표출시켜야만 했다.

소설은 시종 열여섯,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를 끌려간 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다루면서도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고 서글플 정도로 담담하다.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증과 전쟁에 대한 애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궁창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 그러한 그녀들을 짐승 같은 행위로 짓밟는 또 하나의 그들의 야만성과 전쟁, 이러한 것들에 대한 마당순이의 생각들을 따라가 보자.

오마당순. 소설 내화(內話) 속의 주인공 이름이다. 마당순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엄마가 마당에서 낳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당순은 몰래 학교에 다닌다. 아버지가 학교에 못 가게 하기 때문이다. 몰래 학교에 다니면서 오빠의 숙제를 도와준다. 하지만 오빠가 일러바치면서 학교에 못 가게 된다. 그리고 도화 읍내로 나가 '애보개' 일을 하게 되면서 '하루에'라는 일본 이름을 갖게 된다.

애보게 일을 하다 주인 남자에게 성적 모독을 당하고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종군위안부로 징발되어 남태평양의 낯선 섬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아키코라는 이름을 다시 갖게 된다. 마당순이 종군위안부로 선뜻 나서게 된 이유는 아버지를 징용대상자에서 면제시켜주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약속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순이의 동경의식 때문이다.

종군위안부로 끌려가고


낯선 섬으로 떠나는 배에서 마당순은 ‘소오세끼’라는 일본인을 만나게 된다. 그는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전쟁터에 가는 청년인데 본래 그는 조선인으로 어릴 때 집을 떠났던 그녀의 오빠다. 그와의 인연은 전쟁 내내 지속되고 비극적인 운명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 복선의 기능을 가진다.

섬에 도착한 순이와 동료들은 전쟁에 나선 병사들에게 성전(聖戰)의 수행도구가 되어 유린당하게 된다. 그녀들은 돌격대로, 때론 특공대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도구가 되어 할퀴고 찢기고 정신과 육신의 폐허가 되어간다.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이내 산산이 부서지고 병사들의 공중변소 같은 신세로 전락해 버린 그녀. 그래도 그녀는 살아간다. 그녀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고 고통스러워 할 때마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짓이겨지고 뭉개진 나의 자존감을 되찾고, 아픔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 죽음의 유혹에서 한 발 비껴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순이가 어릴 때 꾸었던 '달래깨비' 꿈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오뉴월 뿌리 채 뽑아 자갈밭에 던져 말라 비틀어졌는데 다시 살아난 달래깨비, 이는 순이의 삶이었고 순이의 억센 생명력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게 마당순은 ‘달래깨비’처럼 살아갔다. 그러는 중에도 위안부 생활은 고통 자체였다. 그 일면을 한 번 보자.

“굶주린 이리떼 같은 병사들이 돌아가고 나자, 나는 녹초가 되어 늘어졌다. 매일 밤, 그날 받은 입장권을 모아 주인과 계산을 해야 하지만, 그것도 포기했다. 죽음과도 같은 갚은 잠을 자고 다음 날 일어나 입장권을 세어보니 예순 세 장이었다.”

입장권은 병사들이 주인에게 끊어오는 전표와 같았다. 주인은 빚을 갚아야 한다며 하루에도 수십 명씩 병사들을 받으라고 닦달했다. 그렇게 그녀들은 매일 밤 죽음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그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터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삶을 마감하는 친구도 늘어났다. 미쳐 가는 친구도 생겼다. 그들에게 희망이란 절망의 다른 이름이나 마찬 가지였다.

그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들의 이러한 고통과 절망은 그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들은 역사의 약자로 희생을 당하는 존재일 뿐이다. 아무도 그녀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그들의 소리, 그들의 고통, 그들의 심정을 외면한 채 그녀들만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하고 있다. 마당순의 입을 통한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여기로 끌려왔을 것이다. 우리를 동원한 것이 민간업자든, 총독부 관리든, 순사이든, 구장이든, 조선인 앞잡이든 그들은 다 그 거대한 손 밑의 하수인들이다. 전쟁을 지휘하는 수뇌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일본의 입장과 한국의 입장이 다르다는 견해를 천명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아직도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뜨거운 문제로 책임 공방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애초부터 여성을 위안부로 사용할 생각을 가지고 전쟁을 했던 그들은 아무런 도덕적 책임마저 지려고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병사들의 발악적인 행위도 극에 다다르고, 함께 끌려왔던 동료들도 죽어간다. 이에 마당순(아키코)은 그녀들의 나무인형을 만들게 된다. 나무 인형을 만들기 위해 순이와 동료들은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나무인형을 만들면서 그녀들은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함께 조국을 떠나왔다 죽은 아흔아홉 명의 목각 인형을 만들면서 그녀들은 스스로 곡을 붙인 아리랑을 부른다.

그녀들의 아리랑 가사에는 그녀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그녀들은 노래를 부르며 고향을 생각하고, 부모형제를 생각하고,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아흔아홉 개의 나무인형을 다 만든 날 마당순은 처음으로 악몽 없이 잠을 자게 된다. 나무인형이 그녀의 수호천사가 된 것이다.

망각 속에 버려둘 수 없는 우리의 역사

그러는 중에 마당순은 소오세끼와의 인연을 계속 유지하게 되고, 포탄이 떨어지는 어느 날, 방공호에 대피한 그들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게 되고 고향 이야길 하게 된다. 그러는 중에 소호세끼(오영식)는 마당순이 자신의 동생임을 알게 되고, 잠수어뢰(인간어뢰)를 자청해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오빠(소호세끼)의 죽음을 알게 된 마당순은 바닷가로 달려가 오열한다.

역사의 비극이고, 운명의 비극이고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살펴봤듯이 이 소설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로 꾸며진 소설이 아니다. 그동안 작가가 위안부여성들을 인터뷰하고, 그녀들의 삶을 직접 목도하면서 논픽션이나 다큐로 풀어내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 형상화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낯선 섬에 끌려간 여성들, 세월이 흘렀다고 그저 망각 속에 버려둘 수는 없다. 왜?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역사이니까.

덧붙이는 글 |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의 작가 고혜정은 정대협 실행위원,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수십 명의 생존자를 인터뷰 했고, 증언집을 냈으며, 십여 차례 중국 전역을 누비며 중국잔류 생존자들을 찾아내 사진을 찍고 다큐멘터리 영상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이런한 체험을 바탕으로 형상화 한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의 작가 고혜정은 정대협 실행위원,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수십 명의 생존자를 인터뷰 했고, 증언집을 냈으며, 십여 차례 중국 전역을 누비며 중국잔류 생존자들을 찾아내 사진을 찍고 다큐멘터리 영상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이런한 체험을 바탕으로 형상화 한 작품이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

고혜정 지음,
소명출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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