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용진이의 풍선아트 자격시험 도전기

등록 2006.06.05 21:51수정 2006.06.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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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차에서도 공부하는 용진이

기차에서도 공부하는 용진이 ⓒ 이선미

6월 4일 아침 8시 45분. 헐레벌떡 남춘천역을 달려가니, 용진이가 팔자걸음으로 배를 내밀고 슬슬 걸어 나옵니다. 한 손에는 풍선아트 책을 쥐고 말이지요. 그 날은 바로 용진이가 풍선아트 자격검정시험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는 날이었습니다.


막상 역에 도착해보니, 9시 기차로 알고 있던 경춘선 기차가 알고 보니 8시 45분 기차였습니다. 아뿔싸. 저 때문에 차를 놓친 것을 생각하니 용진이한테 미안해졌습니다. 다음 기차인 9시 35분 기차를 기다리며 역 대합실에서 나란히 앉아 있는데, 용진이가 불안했는지 자꾸 기출문제와 풍선아트 책을 뒤적입니다.

"어제 몇 시에 잤니?"
"3시요."

이런. 공부를 하다가 새벽 3시에 잠들었다고 합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철에도 그렇게 공부는 안 할 텐데, 새벽 3시까지 공부했다는 용진이의 말이 잘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용진이가 풍선아트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부터입니다. 공부방 자원활동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들에게 풍선아트를 가르쳐주고는 했는데, 용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곧잘 따라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손힘이 약하고 매듭짓기에 무리가 있어 힘들어했고 고학년 아이들의 경우 몇 번하다가 심드렁해지는데 덩치가 산만한 용진이는 큰 손으로 오밀조밀 꽃이며, 강아지며 곧잘 만들어냈습니다.


용진이의 실력이 너무 아까워 고민하던 중, CJ 재단에 도움을 요청해 지난 겨울부터 용진이의 풍선아트 강습비용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수업을 받게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씩 꾸준히 수업을 받고 실습을 하면서, 꾸러기어린이도서관 개관식때도 선생님의 코치아래 손수 큰 풍선아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a 공부내용

공부내용 ⓒ 이선미

처음 용진이를 봤던 때를 생각해봅니다. 목소리가 무척 크고 소리를 잘 질러 작게 말하라고 몇 번이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당탕탕' 공부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면 그 속에 용진이가 있었습니다. 용진이가 6학년 때의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용진이는 공부방에 '맏형님'이 되었습니다. 2년이 지나면서 용진이는 동생들 숙제를 봐주기도 하고, 아이들 싸움이 일어날 때도 잘 조율해줍니다. 걸핏하면 시비를 걸고, 목소리를 높이고, 힘쓰려고 하는 용진이가 점점 달라졌습니다.

용진이는 풍선아트를 자신의 취미이자 특기라고 생각합니다. 공부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잘하는 것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용진이의 웃는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끈기 있게 무엇을 해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된 일일까요.

용진이는 근 6개월의 풍선아트 공부를 마치고 6월 4일, 그렇게 기대하던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올림픽 공원을 가기위해 왕십리에서 5호선을 갈아타는 게 왜 그리 헷갈리던지.

"선생님, 선생님을 못 믿겠어요."
"야! 초행길을 잘 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 안내판보고 어떻게든 찾아갈 수 있으면 되는 거지."

a 풍선아트 시험 교실 배치표

풍선아트 시험 교실 배치표 ⓒ 이선미

왔다 갔다 하는 저를 보고 용진이는 머리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춘천에서 출발한지 3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올림픽공원 근처에 위치한 오륜중학교.

용진이는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수험표를 받고 제 6교실에 앉았습니다. 죄다 여자들이고 남자들고 별로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중학생은 더더욱 눈에 띄지 않았지요. 용진이는 1시부터 오후 4시 20분까지 필기와 실기시험을 모두 마쳤습니다.

용진이가 시험을 보는 동안 갈 곳이 없어 벤치에 앉아 '나무야나무야'만 읽던 저에게 띠리리 문자가 왔습니다.

"선생님. 이제 가랜드만 남았어요."

도대체 가랜드가 뭐야? 문자를 보고 도대체 그게 뭔지 알 수 가 없어 그냥 알았다고 곧 간다고 답문자를 보냈습니다.

용진이가 시험을 보는 제12교실에 가니 가랜드(풍선장식의 하나)를 다 만들고 용진이가 시험관에게 만든 과제물을 제출을 합니다. 시험관이 그 가랜드인지 뭔지 하는 과제물을 보고 용진이 얼굴을 다시 한 번 보는 것을 보니 왠지 제가 뿌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험장을 빠져나오면서 용진이가 한마디 합니다.

"제가 떨어지면 필기 때문 일거예요. 안 본데에서 3문제나 나왔다니깐요."
"괜찮아. 어쨌든 최선을 다한 거잖아. 이제 청량리가서 밥이나 먹고 기차타자."

a 저기 홀로 떨어진 풍선뭉치보이시죠? 저게 가랜드라고 합니다.

저기 홀로 떨어진 풍선뭉치보이시죠? 저게 가랜드라고 합니다. ⓒ 이선미

지하철을 타는 내내 실기는 괜찮은데 필기가 걱정이라며 주절주절 떠드는 용진이를 보니 약간 미련이 남는가 봅니다.

열다섯 살 용진이의 첫 도전. 무엇인가 이루려고 하는 그 소중한 도전을 옆에서 보니 울컥 감동의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만약 합격이 되지 않더라도 용진이가 서울까지 올라가 풍선아트 시험을 봤다는 것 자체가 용진이에게는 큰 경험이라는 것을 압니다.

늦은 밤, 춘천에 도착해 집으로 가는 용진의 피곤한 어깨를 보며 '다시 한 번 파이팅!'이라고 외쳐보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선미 기자는 춘천에서 <꾸러기어린이도서관>과 <꾸러기공부방>에서 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선미 기자는 춘천에서 <꾸러기어린이도서관>과 <꾸러기공부방>에서 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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