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푸른 날엔 산이 그립다

[사진] 진해 장복산에서 안민고개로 혼자 떠난 산행

등록 2006.06.06 11:19수정 2006.06.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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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잦은 비로 인하여 나는 파란 하늘이 부쩍 그립다. 그래서 늘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토요일을 꿈꾼다. 지난 3일 토요일은 운이 좋게도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을 만큼 맑은 날씨였다.

나는 퇴근을 하자마자 장복산(582.2m, 경남 진해시)에서 안민고개로 가는 코스를 잡고 혼자 산행을 나섰다.


파란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자  하늘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파란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자 하늘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김연옥
진해 시가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장복산 기슭의 넓은 녹지대에 조성된 장복산공원. 그 인근에 있는 진흥사에서 낮 2시 20분쯤 산행을 시작했다.

숲길은 눈이 부시도록 짙은 초록이었다. 이 세상 너머의 새로운 세계 속으로 발을 내딛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싱그러운 초록이 내 몸 구석구석 배어드는 것 같았다.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들리는 뻐꾸기 우는 소리. 고요한 숲속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그 울음소리는 부드러운 음악처럼 내 가슴에 스며든다. 그러나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는 한편으로는 얄미운 새이기도 하다.

문득 오래 전에 본 영화로 잭 니콜슨 주연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생각난다. 강자가 지배하는 사회체제 속에서 비참한 희생을 강요당하는 약자를 그렸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그 체제에 유쾌한 반항을 시도하는 맥머피로 분한 잭 니콜슨이 결국은 전기치료실로 끌려가 완전히 무력한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가한 시골 풍경 같은 소박한 샘터.
한가한 시골 풍경 같은 소박한 샘터.김연옥
산행을 하다 목을 축일 수 있는 예쁜 샘터를 보게 되면 마치 반가운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그날 장복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까지 40분 남짓 걸렸는데, 진흥사 입구에 있는 것까지 포함하여 약수터가 세 군데나 된다.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시 긴 나무 의자에 앉아서 쉬면 마음마저 상쾌해진다.


능선에서 왼쪽으로 25분 정도 가면 장복산 정상이고 오른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안민고개에 이른다. 나는 갈림길에 세워져 있는 소박한 정자에 앉아 은빛 바다를 바라보며 간단한 점심을 했다.

장복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지난 해 친구와 같이 가본 적이 있어 나는 안민고개를 향해 능선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흙길을 걸으면 행복하다.
흙길을 걸으면 행복하다.김연옥
흙길을 걸으면 행복하다. 어릴 적에 도시에서 자랐지만 딱딱하고 삭막한 아스팔트길보다는 흙길이 푸근하고 정겨워서 좋다. 내 마음마저 느긋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부드러운 흙길의 감촉에 끌려 산을 더욱더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해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진해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김연옥
그날 내 마음을 몹시 설레게 한 건 드넓은 파란 하늘이었다. 한없이 맑고 투명한 파란색으로 내 마음이 환해졌다. 사실 살아가는 일에 바빠 한동안 나는 하늘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날 파란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자 하늘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햇빛 부스러기 곱게 내려앉은 은빛 바다도 내 마음속에서 출렁대고 있었다.
햇빛 부스러기 곱게 내려앉은 은빛 바다도 내 마음속에서 출렁대고 있었다.김연옥
찬란한 여름 햇살도 내 마음속으로 부드럽게 밀려왔다. 그리고 햇빛 부스러기 곱게 내려앉은 은빛 바다도 내 마음속에서 출렁대고 있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에 가슴이 벅찼다. 한순간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평화를 노래하는 고독한 여행자가 되었다.

때때로 마주치는 큼직한 바위도 겉보기와 다르게 위험하지 않아 아슬아슬한 느낌보다는 멋스럽다. 오른쪽을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바다를 끼고 있는 진해 시가지가 보이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활기 넘치는 창원이다. 왔던 길을 뒤돌아보면 멀리 장복산 정상이 보이고 앞을 바라보면 시루봉의 모습이 아득하다.

멀리 장복산 정상이 보인다.
멀리 장복산 정상이 보인다.김연옥
아득하게 보이는 시루봉.
아득하게 보이는 시루봉.김연옥
진해와 창원을 가르는 안민고개에 도착한 시간이 낮 4시 40분. 나는 동물들이 이동하는 통로를 고려하며 세웠다는 안민생태교를 지나 나무 그늘 아래 긴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산뜻한 차림으로 신나게 산악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남자가 내 눈길을 끈다. 그는 어디까지 달리는 걸까. 그 길로 계속 가면 시루봉에 이를 텐데.

안민생태교.
안민생태교.김연옥
나는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기로 했다. 하산 길에는 살랑살랑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는 풀꽃에서 여름 향기가 흩날렸다. 똑같은 길인데도 하산 길의 느낌은 또 다르게 와 닿는다.

안민고개에서 장복산 쪽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안민고개에서 장복산 쪽으로 되돌아가는 길에.김연옥
그날 산행에서 실컷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참 행복했다. 그래서 몸은 무거워도 마음만은 새털처럼 가벼워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어느새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서마산IC→2번 국도→장복터널→장복산공원→장복산→안민고개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서마산IC→2번 국도→장복터널→장복산공원→장복산→안민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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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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