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창극'으로 부활하다

창극 <적벽가> 전주 공연 관람기

등록 2006.06.07 15:24수정 2006.06.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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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이틀 동안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는 국립민속국악원이 제작하고 전주대학교와 KBS 전주방송총국 공동 주최하는 창극 <적벽가> 전주 초청 공연이 막을 올렸다. 이미 3월 말 남원의 민속국악원을 시작으로 4월에는 진도의 남도국악원에서 공연을 선보인 바 있긴 하다. 그래서 이번 전주 공연은 창극 <적벽가>가 본격적으로 일반 관객과 가까워지려는 시도이며, 대중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현전하는 판소리 다섯마당의 하나인 <적벽가>는 잘 알려진 대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화공으로 무찌르는 ‘적벽 대전’을 그린 것이다. 때문에 여러 장수가 등장하고 수많은 전쟁을 묘사하는 부분이 많아 쉽게 공연 무대에 올릴 수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 창극(판소리를 배역에 따라 나누어 부르고 무대 배경에 의상과 연기를 추가한 것)으로 옮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a 창극 <적벽가>.

창극 <적벽가>. ⓒ 국립민속국악원

2막 10장의 창극 <적벽가>는 국립민속국악원이 1998년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판소리 다섯 마당(흥부가, 수궁가,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을 창극화하는 사업의 마지막 결실이기도 하다. 이 창극은 명창 송순섭이 작창하였으며, 민속국악원의 전속 단원은 물론 송순섭의 제자들과 전주대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한 이전 창극과는 차원을 달리하여 30인조의 국립관현악단이 현장에서 창작곡과 효과음을 연주한 것도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번 전주 공연은 박병도 전주대 교수가 연출했으며, 심인택 우석대 교수가 지휘를 맡았다. 전주대학교는 전통문화콘텐츠 엑스에듀(X-edu) 사업단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적벽가>의 창극화 작업에 교수와 학생들이 동참했다는 게 눈길을 끌었다.

‘충실한 전승’과 ‘창조적 계승’ 사이에서

이제 2일 금요일 저녁 공연으로 돌아가면, 전반적으로 창극 <적벽가> 전주 무대는 두 차례(남원과 진도)의 시행착오를 겪어서인지 ‘무난하고 매끈한’ 인상을 주었다.

막간 쉬는 시간(15분)을 포함하여 2시간 반에 이르는 비교적 빠른 전개도 부담이 덜했고, 적지 않은 규모의 볼거리(스펙터클)는 일단 긍정적이었다. 자칫 영웅들의 무용담에만 그칠 수 있음에도 전쟁에 참여하는 민중들의 고통을 토로하는 장면을 적절하게 배치한 것도 돋보였다.


한편 박병도 교수는 연출의 글에서 “<적벽가>는 흥행과 재미의 요소에서 소원시 되어 쉽게 무대에 오르지 못한 아쉬운 작품”이라면서 “영웅호걸들의 세속적 야심과 살육 속에서도 관용과 해원을 인양하는 호연지기로서, 더불어 풀어가는 세상이야기로 전달되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a 지난 3월과 4월 공연을 알리는 이미지.

지난 3월과 4월 공연을 알리는 이미지. ⓒ 국립민속국악원

반면에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다. 기존 판소리의 사설을 그대로 옮겨서인지 자막을 따로 내보냈는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많아 의사소통에 큰 걸림돌이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아리아는 흡인력이 다소 떨어지는 인상을 받았다. 청중을 마음대로 휘어잡을 수 있는 소리 듣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병사들로 분한 남장 여자배우들의 약간 어색한 목소리와 더불어 공연 몰입을 방해한 측면이 있었다.


이밖에도 별개의 차원에서 시사하는 바도 있었다. 물론 원작의 한계겠지만, 조조를 철저하게 ‘악인화’한 탓으로 틀에 박힌 극 전개와 결말을 유도한 것은 아쉬웠다. 적벽 대전에서 패주하는 조조를 살려주는 관우의 행동은 ‘겸양’이나 ‘관용’이라기보다는, 이전에 조조에게 자신을 의탁했던 빚을 갚기 위한 뜻이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요컨대 조조를 비롯한 <적벽가>의 다양한 영웅들을 재해석하여 나름대로 현재적 의미를 풍부하게 부여해 준다면,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감동’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쨌건 ‘충실한 전승’과 ‘창조적 계승’ 사이에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임에는 분명하다.

덧붙여 창극 <적벽가>는 오는 2008년 북경 올림픽에서 문화사절단의 공연 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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