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화백은 옛 시절 어린 독자의 청을 받아 펜을 들었다.황종원
사람들은 걷고 있었다. 나는 마치 그들이 딴 나라 사람 같다. 인사동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네이버 카페 '만화와 추억' 지킴이 오경수씨가 있는 곳이다.
아는 만큼 세상은 좁거나 넓거나 하다. 내게는 인사동이 그렇게 좁다. 서울내기로 한 평생을 살고도 요즈음은 인사동에 오는 일은 별로 없어서일까. 그러니 인사동은 서울에 있으나 낯설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듯, 추억을 되새길 때 오는 동네이다. 추억은 매일 만나는 것이 아니니까. 더러 낯설기도 하겠지. 추억의 만화에 미쳐 사는 오경수씨는 가끔 나에게 전화를 건다.
"이번에 만화가 누가 나오시니 시간이 있으시면 나와 보세요."
"좋아요. 언젭니까?"
작년 연말에는 라이파이 김산호 화백과 해넘이 자리에서 신이 났었다. 소년 시절에는 만화가에게 다가가고 하였으나 너무 먼 존재였다. 지금도 젊은이들이 호리에게 다가가고자 해도 어렵듯이. 그때 우리는 소년이었고 만화가는 다가갈 수 없는 또 다른 세계 속에 있는 '신'의 영역이었다. 만화가를 만나 한 번이라도 말을 나누고 싶었던 소망은 어린 날에 품었던 꿈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리운 이름들. 라이파이, 약동이, 혁 형사가 우리 시절에 있었다. 한동안 뜸했던 오경수씨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손의성 선생님이 나오십니다. 또 누가 나오고."
부산 식당 앞 '여기(아지오)'가 보이는 길에서 나는 오경수씨를 만났다. 함께 있던 손의성 화백도 만났다. 칠순의 나이에 청춘 시절부터 신는 백구두에 우리 시대의 영웅 '혁 형사'를 그린 손우성 화백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선다. 나는 화백의 만화를 보았던 40년 세월을 뛰어넘으며 마치 형님을 보듯이 말한다.
"선생님, 백구두는 여전하시군요."
옛 독자들은 우리의 영웅을 자리의 중앙에 모셨다. 영웅은 50~60대들에게 그리움이었다. 손 화백(70) 대표작 <동경 4번지>(1965)는 혁명적 작품이었다. 주인공 혁은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중절모에 롱 코트를 휘날리는 그는 왼손에 날이 선 비수와 오른손에 권총을 들었다. 살기 번뜩이는 그림은 한마디로 멋있었다. 손 화백은 60년대 초부터 무협 만화 <운명의 4444>와 독립운동 만화 <매국노>에 이어 <동경 4번지>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작가였다.
1주일에 한 번씩 <동경 4번지>가 나올 때마다 책 뒷면에는 주인공 혁을 그린 독자 투고 입상자의 작품이 실렸다. 그림 재주 있는 꼬마 지망생들은 투고했다. 독자 투고에서 1등을 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한 배 돌리기 전에 화백에게 그림을 청한다. 어린 시절에 만약 그의 그림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면 반 친구들에게 얼마나 부러움을 샀을 것인가. 젊은 만화가는 이제 칠순 노인이 되어 긴장을 한다.
"이제 잘 안 돼. 눈이 안보이고 손에 힘도 안 들어가서…."
그러면서도 옛 시절 어린 소년의 부탁에 추억의 주인공을 다시 살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