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삼성 봐주기'를 비판하며 1인시위를 벌이던 당시의 윤종훈 회계사김수민
그는 이제 정치민주화 이상으로 경제민주화가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고 밝히며, 복지를 통해 이루는 '출발의 평등'과 재벌황제경영의 타파, 이상 두가지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그는 박정희정권 때 국민의 세금으로 부를 쌓아놓고 이제는 세금을 못 내겠다고 하는 재벌을 성토하면서, 미국이 한심한 나라지만 부시 대통령이 상속세를 폐지하겠다고 했을 때 빌 게이츠 같은 부자들이 이를 반대했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이른바 개혁세력과 진보진영에게도 화살을 돌렸다. 윤종훈 회계사가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가 부유세법안 등에 대한 지도부의 무책임한 자세를 비판하며 정책연구원직에서 사퇴한 것은 유명한 일화. 그는 사회양극화를 방기한 민주화세력의 무능과 오만을 지적하며 "변화를 꾀하지 않고 익숙한 것만 하려고 하니 마치 샤워하듯 데모나 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처럼 했던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라고 했다.
""대학생 보수화? 사회생활하면 바뀔 것"
윤씨의 강연은 조세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사회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는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 스웨덴 사회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10대에서 60대까지의 사람들이 어울리는 술집에 가서 즐겁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과음을 하고 나서 길거리에서 구토를 했는데... 만약 한국 명동에서 동남아시아인이 그랬으면 욕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사람들은 앰블런스를 부르겠다고 난리더라구요. 사실 우리는 그런 광경 흔하게 보잖아요? (웃음)"
그는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연대 정신'이라는 말로 요약하며 "어깨 넓은 사람이 마음이 넓다"고 비유했다.
스웨덴 기업 '발렌베리'를 한국 재벌들이 들먹이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고 했다. 발렌베리가 6대 세습을 했다는 것은 표면적인 현상이고, 일가가 아닌 재단이 지주경영을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진면목을 삼성 등이 일부러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윤씨는 1인시위를 하며 삼성에 맞서게 되면서 국세청장한테 시위를 했으니 공인회계사로서는 엄청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러나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혔다는 얘길 듣고, 행복한 삶을 산다는 생각을 했단다.
한편 요즘 20대가 40대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현재는 취업란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세상을 두루 경험하면 바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끝으로 대학생들에게 "지식가치가 중시되는 세상에서 계속해서 시야를 좁힌 채 돈만 생각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하며 '창조적 발상'과 '이타적 본성'을 강조했다.
"옛날에도 데모를 하면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다'고 하는 사람들 있었어요. 아니, 공부하기 싫다고 감옥에 갑니까? (웃음) 그런데 사실 이타적 본성은 자신이 즐겁게 사는 길입니다."
이번 강연은 연세학술네트워크(준)와 동아리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연세학술네트워크는 학술모임 등 여러 학생들의 연계로 꾸려진 모임이고(지난 1월 '황우석신드롬, 부끄러운 자화상'(강양구, 한재각 출연) 강연회를 개최한 바 있다), 동아리연합회는 학내 중앙동아리들의 자치와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행사를 준비했던 동아리연합회의 김세현(사회계열 1학년)씨는 "대학사회가 파편화되고 학생운동권마저 수동적인데, 이번 강연에서도 참여가 저조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늘 섭외하던 분들의 비슷비슷한 강연이 아닌 전문화된 강연이 필요하고, 이번이 첫걸음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연세대학교 학내에서 기존의 정치민주화를 다룬 강연회나 마르크스주의 등 전통적 좌파담론을 다룬 특강은 많았지만, 의외로 삼성 등 재벌경영을 겨누고 경제민주화를 설파하는 강연은 드물었었다.
강연에 참석한 권보경(전자공학과 2학년)씨는 "진지하고 치열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선배님의 강연이어서 좋았고 오늘날 점점 보수화되는 듯한 대학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며, "중간에 '세금을 많이 거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힘들지 않을까 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 | | "조세를 이슈화시켜야 한다" | | | 윤종훈과 청중과의 1문1답 | | | | - 현재 한미 FTA 등으로 인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조짐인데 희망이 과연 있는가? 노무현 정권도 보수화되고 있다. "물론 걱정스러운 측면이 많다. 그러나 80년대 대학다닐 때에는 이러한 세상이 온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대학가에 경찰이 상주하던 세상이었는데 이렇게 대통령 씹는 게 국민 스포츠가 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웃음) 희망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이 보수적인 관리들과 토론하고 설득하는 데 무능하고 재경부 관리 출신의 인사를 영입하는 등의 행태는 비판받아야 한다."
- 열린우리당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도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까. "세력이 커지고 지지도가 올라가면서 오만해졌다. 이제 다시 시작할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열린우리당이고 민주노동당이고 헤쳐모여를 해야 한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의 정파구도도 신념보다는 경험과 인맥으로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 나는 이제 사민주의적 신념과 비전이 있는 20~30명의 국회의원을 갖고 10년동안 싸워야 한다고 본다."
- 사민주의가 대안이라고 했는데 과연 궁극적인 비전이거나 현실적 방안이 될까. "스웨덴하고 똑같이 하자는 말은 아니다. '사민주의적 방향'을 이야기한 것이다. 한국에는 한국 토양에 걸맞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출발의 평등'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대안연대회의 등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재벌개혁이나 소액주주운동이 결국 해외자본에 힘을 실어줘서 경제주권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소액주주운동이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외자본 핑계를 드는 것은 '늑대가 더 나쁘냐, 여우가 더 나쁘냐'는 말을 하자는 것과 같다. 왜 둘 중에 한 편을 들어야 하는가. 심지어 해외자본 때문에 상속세도 폐지하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주식으로 세금을 내더라도 그게 국가로 가지 해외자본한테 가는가. '자본에 국적이 있는가'라는 주제 역시 분명하지도 않고 의미가 없으므로 '있다, 없다'로 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다. "
- 노무현 정부가 '증세론'을 꺼냈다가 도로 칼집에 집어넣었는데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현 정부여당에도 사민주의적 성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무능하고 포위되어 있으며 의지가 없기에 별 기대는 안 한다. 단, 조세를 이슈화하는 계기는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세금 확충은 단기적으로는 인기를 깎아내리는 정책이다. 그러나 세금을 확충하지 않으면 재정이 삭감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걷기 위해 걷는 세금이 아니라 쓰기 위해 걷는 세금임이 부각되면, 장기적으로는 승산이 있을 것이다." / 김수민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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