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사랑에 대하여 말하다

[서평]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고

등록 2006.06.10 12:33수정 2006.06.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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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 <예언자> 표지. ⓒ 열림원

그에게 떠난다는 것은 운명.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떠남을 알리는 배가 도착한다. 사람들은 그가 배와 함께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곧 운명일지니, 무엇으로도 그것은 거스를 수가 없다.

하지만 비단 그것이 운명이라 할지라도 가슴에서 꿈틀대는 슬픔의 감정은 어찌 제어해야 할 것인가? 사람들은 그를 둘러싸고 소리친다.

"아직 우리를 떠나지 마시라."

더욱 소리를 높인다.

"그대는 우리에게 이방인도 손님도 아니다. 그대는 우리의 아들이며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자일뿐."

굵은 목소리들의 흐느낌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슬픔의 세레나데는 도시를 가득 메운다.

그때 슬픔의 공기를 거두며, 한 여자 예언자가 걸어 나온다. 그리고 외친다. 소리친다.

"이제 배가 왔으니 그대는 떠나야만 하리라. 하지만 우리에게 그대가 깨달은 진리를 말해 달라!"

그녀는 간절히 부탁했고, 여자 예언자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그의 떠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여자 예언자가 원하는 것은 마지막이었다. 사람들도 동의했다. 이제 그들은 일종의 의식처럼 떠남의 마지막을 그에게 묻고 있었다.

"당신은 우리 사는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여자 예언자가 먼저 물었다.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말해 달라. 다음으로는 가슴에 아이를 안은 여성이 물었다. 아이들에 대해 말해 달라.

시간의 순서에 따라, 그리고 주어짐의 순서에 따라 부자, 여인숙 주인, 농부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죽는 일, 먹고 마시는 일 등에 대해 물음을 이어나갔다. 알 미트라가 죽음에 대해 묻고 작별하기까지, 그는 사람들의 물음 하나 하나에 '아름다운 언어'로 답을 전해주었다.

"그대들 속에서 지낸 나의 날들은 짧았으며, 내가 한 말들은 더욱 짧았다." (본문 115쪽)

그는 이렇게 자조하지만 그가 남긴 말들은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각인된다. 그 각인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헤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이었다.

내가 배운 <예언자>의 교훈

내 나이 스물 넷, <예언자>에 담겨있는 많은 물음들, 아이들이라든지, 가르침이라든지, 쾌락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미완성의 시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꿈에 대해 기도하는 젊은이이기에 이 책이 전해주는 난해함 속의 메시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조금, 아주 조금만이라도 이 책, 그리고 '예언자'를 통해 저자 칼릴 지브란이 말하는 삶의 가르침을 안다면 나의 사랑과 꿈이 조금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물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는 책의 언어를 통해 이렇게 답해준다.

"사랑이 그대를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감싸 안거든 그에게 온몸을 내 맡기라. 비록 그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를 상처 입힐지라도."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것은 신뢰와 무한한 헌신인 것 같다. 날개 속의 숨은 칼이 상처를 입힐 불안 속에서도 온몸을 내맡기는 신뢰,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어려움을 느낀다. 과연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자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가족의 사랑이 칼릴 지브란을 키웠다

하지만 칼릴 지브란의 생애를 천천히 살펴보면 저자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랑에 대해 한결 같음을 유지하는 저자의 태도는 결국 그 자신의 삶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칼릴 지브란, 그는 사랑을 빼놓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 같아 보인다. 그를 키운 것은 대부분이 사랑이었고, 그를 온전히 지탱하게 해준 것 역시 사랑이었다. 양어머니는 그를 사랑으로 보살폈고, 그의 이복형 역시 칼릴 지브란만은 어떻게든 교육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양어머니와 이복형은 자신들은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칼릴 지브란만은 훌륭하게 되기를 바랬다. 결국 양어머니와 이복형은 이런 고생이 발단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들의 한결같은 꿈은 영원히 대문호 칼릴 지브란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친아들도 아니고, 친동생도 아닌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는 것,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칼릴 지브란은 비록 생활은 궁핍했지만, 사랑에 대해 깨우치고 배울 수 있게 됐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성장하고 지내온 칼릴 지브란은 그렇기에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런 지브란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는 큰 여운을 전해준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그렇기에 단순한 소설이 아닌, 그의 철학과 생애의 교훈이 담긴 책일 것이다.

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류시화 옮김,
무소의뿔,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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