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르신도 원초적 본능에 충실했다우~"

[서평] 우리 옛 이야기에 담긴 상징을 푸는 책 <한국인의 자서전>

등록 2006.06.10 14:36수정 2006.06.1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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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한국인의 자서전>

책 <한국인의 자서전> ⓒ 웅진지식하우스

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김열규'라는 이름 석자를 한 번쯤은 접해 봤을 것이다.

신화와 역사, 문학과 철학, 미학의 세계를 넘나들며 한국인과 국문학의 상징적 의미들을 탐구하는 데에 열중했던 석학 김열규. 최근에 그가 쓴 <한국인의 자서전>은 보다 대중적인 형식으로 우리 옛 이야기에 담긴 상징성을 보여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전설, 신화, 민담에 담긴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와 사고를 분석하여 재미있게 전한다. 고전 문학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대중들이 흔히 접할 수 없는 세계가 아니던가. 저자는 우리 옛 글을 쉬운 언어로 표현하면서 그 속에 담긴 우리 고유의 가치관을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설명한다.

담겨 있는 옛 이야기들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내용들이 많다. 소금 장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나라 사람의 기질은 '간기' 즉 '짠 기운'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소금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이 많다. 자린고비도 소금으로 절여진 고기를 보며 밥을 먹었고 우리네 음식도 간고등어와 젓갈, 김치로 대표된다.

"한국인에게 소금은 강한 생기, 그 자체를 상징한다. 소금에 절이고 앉히고, 데친 것의 맛이 곧 간기고 간 기운이다. 그것은 한국인의 인간적인 기세고 목숨의 기다. 꺾일 줄 모르는 기개 같은 것이다.

먹거리의 맛, 입이 느끼는 음식 맛만 갖고 간 기운을 말한 것은 아니다. 인생의 속내, 삶의 질, 세상살이의 양상도 간에 부쳐서 말해 왔다. 어쩌면 간 기운은 목숨 기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신화 이야기에선 우리 어머니들이 '물, 산, 흙'으로 상징되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우리 신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인간이 엄마 뱃속에 있는 물에서 자라고 태어났다는 점에서 '물은 곧 생명력이고 안식이며, 풍요로움이고 청정'이다.

산 어머니는 바로 우리의 단군 신화도 그렇고 서낭당도 그러하다. 산과 흙 속에 어머니와 같은 요소들이 잠재해 있다.


남자들은 주로 '바위'와 연관된다. 이 땅에 사는 남자들의 이름 중 과거엔 유독 '바위'나 '돌이'가 많았다. 이것은 아마도 남자들은 모름지기 바위 같아야 한다는 대중적인 믿음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남근석'으로 불리는 아기빌이 바위들 또한 남성을 상징하고 있지 않은가.

옛 이야기에 얽힌 상징성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성 담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 또한 우리 고전에도 다양한 형태의 성 담론이 담겨 있었다고 설명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비 문학은 물론이거니와 삼국유사나 옛 시조에도 흔하게 담겨 있는 성적인 이야기들. 그것은 왕과 왕비라는 신성한 영역까지 뛰어넘어 고전 문학 속에 고스란히 전해 내려온다.

선덕 여왕이 백제군을 물리치고 온 장수들을 모아 놓고 한다는 소리가 "백제군은 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전쟁지로 선택한 곳이 바로 '여근곡'이니 이야말로 여성의 은밀한 곳이 아니더냐. 어떤 남자들이건 이곳에 들어가면 힘없이 물러나오니 백제군 또한 그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는 이상야릇한 논리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많은 사람들은 성 이야기가 으레 더럽고 시시한 것이라고 치부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천년 전 공개적으로 섹스 담론을 펼치기도 한 여왕이 있었으니 성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쉬쉬하면서 숨어 히히덕 거릴 만한 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음담패설과 포르노' 수준의 구린 성 이야기는 집어치우자고 말한다.

또 한 편 옛 이야기에서 섹스 담론의 주체는 주로 여성들이었음을 강조한다. 남성들은 아무리 자신들이 대단한 척, 여자들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성에 대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이 단순한 논리를 깨닫는 남성만이 여성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대등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죽음'에 관한 한국인들의 사고도 분석하여 말한다. 우리는 흔히 죽은 이들을 이야기할 때 '호상'이라고 얘기하거나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한다.

천수를 다 누리고 곱게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있지만 여러 가지 사연으로 제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게 죽은 사람들. 우리 선조들을 그들이 '원혼'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고 믿었다.

"고생, 이 낱말은 한국에게만 있다시피 한다. 고해니 고행 따위야 동양 삼국에 걸친 한자문화권에서 나누어 가졌지만, 고생은 오로지 우리에게만 있다. 온전한 한국인의 몫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적어도 이웃 일본에는 고생이란 한자말이 쓰이지 않는다.

'고생'이란 말에는 인생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 있는 한국인의 통찰력이 실감된다. 고통스러운 생이라는 뜻 말고도 고통 그 자체가 아예 인생이란 것을 의미하고 있다. 따지고 들면 후자의 비중이 더 크고 그 쓰임새도 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전통적인 한국인에게 삶이란 짐바리, 짐 보따리였다."


그래서 우리네의 인생을 표현할 때에 '한'의 정서라고 했던가. 유독 쓰디쓴 고통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 한민족의 삶. 이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고통도 있지만 쾌락과 낭만이 넘치는 우리 민족의 정서들. 나도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기에 원초적인 우리 뿌리의 생각에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의 자서전 - 뮈토스의 세계에서 질박한 한국인을 만나다

김열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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