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여행을 두려워하지 말자. 인생이 그렇듯 여행도 혼자 있어야 할 순간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적절한 조화가 중요하다. 페트라. 요르단김남희
곧 방학이 시작되면 배낭을 메고 쏟아져 나올 그대들을 생각해 봅니다. 지난 두 달간 그대들이 남긴 흔적을 들여다보며, 문득 그대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그대들은 여기저기에 정보를 남겨놓았더군요. 시리아 알레포의 스프링플라워 호텔, 하마의 리아드 호텔, 다마스쿠스의 알 하라메인, 레바논 베이루트의 탈랄 호텔, 요르단 암만의 클리프 호텔, 페트라의 발렌타인 호텔….
그대들은 작은 동네의 슈퍼마켓이 어디가 싸고 정직한지까지 지도로 그려놓았고, 때로는 길을 가는 이의 심정을 일기처럼 남겨놓기도 했더군요. 'Guest Book'이라 이름 붙은 그 노트들에 담긴 그대들의 꿈과 웃음, 외로움과 한숨을 들여다보는 일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작은 것에 감동하고, 전율하는 그대들이 어여뻤습니다. 더럽고 소란한 싸구려 숙소와 길거리 음식에 개의치 않고 나아가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발 딛고 선 땅이 건네는 속삭임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열고 거리로 나가는 그대들의 열정과 호기심이 대견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아직 세상에 부대끼지 않아 때 묻지 않은 시선이 좋았습니다. 그런 모습은 지금부터 십 년도 훨씬 전, 처음 배낭을 메고 세상으로 나오던 때의 제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때, 제 심장의 두근거림은 북소리처럼 울려댔고, 온 몸의 예민함은 우주의 가장 사소한 자극에도 반응할 수 있었고, 마음의 열림은 세상의 모든 바다를 품고도 남을 정도였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나의 귀는 어두워지고, 눈은 흐려지고, 촉수는 무디어 졌습니다.
길 위에서의 시간이 쌓여가는 동안 내가 살면서 구축해온 성을 부술 수 있기를 바랐는데, 성은 점점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저 성벽 사이로 한 줄 금이라도 가, 바람이 불어 올 틈이라도 생기기를 바랄 뿐…. 그래서 아직 젊어 성을 쌓기 이전이고, 쌓은 성도 무너뜨릴 수 있는 그대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자신만의 여행을 창조하라
그래요, 이 편지는 이제 점점 완고해져가는 한 여행자가 아직 꽃잎처럼 부드러운 심장의 소유자인 젊은 그대들에게 쓰는 당부의 편지입니다. 그러니 마땅치 않은 구석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그대들은 가끔 저를 안타깝게도 했습니다. 한두 푼에 울고 웃고, 작은 것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부분을 전체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더군요. 어디서나 한국인끼리 몰려다니고,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하려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공부하고 사색하는 모습은 부족한 대신, 빡빡한 일정에 쫓겨 늘 급해보였습니다.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여정에는 뜻밖의 만남이 선물처럼 찾아올 여유가 없습니다. 설혹 찾아온다 해도 놓치기 쉽겠지요. 여행에서의 획일성을 벗어나라고, 그대만의 여행을 창조하라고 속삭여주고 싶었습니다. 숱한 유적과 박물관, 유명한 관광지들을 사전 지식도 없이 찾아가 그저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식의 여행은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중요한 건 그대의 성을 뒤흔들고, 그대의 신념과 상식을 깨고, 그대의 심장을 녹이는 한 번의 만남인 거지, '찍고 도는'식의 관광이 아닙니다. 여행은 경쟁도 아니고, 증명사진을 찍어 싸이월드에 올리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단지 그대의 영혼 속 한 번도 건드려지지 않았던 현을 흔드는 만남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 경험에서 이야기한다면, 그런 만남은 혼자 있을 때 찾아옵니다. 혼자 다니면 외롭지 않느냐고 물어오는 그대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럴 때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외로움은 인간이 지고가야 하는 숙명과 같은 거라고.
외로웠기 때문에 예민하게 깨어 있었고, 혼자였기 때문에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흔들렸기 때문에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구 위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외로움 속에서 쩔쩔매본 사람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 줄 알고, 곁에 있는 이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두려워 말고, 혼자 낯선 세상 속으로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