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는 가지와 감자, 고추, 오이, 토마토 등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있습니다.조태용
어머니는 대부분의 작물을 직접 재배합니다. 그 종류는 수십 가지가 훌쩍 넘습니다. 쌀 농사까지 짓고 있는 저희 집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농이라는 경제적인 한계도 있지만, 땅에 대한 애착과 농부로서의 소명의식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한 번은 텃밭에서 재배하는 농산물의 수를 헤아리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재배하는 어머니도 그 숫자를 잘 모르시더군요. 현재 우리 집 텃밭에서 키우고 있는 것들만 봐도 다양합니다.
뒤뜰에서 키우는 것 중에 포도나무 한 그루, 도라지, 당귀, 양파, 돌나물, 대파, 부추 정도가 기억이 납니다. 앞뜰로 오면 더 다양해지는데요. 오이, 참외, 토마토, 방울토마토, 가지, 완두콩, 콩, 감자, 마늘, 고구마, 상추, 양상추, 가을마늘, 고추……. 제 머릿속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이 정도입니다만 아마 이것의 배에 해당하는 작물이 100평도 안 되는 그 땅에 있을 것입니다.
텃밭은 거의 완벽한 채소시장이자, 반찬가게
밭에만 가면 싱싱한 반찬거리가 항상 있는 것이죠. 어머니는 이런 완벽한 밭을 위해 때마다 정확하게 씨를 뿌리고 돌봐주며 수확을 합니다. 단 한 평도 땅을 놀리는 법이 없고, 시기를 거스르거나 잘못 심는 경우도 없습니다. 작물의 특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심어야 작물이 가장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는지를 알고 계시는 거죠.
대파의 경우엔 대파 씨를 뿌린 다음, 거기에서 나오는 대파를 다시 옮겨 심어야 합니다. 미리 씨를 뿌리고 옮겨 심어야 하는데, 이때의 경우도 대파를 크면서 뽑아서 먹을 것을 생각해서 7∼10개를 무더기로 심습니다.
그리고 심을 때는 한 쪽 발로 이미 대파를 심은 고랑을 밟으면서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파는 옆으로 펴서 심어야 합니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모든 작물은 심는 방법이 다 따로 있다고 합니다. 완두콩의 경우에도 너무 늦게 수확하면 콩이 말라 버리기에 정확한 시점에서 수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머니는 이런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어머니지만 밭 가꾸기에서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게십니다.
저는 도저히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밭에 대한 지식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런 지식은 돈이 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대접받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생존이라는 문제에 직면한다면 가장 중요한 지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휴대폰이나 자동차, 컴퓨터를 삶아서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