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무 서울대 총장 후보. 이 교수 홈페이지 캡처.
"이장무 서울대 총장 후보가 일제시대에 식민사관을 수립하고 전파한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최근 만났던 몇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받았던 질문 내용이다. 그들이 기자를 대면한 뒤 잊고 지냈던 것을 갑자기 생각해낸 것처럼 이런 질문을 던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기자가 수년 전 <시민의신문> 지면을 통해 보도하며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기사, '비명(碑銘)을 찾아서-실증사학자 이병도와 특무대장 김창룡의 기묘한 인연'을 떠올렸던 것이다.
우선 이 기사가 나오게 된 전말부터 소개하면 이렇다.
이건무-이병도-이완용, 이들의 기묘한 인연
2003년 3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차관급으로 승격된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이병도의 손자 이건무씨를 임명했다.
바로 그 다음 날 이 신임 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인 이병도의 친일행적 논란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는데, "할아버지의 실증사학 얘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보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핵심 내용이었다.
물론 손자가 할아버지를 옹호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변호에도 어느 정도의 논리와 상식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할아버지를 옹호하려 한다고 해도 이른바 '국립'중앙박물관장이라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민족과 역사의 정체성까지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곤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를 포함해 한국의 언론인 중에서 이 발언에 주목하거나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말이지 부끄럽게도 열흘 정도가 흐른 뒤 우연히 사석에서 몇몇 역사학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기자마저 그런 인사(人事)와 발언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군을 '사냥'했던 죄업 때문에 해방이 되자 한때 지하로 숨기도 했지만 정부수립 직후 도리어 이승만 대통령이 총애하는 심복으로 변신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특무대장 김창룡, 그가 옛 부하들에게 암살된 뒤 이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묘비에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용비어천가를 방불케 하는 낯부끄러운 엉터리 비문을 지어바쳤던 역사학자 이병도.
3년 전 기자가 그들의 기묘한 인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역사기행'을 떠난 데는 이런 전사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맨땅에 헤딩하기 식의 역사기행 끝에 도달한 행선지에서 야생동물의 배설물과 흙덩이와 뒤엉킨 채 쓰러져 있는 김창룡의 조각난 묘비를 찾아냈다.
역사기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증사학'이라는 그럴듯한 가면으로 위장한 이병도가 사실은 친일 매국노의 상징인 이완용과 같은 가문(우봉 이씨)이었으며, '가문의 수치'를 은폐하기 위해 원광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이완용의 관 뚜껑이라는 역사적 유물을 가져다가 일방적으로 태워버렸다는 엽기적(?) 사실과도 조우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병도가 이완용을 자신의 조상으로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즉 '이완용 콤플렉스'에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런 이병도를 두고 이병도의 손자인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할아버지의 실증사학 얘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보자는 것"이라고 강변한 것이다.
그것은 '죽어서도 편치 못한' 친일파와 그 후손의 비극적 말로와 왜곡된 세계관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초상이기도 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혹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역사의 진실은 밝혀졌지만 이미 이병도의 손자는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된 상황이었다.
이번엔 또 다른 손자가 서울대 총장 눈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