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태춘김태성
그는 포승줄에 묶여 잡혀갔다. 50세가 넘은 나이에. 그는 비닐하우스에서, 벌판에 서서 노래 부르며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외치며 투쟁하고 있던 중이었다. 삼일 만에 풀려났다 해도 구호를 크게 외치느라 목이 잔뜩 잠긴 탓에 노래도 부를 수 없었던 그가 잡혀가던 날 들고 있던 현수막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는 가수 정태춘. 진갈색 야구모자와 진갈색 점퍼와 면바지를 입은 그는 풀려나오자마자 대추리로 연대투쟁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왜 평택주민들이, 그리고 자신이, 농민들이 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해가 지면서 불기 시작한 봄바람은 제법 차가웠고 '올해도 농사짓자'고 쓰인 깃발들이 펄럭이는 평택의 도두리, 대추리 일대는 집 떠난 빈집들로 스산하고 황량했다. 그날, 그를 만난 날짜는 3월 18일.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노래에서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라고 노래했던 그는 2006년, 봄날, 대추리에서도 여전히 다시 노래하고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운전하던 친구도, 나도 눈물을 쏟았다
그때처럼 날선 듯 쓸쓸한 목소리로, 그러나 결기와 열정이 맺힌 목소리로. 그로부터 도대체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갔는데, 어쩌면 그는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으로, 포기하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그렇게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인지,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인지, 한참 동안 경외의 감정을 품은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그를 만나고 그의 노래와 만나고 긴 세월을 동고동락하며 살게 한 첫 기억을. 누군가 내게 세상에 알려진 위인들 말고 누구를 존경하느냐고 묻는다면 지체없이 그의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깊이 마음에 새긴 그의 노래의 첫 느낌을.
그때도 지금처럼 막 더워지는 여름이었다. 밤은 아니었다. 제법 뜨거운 여름의 빛살이 살을 뚫고 들어와 등과 목을 땀으로 적시고 손목과 발을 익혔다. 낮 내내 강원도 어름에서 회사 사람들과 회의를 빙자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물 젖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한 여름 저녁이었다. 가난한 강북 동네에 사는 게 똑같은 친구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기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의 노래, 정태춘의 노래를 들었다.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어찌 내 나이에 그의 노래가 처음일 수 있었겠는가.
나이가 마흔쯤의 사람이라면 그의 노래를 듣는 일이 처음일 수는 없는 일이다. 어린 한 때 '촛불'이나 '시인의 마을'을 들었고 젊은 한 때 '에고 도솔천아'를 들었고 결혼해 살던 새댁 시절 사무치는 마음으로 아기를 껴안고 '북한강에서'나 '서해에서'를 들었었다. 그의 노래에 마음을 얹어놓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음에도 그날 들었던 노래의 기억이 그리도 특별히 잊혀지지 않는 것은 뜨거운 햇살이 잦아드는 저물녘이던 탓이었을 것이고 1박2일 동안 계속된 회사의 어려운 상황과 녹록하지 않은 인간관계에 지친 것이 플러스로 작용했을 것이고, 하필이면 힘든 마음과 몸을 쉬려고 멈춘 곳이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는 아름답고도 서글픈 양수리 강가의 흔들리던 물살 탓이었을 것이다.
그때 들은 그의 노래는 새삼 처음 듣는 것처럼 소름까지 오소소 돋았다. 그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 더 이상 욕되이 마라, 너희 멸사봉공 외치는 자들" 이라며 나직하게 그러나 이를 갈 듯 노래할 때, "오늘 또 떠나는구나. 찌든 살림, 설운 보퉁이만 싸안고 변두리마저 떠나는구나.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지. 저들을 버리는 배반의 도시. 주눅 든 어린애들마저 용달차에 싣고 눈물 삼키며 떠나는구나" 할 때, '그대 행복한가' 하고 조용히 물어올 때 운전하던 친구도, 나도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그날 꽉꽉 막히는 양평에서 서울로 오는 6번 국도에서, 물살의 결과 무늬는 턱없이 곱던 양수리 강가의 큰 느티나무 아래서, 그리고 간신히 눈물을 잦히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들은 앨범은 <아, 대한민국>. 한마디 한마디가 사무치다 못해 이유 모를 깊은 슬픔으로 무너지게 만드는, 가파르고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를 부끄럽게 만들어버리는 그의 나쁜 노래는 그날, 완전히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자리 잡았던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