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전용기 도입, '쇼핑'아닌 정부 '조달사업'

[정치 톺아보기 133] 대통령 전용기 도입 논란

등록 2006.06.15 13:35수정 2006.06.2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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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의 대통령 전용기는 탑승 인원이 20∼30명에 불과한 데에다 중간급유 없이는 동북아시아권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어 국내용으로 주로 이용하고 해외순방 시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15일 몽골과 아제르바이잔, 아랍에미리트 등 3개국 순방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이 성남 공항으로 귀국, 환영객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는 장면이다. ⓒ 연합뉴스


'대통령 전용기'라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해리슨 포드가 대통령으로 나오는 미국 공군 1호기 에어포스 원(Air force 1)을 떠올린다. 대통령 부부를 위한 침실과 널찍한 집무실이 딸린 에어포스 원은 미국 보잉사에서 제작한 점보747기를 개조한 것으로 '날아다니는 백악관'으로 불린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오는 30일 재임중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함께 에어포스 원을 타고 멤피스의 그레이스랜드를 찾는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이곳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고이즈미는 엘비스의 열렬한 팬이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 수반과 에어포스 원을 동반 탑승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부시 대통령은 9월 퇴진하는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파격적 환대를 통해 지난 5년간 양국 정상의 밀월관계를 전 세계에 과시하는 기회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 "차기 대통령 탈 비행기 걱정일랑 말고 너나 잘하세요'

그렇다면 에어포스 원을 본뜬 대한민국 공군1호기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정부가 새 대통령 전용기 구입을 추진한 사실이 우연히 불거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부시 대통령의 에어포스 원에 견주면 노무현 대통령이 타는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는 비좁고 낡은 '고물 비행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새로운 대통령 전용기 도입 방침은 지난 12일 유럽 4개국을 순방 중인 한명숙 국무총리를 수행 중인 정부 고위관계자가 비행기 연착건을 해명하는 과정에 나왔다. 전용기가 있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전용기 도입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러자 정치권과 언론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수 언론은 대체로 경기침체와 양극화 등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앞세워 '5·31 선거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1억 달러짜리 전용기 타령이냐'고 준엄하게 질책했다. 즉 지금은 5·31선거에서 사실상 '정서적 탄핵'을 당한 정부여당이 '근신'할 때이지 '쇼핑'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나라당도 지난 13일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이 문제를 짚었다. 회의 결론을 요약하면 '차기 대통령이 탈 비행기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고 너나 잘하세요'이다.

"노무현 정부가 차기 정부 대통령이 사용할 고가의 대통령 전용기를 구입한다고 한다. 지금이 그럴 때인가. 어처구니없고 한심하다. 지금 이 정부가 다음 정부 대통령 전용기 챙겨줄 만큼 한가하고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지 묻고 싶다.

지금 서민들은 경제 침체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외교통상부와 총리 비서실 잘못으로 총리가 외유 중 불편 좀 겪었다고 1000억 달러가 넘는 대통령 전용기 구입을 거론하는 것은 지나친 사치이고 아부이다. 또 졸속 행정의 극치이다. 차기 정부 대통령이 탈 전용기 구입은 차기 정부에 맡기고 이 정부 사람들은 자기 할 일이나 똑바로 잘하기 바란다."


노 대통령 "다음 대통령도 해당 없고 그 다음 대통령 때나 쓸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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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한 대통령 전용기 공군 1호기의 교체 필요성은 김대중정부와 김영삼정부 시절부터 지적된 문제다. 지난 85년 전두환정권 시절 도입된 이래 계속 이용해오고 있다. ⓒ 청와대 홈페이지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이 1억 달러짜리를 '1000억 달러가 넘는 대통령 전용기 구입'이라고 1000배나 뻥튀기한 것은 '1000억 원'과 헷갈린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또 정부가 대통령 전용기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방식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용기 도입 자체를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일'로 몰아붙이는 것은 '위험한 자가당착'이다.

대통령 전용기 교체 문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된 바 있다. 당시 문병호 의원(인천 부평갑,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경호실 국감에서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가 21년째 사용해 노후화 되었으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교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 차기 대통령을 위해 대통령 전용기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지난해 11월 중동 순방 당시 "이번 정부에서 대통령이나 총리가 이용하는 전용기를 발주하는 것이 다음 정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며 전용기 구입 추진을 지시했었다.

노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30일 출입기자들과의 북악산 산행에서 '대통령의 역할과 국정운영 구상'에 대한 소회를 밝히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오면서 느낀 게 있는데 그 일(국립중앙박물관 건립)은 김영삼 대통령이 결심하고 시작해 놓은 것인데 개관 축사는 내가 하고, 사진도 내가 찍는 것을 보고 대통령 일이라는 게 단기간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정파적 이해에 얽매여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 느낀다"며 대통령 전용기 문제를 거론했다.

이어 "대통령이 하는 일중에 자기 임기 안에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은 참 적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그런 사례로 대통령 전용헬기 및 전용 비행기 구입 건을 들었다.

"얼마 전에 대통령 헬기를 구입하는 건이 있었다. 얼른 생각에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은 헬기 멀쩡한데 왜 사냐 하는데, 그 헬기는 내년에 도입이 된다. 임기 중에 1년 남짓 타고 나면 다음 대통령 몫이다.

또 공군 1호기(대통령 전용 비행기)는 일본과 중국을 간단하게 실무적으로 나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는 쓸 수 없다. 국내용이다. 미국을 가고 유럽을 가고 멀리 정상외교를 하러 가게 될 경우에는 1호기로 안된다. 이 문제에 대해 새로 장만하는 결정을 하게 되면 그게 적용되는 시기는 제 임기 중이 아니고, 아마 다음 대통령도 해당 없고 그 다음 대통령 때나 쓸 수 있을 것이다."


'공군 1호기' 교체 필요성은 김영삼·김대중정부 시절부터 지적

대통령 전용기 이용률 50%
22년 사용해온 한국 공군1호기 너무 낡아

대통령 전용 공군 1호기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 지난 85년에 도입한 보잉사의 점보737 기종으로 최대 40인승이다.

대통령 경호실은 이 공군 1호기를 대통령 해외순방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권까지는 운행을 하고 있다. 지난 2004년 12월 이부스키 한·일 정상회담 당시 일본에 다녀올 때도 공군 1호기를 이용했다. 물론 이럴 때 다른 수행원들과 기자들은 별도의 전세기를 이용한다.

그러나 우리 공군 1호기는 노후해 이용률이 50% 수준에 머물고 있는 데다가 부품 교체 및 정비에 많은 비용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에 해당한다.

미국 등 주요국 국가수반 전용기가 10년 이내 교체되는 점을 감안하면 22년째 사용해 온 한국 공군1호기는 너무 낡았다. 보잉사의 점보737 기종의 교체주기는 20년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새 비행기 타기 위해 제머리 깍기'하는 게 아님을 강조하다보니 '다음 대통령도 해당 없고 그 다음 대통령 때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너무 멀리 나간 측면은 있지만 노 대통령 말대로 임기 중에 적용되는 사안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

사실 노후한 '공군 1호기'의 교체 필요성은 김대중정부와 김영삼정부 시절부터 지적된 문제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중'들은 제머리를 깍지 못했을 뿐이다. 김영삼정부 당시에는 이용률이 낮아 서울공항 격납고에 잠자고 있는 공군 1호기의 보수·유지에 드는 비용이 크다는 점이 여러 번 지적되었다. 당시 국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의 비판은 주로 예산낭비에 초점을 맞췄다. 자주 이용하지도 않을 전용기를 뭐하러 구입했느냐는 질책이었다.

김대중정부 때는 주로 노후화에 다른 교체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당시는 그럴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국민에게 금 모으기와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호소한 이른바 IMF 긴급 구제금융사태 이후 예산 확보의 어려움과 '호화' 전용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교체가 미뤄졌다.

국가수반 전용기 미 8대·일 5대·독 6대·러 9대·프 11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시된 주요국 국가수반 전용기 보유현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점보747·점보737 등 8대를 보유하고 있고, 이웃 일본도 점보747 등 5대나 보유하고 있다. 또 유럽국가들의 경우에도 ▲독일 6대 ▲러시아 9대 ▲프랑스 11대를 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중국정부의 강력한 '하나의 중국' 외교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 대접을 못받는 대만도 보잉747 기종의 총통 전용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중남미 순방 때에 알래스카 경유 문제로 행로를 오락가락한 천수이볜 대만 총통은 언론으로부터 '미스터리 항로 외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른바 G8(선진 8개국) 국가 가운데는 영국 총리가 유일하게 전용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으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영국 여왕보다 더 자주 왕실전용기를 '택시'처럼 사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블레어 총리는 공적·사적 용도로 2004년 한해 60회 정도 왕실전용기를 이용했지만 정작 비행기 주인인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은 8회만 이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대통령이나 왕실전용기는 종종 언론의 가십거리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우선 세계 10위권인 한국의 경제력과 국력을 감안하면 보잉 747 혹은 777기종으로 업그레이드 될 대통령 전용기 도입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들 정도다. 동북아권 국가 중에서 중국은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여러 대의 전용기를 공유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정부 소유의 전용기 여러 대를 확보해 총리나 요인들의 해외출장은 물론 자국 인질구출이나 전략물자 수송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정부의 대통령 전용기는 탑승 인원이 20∼30명에 불과한 데에다 중간급유 없이는 동북아시아권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어 국내용으로 주로 이용하고 해외순방 시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해외순방 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번갈아 임차해서 사용한다. 임차 비용은 1회 순방시 약 8∼9억 원(2004년 기준)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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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 ⓒ WhiteHouse


대통령 등 3부 요인 해외순방 '카풀'제로 운용하면 경비도 절감

정부 방침에 따르면, 새로 구입할 대통령 전용기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3부 요인이 해외를 방문할 경우에도 사용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일종의 '카풀'제로 운용하면 국가 위상의 제고는 물론 물론 전용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의 보수·유지·관리에 따른 비용 등도 절감할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하다.

대통령 전용기 도입이 논란이 되자 국방부는 13일 "현재의 공군 1호기인 보잉 737기는 탑승 인원과 항속거리에 제한이 많아 새 전용기를 도입하기로 했다"면서 "신규 전용기는 탑승인원 150여명에 유럽까지 논스톱으로 비행이 가능한 기종이 될 것이며 내년 하반기에 기종을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도입을 추진중인 새 대통령전용기 1대에 드는 예산은 기체 가격 1300∼1400억 원(1억 달러)에 내부 개조와 각종 장비 장착 비용을 포함해 총 1900억 원 정도이다. 통상 대통령 전용기에는 미사일 회피장치를 비롯해 유사시를 대비한 각종 첨단 안전장치가 장착된다.

전용기 도입은 대통령 개인의 '쇼핑'이 아니라 정부의 '조달사업'이다. 이는 결코 '너나 잘 하세요'라고 비웃고 말 일이 아니다. 차기 정부 대통령이 탈 전용기 구입은 차기 정부에 맡길 것이 아니라 이번 정부에서 하는 것이 '모범답안'이다.

지금부터라도 단계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노 대통령 임기 말에는 국가 위상에 걸맞는 기종을 도입해 '새 대통령'은 '새 비행기'를 타고 정상외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른바 '초당외교'에 걸맞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혹시 또 아는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대∼한민국 공군1호기에 부시는 아니더라도 일본 총리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태우고 제주도에 가서 조랑말을 함께 타는 '사건'이 생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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