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미래의 태극전사들이다!"

유치원생들이 프랑크푸르트로 보내는 응원가

등록 2006.06.14 20:21수정 2006.06.1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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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관심이 월드컵에 쏠려있는 요즈음, 유치원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유치원 어린이 여러 명이 응원복장을 갖춰 입고 응원을 하면 태극전사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함께 붉은 색의 티셔츠를 입고 오자고 했습니다. 날짜는 대한민국과 토고의 경기가 있던 13일로 정했습니다.


등원하는 아이들은 티셔츠를 갖춰 입은 것은 물론이요, 태극기로 두건을 쓴 아이, 축구공 모양이 붙어있는 나팔을 목에 건 아이, 머리띠까지 갖춘 아이, 불이 들어오는 뿔, '대한민국 파이팅'이라고 써 있는 막대풍선 응원도구까지 골고루 가져 왔습니다.

응원복장으로 갖춰 입은 유치원 어린이들의 모습이 평소보다 더 의젓해 보였습니다. 태극전사들을 위해 "부상당하지 않고 씩씩하게 경기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하는 어린이들의 진지한 모습이 천사 같습니다.

유치원 가까이 있는 대학 잔디밭에 가서 축구도 하고 응원도 해 볼 양으로 우리들은 길을 나섰습니다. 꼬마들의 월드컵 응원복장이 신기한 듯 바라보는 행인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으며 질서를 지키려 애쓰며 걸어가는 아이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대한~민국 "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
"짝짝짝 짝짝"

서로 주거니 받거니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가니, 못 본 척 할 수가 없습니다. 지나가던 승용차에서 문을 내리고 함께 외치니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나는 모양입니다.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집니다. 삐뚤빼뚤한 우리 행렬이 도착한 잔디밭에서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났습니다.


아이들이라고 축구경기를 안 할 수 없지요. 그래서 편을 갈라 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왕 편을 가르는 김에 경기가 있는 대한민국과 토고 팀으로 팀 이름을 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서로 대한민국 팀을 하려고 합니다. 어쩔 수없이 팀 결정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팀이 대한민국, 진 팀이 토고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 그런데 모두 똑같이 갖춘 복장 때문에 팀을 구별하기가 힘듭니다. 웃통을 벗은 쪽은 토고, 티셔츠를 입은 쪽은 대한민국으로 하자며 토고 팀을 하기로 한 아이들의 웃옷을 벗도록 하였습니다. 망설이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강요에 못 이겨 옷을 벗었지만, 벗고 보니 재미있나 봅니다.


만 다섯 살이라고는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해박한 축구지식도 있었습니다.

"저는 공격수인가요? 수비수인가요?"
깜찍한 질문은 물론이고, 선생님과 함께 운동장을 뛰어 다니며 공을 차는 솜씨도 뛰어납니다. 비록 운동장을 벗어난 공까지 쫓아가 서로 차지하려는 욕심도 부리기는 했지만 열심히들 움직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토고 팀이 한 골을 넣고 말았습니다.

"안 되는데…."

가상게임이지만 이왕이면 대한민국 팀이 이기기를 바랐거든요. 대한민국 팀의 어린이들이 한 골을 넣기를 바랐지만, 힘이 들고 덥다는 아이들을 쉬게 할 때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힘차게 경기를 마치는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안타까운 듯 저를 쳐다보던 한 아이의 기발한 질문 때문에 '대한민국이 지면 어쩌나'하는 쓸데없는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이 경기는 전반전이고, 후반전 경기 또 할 거지요?"
'그래 맞아! 후반전이 있잖아.'

남자들이 쉬는 사이에 이번에는 여자들이 선수가 되었습니다. 여자들도 토고 팀이 앞서는 듯보입니다. 골문 앞에서 서성이던 아이들을 잡고 저는 프리킥을 선언하고야 말았습니다. 어떻게든 대한민국팀을 이기게 하려는 얕은꾀를 낸 셈입니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경기를 빨리 끝내려는 속내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프리킥으로 한 골을 넣어 대한민국 팀의 승리로 여자들의 경기가 끝났습니다. 결국은 우리 유치원어린이의 대한민국과 토고 가상 경기종합점수는 1:1 무승부가 되었습니다.

프리킥을 선언하는 내게 얼토당토않다는 표정으로 "우~"하며 야유를 보낸 유치원 아이들이 더 이상 어린아이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축구 전문가라도 된 듯 보였으니까요.

퀴즈로 풀어보는 월드컵 지식에서 몇 년마다 월드컵이 열리는지, 월드컵 개최가 어디인지, 축구선수 이름 알아보기 등 다양한 질문에 척척 답도 잘 합니다.

미래의 태극전사들! 저는 아이들을 감히 그렇게 불러봅니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태극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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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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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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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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