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축구에 열광하는가?

'축구는 한국이다' 책으로 보는 한국축구124년사

등록 2006.06.15 16:42수정 2006.06.1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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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과사상사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광 속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월드컵 상식 퀴즈를 내겠다. 월드컵도 좋지만, 우리나라의 축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축구의 기원은 언제부터인가?
혹시 신라시대 이래 천년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일제 시대에도 지금의 박지성, 안정환과 같은 축구스타 김영근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전쟁 기간 중에도 새끼줄로 골망과 골라인을 만들고 축구경기를 즐겼다면 너무한 건가?

'노무현 죽이기', '이건희 시대' 등 굵직굵직한 사회 이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날렸던 강준만이 이번에는 '축구는 한국이다'란 축구 책을 펴냈다. '왜 한국축구인가'로 화두를 띄우는 이 책은 한국보다 축구를 더 잘하는 나라는 있겠지만, 한국만큼 축구를 매개로 한 정치사회적 의미 부여가 뛰어난 나라는 없다고 단정하면서 축구의 사회학적 의미를 더듬는다.

이 책 역시 이전의 책처럼 강준만 특유의 내용전개가 드러난다.
책, 신문, 잡지 등에서 인용한 600여 개에 달하는 주석, 1882년 한국축구가 시작된 이래 현재까지의 다양한 축구 삽화 등 방대한 자료는 한권의 책이 아니라 수백 권의 책을 읽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용도 딱딱한 역사 교사서도 아니고 현란한 스포츠 잡지도 아니지만, 독자는 쉽게 읽는 과정 중 둘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강준만은 한국축구엔 다른 나라와는 다른 뭔가가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축구의 독특한 집단주의적 가치와 눈코 뜰 새 없이 몰아치는 격렬한 경쟁이라는 요소가 바로 축구요, 한국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분열하면 통합하고 통합하면 분열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축구에도 녹아있고 사람들은 거기에 빠져 열광한다는 것이다.

강준만은 개화기 때 영국 해군과 조선축구팀이 경기를 하던 때부터 2006년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지금까지 한국축구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이용되어 왔는지 상세히 살펴보고 있다.

그럼 이 책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
바로 정치, 상업적 계산과 축구는 피를 나눈 형제 관계라는 것이다. 요즘 신문, 방송 너나 할 것 없이 축구로 온통 도배가 되고 있다. 한미 FTA, 6·15 민족통일대축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월드컵의 광풍 속으로 파묻혀 갔다.

그런데 강준만은 그게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라고 한다. 특히, 전두환 5공 시절, '스포츠 공화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정부, 자본, 언론은 삼위일체가 되어 온 나라 국민을 스포츠에 열광하게 했다.

시인 김용택은 그의 시 '팔유팔파'에서 '해가떠도오림픽달이떠도오림픽빚이져도오림픽소값개값되야도오림픽죽으나사나오림픽인디'라며 스포츠에 미쳐가는 한국사회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90년대 들어서 축구에 대한 정부, 자본, 언론의 톱니바퀴는 더욱 정교하게 그리고 빠르게 돌아갔다.

94년 미국월드컵 때 축구협회는 "16강 진출하면 선수 1인당 1억원의 포상금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국민체육공단이 발행한 월드컵복권 1620만 장은 월드컵 개막 전까지 80% 이상이 팔렸다. 이건 단기간 내 판매 속도로는 국내 최고 기록이었다. 그 당시에도 여전히 월드컵에 올인한 방송사들이 벌어들인 과외광고 총수입은 175억원에 육박했다.

또한 지난 98년 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이 전격 해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한국팀은 1무 2패로 예선 탈락했던 시절, TV방송중계는 방송 3사 종합시청률 78.0%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니까 필자는 얘기한다. "놀자판을 이용해 권력 챙기고 돈 챙기는 이들을 괘심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놀자판에선 꼭 그렇게 자기 실속 챙기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그 다음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축구에 대한 열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축구에서 무슨 역사까지 운운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축구는 수년간 억눌러온 한국인의 한과 억압의 감정이 분출하는 통로였다.

필자는 일제강점기 시절 유니폼은 상투에 망건, 조끼 등 한복차림으로 운동장을 누빈 한국축구의 모습을 소개한다.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축구 금지령까지 내리기도 했다. 또한 유신시절 한일정기전이 열린 1979년 6월 16일 당시, 사회 분위기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갑갑했고 경제는 바닥을 헤매고 있어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고 한다.

그 당시 동대문 운동장은 3만 명의 관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일본에 한번 지기라도 했다 하면 그 날은 완전히 축구계가 초상집이 되는 날이었다고 한다. 언론은 '해외경기 최초 승리', '4강 신화 달성' 등 오늘의 축구가 최고인 것처럼 보도하지만, 열정을 감추고 억누를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그렇지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도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학문적인 그의 추적은 여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강준만은 월드컵에 대한 비판적인 진보진영의 목소리와 찬양일색인 보수적 언론 입장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도한다.

이동통신사가 이끄는 월드컵의 계절이라고 말하면서, 비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응원문화문제를 꼬집었다. 그런데 월드컵에 빠진 한국에 대해 이성적인 모습을 찾자는 진보진영에게도 "사회를 향해 왕성하게 발언하는 지식인들의 주된 놀이는 책읽기와 글쓰기이다. '몸'보다는 '정신, 이성, 우월주의'에 기울기 마련이다. 몸을 쓰면서 노는 것에 미쳐 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이 약하거나 그 노는 행위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기 쉽다"고 말하며 그만의 논리로 진보진영을 해석하고 있다.

또한 현재 '독재정권' 대신 '거대자본'이 그 '놀자판'을 증폭시킨 점은 있지만, 오늘날 거대자본(거대 언론사)에 의해 증폭되는 건 지식인의 학술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그는 상업성에 놀아나는 현 실태에 대해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둘 다 똑같은 것들이 서로 헐뜯고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소위 운동권이라 불리는 대학생들에 대해서도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필자는 "대학에서 좌파 물을 먹고 사회에 나간 학생들은 대부분 순식간에 헷가닥 바뀐다. …그렇게 살다간 자신만 죽게 돼 있다는 걸 곧 알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현실논리에 빠져 변심하는 진보진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월드컵에 대한 여러 입장 사이에서 강준만은 지금의 '월드컵 광란'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필자는 '각자 기 죽지 말고 원 없이 놀아보자'고 말한다. 스트레스 강도가 매우 높고 자기 표현을 억제하게끔 강요당하는 근엄한 한국 사회에서 음지나 밀실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말고 이런 때 광장에서 맘껏 놀자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기존의 찬반 이분법에서 벗어나 축구를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좋다. 노는 것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축구 안본다고 매국노로 몰고, 월드컵만이 국민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는 지금, 이성을 찾자는 것도 비판하고, 축구에 빠져 사는 것도 비판하면서 '이성적으로 잘 놀자'는 말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선 썩 유쾌한 해답 같지는 않다.

축구를 그리 좋아하지도 안 좋아하지도 않는 평범한 대학생인 나조차도 현실에선 월드컵 4강신화에 자유롭지 못하다. 정말 월드컵 4강 올라가면 선수들 보너스도 좋지만, 진정 보너스로 고생하는 사람들 임금 올라가는 일, 월드컵 4강 올라가면 진정 그 보너스로 남북한이 덩실덩실 춤추는 일도 함께 일어났으면 좋겠다.

다음은 김용택의 시 <팔유팔파>의 내용이다. 올림픽을 월드컵으로 바꿔보니 어찌 그리 오늘과 같을 수가 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얘야팔유팔파오림픽이열리며는우리덜은뭐시그리좋다냐소값이나쌀값이나객지에서노동일허는니생임금이라도올라간다냐그러고우리덜은귀경시켜준다냐글씨요어무니그때까장우리가여기서복통농사짓고살며는객광오광시럽지요모르긴몰라도아마올림픽성금은낼거요그러먼뭣이그리저리도좋을까잉. 그나저나팔유팔파오림픽이열리며는그누구의말대로거시기뭣이냐민족사의왼갖질곡과시련을극복하여그종지부를꽉찍을까그럴까우리하늘이저쪽끝에서저쪽끝까지훤하게갤까"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블로그에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블로그에도 올립니다.

축구는 한국이다 - 한국 축구 124년사, 1882-2006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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