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매각, '사조직'이 개입한 결과라면...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감사원 조사가 남긴 의문들

등록 2006.06.20 09:53수정 2006.06.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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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총회가 열린 지난 3월 외환은행 임원들이 은행 매각에 항의하며 침묵시위를 벌이는 노조원들 앞을 지나고 있다.
주주총회가 열린 지난 3월 외환은행 임원들이 은행 매각에 항의하며 침묵시위를 벌이는 노조원들 앞을 지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도대체 왜 그랬을까? 감사원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한 후 급부상하는 의문이다.

답은 있다. 도대체 왜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을 인위적으로 낮춰가며 외환은행 매각에 골몰했느냐는 의문에 "경제상황이 어려웠던 2003년의 일을 2006년 상황 속에서 평가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전한 금융감독위 관계자의 말이다.

2003년의 경제상황이 어떠했기에 금감위 관계자가 이렇게 강변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의 답이 있다. "외환은행에 외자 유치가 안 됐다면 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우환거리를 미리 털어내는 게 매우 긴요하고 시급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감사원은 아니라고 했다. 외환은행은 2003년 2분기부터 업무이익이 늘면서 당기순이익 449억원을 기록했고, 매각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외환카드의 부실도 부도가 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다.

왜 무리수 뒀을까, 왜 윗선에 보고 안했을까

그래서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늘어난다. 당시 금융감독 당국자들은 도대체 왜 무리수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감사원은 "변양호 전 국장과 권오규 당시 청와대 정책수석이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경제부총리나 노무현 대통령에게 세세하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외환은행 빌딩.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외환은행 빌딩.권우성
일례로 변양호 전 국장은 경제부총리에 보고도 하지 않고 콜옵션 조건 등에 반대하는 수출입은행 측에 론스타에 유리한 콜옵션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행사가격을 직접 제시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자산 70조원짜리 은행 매각 건을 일개 국장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변 전 국장의 말대로 "외환은행에 외자 유치가 안 되면 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올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다. 외환위기를 자초한 97년의 고위 경제관료들이 정책 실패를 이유로 법정에 섰던 걸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추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다. 윗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직권남용을 강변했을 수 있다. 조사가 '사선'으로 확대되는 걸 피하기 위해 '독박'을 자청했을 수도 있다.

왜 검찰은 이헌재를 조사할까

감사원에게 판정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보고도 받지 않은 '윗선'에게 뭘 더 캘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대할 곳은 검찰이다.

시선을 검찰로 돌리자마자 세번째 '왜?'가 튀어나온다. 검찰은 도대체 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조사하는 걸까? 감사원 조사결과가 발표되기 직전에 전격적으로 출국금지 조치까지 내리며 수사 강도를 높인 이유가 뭘까?

검찰이 감사원과 공조를 취하면서 조사결과를 미리 인지했다고 가정할 경우,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감사원 조사결과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형식상으로는 금융당국자들의 '무리수'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외환은행이 매각될 때 그는 론스타의 법률자문사였던 김&장의 고문을 맡고 있었다.

그런 그를 검찰이 최우선 수사 대상에 올려놓은 이유가 뭘까? 어쩔 수 없이 후자의 가능성, 즉 '사선'의 영향력 행사에 무게가 실린다. 변양호 전 국장이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핵심 멤버였다는 언론의 분류도 있었던 터다.

검찰이 지난 3월 30일 서울시 역삼동 스타타워 론스타 한국사무소에서 압수한 물품을 수레에 실어 가지고 나오고 있다.
검찰이 지난 3월 30일 서울시 역삼동 스타타워 론스타 한국사무소에서 압수한 물품을 수레에 실어 가지고 나오고 있다. 오마이뉴스 최경준
의문과 가설이 억측이기를...

자문자답을 하다 보니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휩싸인다.

금융 당국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가 그들 주장대로 순전히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면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과정상에 판단 착오와 직권 남용이 있었다 해도 그건 '실수'이지 '고의'는 아니다. 한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는 경제 관료의 역량을 탓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하나는 이해해줄 수 있다. 경제를 살린다는 '충정' 말이다.

하지만 '사선'이 개입한 결과라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객관적인 경영자료도, 공식적인 계선조직도 '사선'의 말 한마디에 여지없이 무력화됐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일개 사조직이 거대 국내은행을 자기 집 곳간 여기듯 했다면 이는 나라경제 운용시스템이 완전 붕괴됐음을 뜻한다.

세간에서 흔히 얘기하는 '모피아(옛 재무부와 재경부 출신 관료)'의 독선보다 더 위험한 사조직의 독주가 있다면 이는 나라경제가 비탈길에 비스듬히 서 있음을 뜻한다.

감사원의 조사가 끝났고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섣부르게 단정내릴 시점이 결코 아니다. 지켜보는 게 도리다. 감사원 조사결과 발표 후 여러 언론이 너무나 상식적으로 던진 의문이 속시원히 풀리길 기대하면서 지켜보는 게 맞다. 감사원 조사결과 제기된 의문과 가설이 '억측'으로 판명나길 바라는 마음을 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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