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신라 도독권을 인정받은 사연

동북아 역사전쟁의 키워드인 책봉은 형식에 불과

등록 2006.06.20 10:56수정 2006.06.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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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BC 202~AD 220년)가 멸망한 뒤에 중국은 삼국시대(220~280년)를 거쳐 5호 16국 시대로 진입하였다. 5호 16국의 혼란이 끝난 뒤에는 남북조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때 남조(南朝)에서는 송나라-제나라-양나라의 왕조 교체가 있었다.

여기서 언급한 송나라(420~479)는 훗날 고려시대의 송나라와는 다른 것이다. 이 글에 나오는 송나라는 왕족의 성이 유씨였기 때문에 유송(劉宋)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유송(송나라)이 일본왕을 신라 도독(都督) 등으로 책봉한 사실이 있다. 이 때 일본은 신라 도독 외에도 임나(가야) 도독 등으로도 책봉되었다. 이것은 일본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송서> ‘왜국전’에 나오는 이러한 정황은 일본이 항일전쟁 패배(1945년) 이후로 주장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과도 관련을 갖는 것이다.

이 문제는 오늘날 동북아 역사전쟁의 키워드 중 하나인 책봉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책봉의 실질이 어떠했는지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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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성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5세기의 유송은 중국 남부에 있었다. 그리고 유송은 북쪽의 위(북위)와 경쟁하고 있었다. 남북 양쪽의 두 중국왕조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를 남북조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편,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등이 상호 경쟁하고 있었다. 중원과 한반도에서 각각 별도의 ‘리그’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국 남쪽에 있는 유송이 어떻게 일본에게 백제 도독도 아닌, 백제 동쪽의 신라 도독을 책봉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당시 유송은 한반도에 대해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유송이 신라 등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당장에 북위와의 대결에도 허점이 생기고 또 고구려·백제 등의 견제에도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유송은 한반도에 영향력 행사할 수 없었다

이처럼 한반도에 대한 발언권이 없는 유송에게 일본이 신라 도독 자리를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아무 힘도 없는 유송이 신라 도독 자리를 일본왕에게 인정해 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북위와 대립하고 있던 유송은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와 친선관계를 유지했다. 유송은 420년에 백제 구이신왕(재위 420~426년)을 진동대장군으로 책봉한 일이 있으며, 421년에는 고구려 장수왕을 정동대장군으로 책봉한 적이 있다. 그리고 425년에는 친선을 약속하는 국서(國書)를 백제에 보내기도 하였다. 한편, 유송은 일본과도 친선을 유지했다. 그러므로 유송은 고구려·백제·일본과 두루두루 친선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일본측에서 유송에 사신을 파견하여 청탁을 했다. 당시의 일본은 왜오왕시대(倭五王時代, 413~478년)였다. 일본측 청탁의 내용은 사지절·도독·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육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국왕(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辰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으로 책봉해 달라는 것이다. 이 직책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백제·신라·임나 등에 대한 도독권이다. 고구려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을 요구한 것이다.

일본은 힘 없는 유송에게 한반도 지배권 요구

다시 강조하지만, 당시의 유송은 북위와 경쟁하느라 한반도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일본 역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왜 일본은 유송에게 그런 요구를 한 것일까?

그것은 중국 정통 왕조인 유송의 권위를 빌려 한반도에 대한 도독권을 인정받음으로써 일본 왕실의 국내외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 역시 유송에게 한반도를 빼앗아 달라고 요구한 게 아니라, 단지 유송의 권위를 빌려 자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그럼, 유송은 일본왕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까? “우리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없으니, 그런 직책을 줄 수 없다”고 했을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유송은 일본왕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당시 유송은 일본왕을 왜국왕으로 책봉하거나 혹은 백제 외의 다른 지역 도독으로 책봉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본측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러니까 신라·임나·진한·모한 등에 대한 일본의 도독권을 인정해 준 것이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유송이 어떤 경우에도 일본왕에게 백제 도독 타이틀은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유송은 일본왕의 요구를 정말로 수용

유송이 일본에게 신라 등에 대한 도독권을 인정한 것은 신라 등과는 친선관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책봉을 해준다고 하여 국가적 손실이 생길 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립서비스’로 인심을 후하게 베푼 것이었다. 만약 일본왕에게 고구려 도독권을 인정했더라면 고구려를 불쾌하게 할 위험이 있었겠지만, 신라 도독권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럴 위험이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유송이 일본에게 백제 도독권을 인정해 주지 않은 것은 당연히 백제와의 우호관계 때문이었다. 유송이 일본에게 백제 도독권을 인정해 준다고 하여 백제 땅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게 했다면 백제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위와 같이, 유송은 실질적인 영토 제공 없이 일본에게 신라·임나 도독권을 인정해 주었다. 유송이 일본왕에게 신라 도독이니 임나 도독이니 하는 타이틀을 부여했지만, 그렇다고 유송이 일본에게 신라나 임나 땅을 넘겨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송은 신라나 임나 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봉에는 분명한 정치적 의의가 있었다. 유송으로서는 자기들과 관계없는 지역에 대한 도독권을 일본에게 인정해 줌으로써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명예 박사학위를 발행하는 것과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본으로서는 실질적으로 영토를 접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 정통왕조인 유송으로부터 신라 도독권 등을 인정받음으로써 자국의 국위(國威)를 제고할 수 있었다.

책봉은 빈 껍데기... 그러나 정치적 의미는 있었다

이처럼, 과거 동아시아의 책봉관계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책봉이 실질적인 관직 임명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지만, 과거의 책봉은 그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띠고 있던 것이다. 책봉은 그 시대 나름대로의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 동아시아의 책봉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거기에는 일정한 정치적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어느 지역의 통치자로 책봉을 받는다 하여 실질적으로 영토를 받는 것도 아니었고, 또 책봉권을 행사한다 하여 반드시 그 땅을 지배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아무런 실질적 의미를 띠지 못한 책봉이 오늘날 동아시아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띠고 있다. 동북아 역사전쟁이 가열됨에 따라 일부 국가들은 사실(史實)을 왜곡하거나 혹은 사실을 재평가함으로써 책봉에 대해 실질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자국에 편입된 소수민족을 정신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혹은 훗날 특정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담보하기 위해, 책봉이 실제적인 관직 임명이었던 것처럼 왜곡하려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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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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