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드실 과자들주경심
"엄마 저거는 왜 안 버려요?"
김치냉장고 위에 올려진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가리키며 큰아이는 왜 버리지 않느냐고 두 번 세 번 되물어온다.
"그건 쓰레기 아니야!"
"쓰레기가 아니면 뭐야? 아무것도 안 들어 있잖아!"
"할머니 집에 도로 보내 드려야지!"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면서 못 보낸 지가 두어 달이 훌쩍 넘어간다. 그 와중에 친정엄마는 객지 사는 딸네에 또 하나의 박스를 보내와서 한 개도 아닌 두 개의 박스가 언제 오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시원한 대답 한번 못한 내 맘처럼 그렇게 쌓여 있다.
받을 때는 박스가 터질 듯 들어 있는 해산물이며 김치가 반가워, 몇 날을 안 먹고 모아서 딸에게 부치는 엄마의 마음 같은 건 헤아리지도 못했는데, 언제 그런 것들이 왔냐는 듯 텅 빈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박스가 걱정 아닌 걱정거리로 전락을 해 버린 것이다.
8년 전 결혼을 하고 난 뒤 친정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온갖 찬거리가 든 박스를 보내셨다.
그러니 나는 친정 잘 둔 덕에 발품을 팔아가며 시장을 돌아 고춧가루, 참기름, 마늘, 고구마까지 산지와 품질을 따져가며 쌈짓돈을 꺼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해산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남편은 집에만 오면 철 따라 올라오는 삼치회에 갑오징어, 새우, 꽃게에 돈 주고도 못 사먹는 국파래 된장국에, 군소, 비말무침까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밥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찌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솜털처럼 가볍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사위의 식성을 알기에 오죽하면 이제는 친정 부모님조차 박스를 보낼 때면 돌게나, 전복은 "김 서방 줘라!"며 못을 박기도 하신다. 그렇게 보내온 박스는 대부분 그 주 안으로 다시 시골로 부쳐지곤 했다.
고향은 산 넘고, 바다 건너 하룻길로는 감히 찾아갈 엄두도 나지 않는 오지낙도로 자연이 주는 것들 외에는 모두가 귀한 곳이 그 곳이다. 도시에서 하찮게 버리는 유모차도 그곳에서는 할머니들의 길동무가 되어주고, 무심히 버리는 검정봉지 하나도 그곳에서는 없어서 못쓰는 귀물이다.
친정 부모님은 '파스'라도 한 장 사려면 고갯마루를 허위허위 넘어가야만 하고, 모든 제품의 가격은 겉포장지에 표시된 가격이 그대로 공정하게 적용이 된다. 마늘 한 접에 반 접이 덤이지만 공산품만은 제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도 절대 세일도 덤도 없다. 그러니 해산물이 담겨 온 박스 안에는 흔히들 말하는 공산품이 담겨 도로 고향집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석 달이 넘도록 박스가 고향집으로 되돌아가지를 못했다. 저녁마다 아버지의 안부를 묻기 위해 거는 전화가 요 며칠은 유난히도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