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정 자녀는 문제아?... 골병드는 '원더우먼'

일하는 엄마들, 애 낳기 겁난다

등록 2006.06.22 10:44수정 2006.06.2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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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출산 대책이 줄줄이 나오고 있지만 일하는 엄마들은 "남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보육료 지원이 아닌 워킹맘을 배려하는 '사회적 환경'이다(자료사진·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저출산 대책이 줄줄이 나오고 있지만 일하는 엄마들은 "남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보육료 지원이 아닌 워킹맘을 배려하는 '사회적 환경'이다(자료사진·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오마이뉴스 권우성

[권미선 기자] 대기업 차장으로 일하던 공진숙(37·가명)씨는 12년째 근속한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그가 사표를 낸 이유는 '아이 교육' 때문. 얼마 전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학교를 방문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고 며칠 밤을 끙끙 앓았다.

준비물 잘 안 챙겨오는 아이, 숙제 잘 안 해 오는 아이, 아이들이 같이 놀기 싫어하는 아이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던 것. 한마디로 아들은 반에서 '왕따'였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이 문제로 몇 차례 학부모 면담을 요청했지만 공씨는 직장일 때문에 계속 미뤄왔다.

자신이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아이가 망가진 것이 아닌가란 생각으로 밤마다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일을 그만두고 아이 교육 뒷바라지에 열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방송사 기자로 일하는 이아무개씨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털어놨다. 선배들의 아이들이 모두 대학 시험에 불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아이가 대학에 떨어지면 엄마가 다른 엄마처럼 잘 챙겨주지 않아서 그랬다고 원망할까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기혼 직장여성 2명 중 1명, 출산 전후 '사표'... "양육때문"

직장에 다니는 기혼여성 2명 가운데 1명은 첫아이 출산 전후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초 보건사회연구원이 기혼여성 3천8백여 명을 조사한 결과, 취업 기혼여성의 출산 시 취업 중단 비율은 첫째아이 출산 전후가 49.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로는 '자녀 양육 문제 때문'(약 70%)을 꼽았다.

저출산 대책이 줄줄이 나오고 있지만 일하는 엄마들은 "남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보육료 지원이 아닌 워킹맘을 배려하는 '사회적 환경'이다.


일하는 엄마를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은 직장, 가족뿐만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환경, 즉 선생님, 친구, 친구 부모 등 다양하다.

대기업 과장으로 재직 중인 정지영(34)씨는 전업주부들이 갖고 있는 '그들만의 네트워크'에 쉽사리 끼어들지 못해 육아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정씨는 "엄마들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면서 "내 아이가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하거나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Y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양아무개 교사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학습 능력과 친구와의 교제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부모가 숙제나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주지 못하다 보니 그럴 수 있고 또 아무래도 학교에 자주 드나드는 학부모의 자녀들은 교사로서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맞벌이 가정 아이는 '문제아'?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사표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엄마들도 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성지혜(35)씨는 "학교에서 문제 있는 아이는 맞벌이 가정 아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면서 "아이들이 부모가 맞벌이하는 집에 모여 놀다가 사고를 치기도 하고 유해한 컴퓨터게임을 한다거나 학원에 가지 않으면서 부모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계속 직장에 다닐 자신이 없어진다"고 토로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온갖 고생을 다 겪은 워킹맘들은 둘째 출산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 제지회사에 근무하는 연주희(30)씨는 둘째는 아예 못 낳는다고 선언했다.

연씨는 "어린이집 종일반도 보통 오후 7시면 끝나기 때문에, 6시에 정확하게 퇴근해도 시간에 맞춰가기가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라며 "아이가 맨 마지막까지 남아서 문 앞에서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보는데 둘째까지 그렇게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은행에 근무하는 변주영(39·가명)씨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모두 죄인처럼 사는 것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급선무"라며 "돈 몇 푼 지원해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슈퍼우먼처럼 가정과 직장에서 모두 잘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의식부터 전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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