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겉표지.아모르문디
돌아보면 언제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하루하루의 시간은 길고 더디며 변화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른 후 그 시간을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너무도 틀렸다. 그때의 내가 과연 지금의 나와 같은 인간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현재의 나는 세상사에 닳고 닳아 너무나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 있다.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외형적으로, 그리고 외형과 필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게 되어있는 내면적으로도.
혁명은 어떻게 탄생될까. 가난과 질병, 핍박과 설움, 모욕감과 분노에서 혁명은 잉태된다. 비인간적이고 차별적인 요소들이 세월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다가 한순간 다수의 힘과 어우러져 폭발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변화를 바라는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고 이를 조직화시키는 지도자를 혁명가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혁명가라는 이름을 지녔던 이들은 대부분 가난과 차별을 주시했던 이들이었다. 다양한 시련을 통해 인간의 비정함과 주류 세력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몸소 경험했던 이들이었던 것이다.
소설 <등에>의 주인공 아서도 이러한 여정을 통해 혁명가가 된다. 유럽을 온통 전화로 물들인 나폴레옹 전쟁이후 외세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 풍요로운 가정에서 자라던 곱고 순진했던 소년 아서는 어느 날 우연히 전복을 꿈꾸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모임에 들어가게 된다. 혁명이라는 달콤한 단어는 그의 젊음에 여과 없이 스며들고 아서는 스스로를 아낌없이 대의에 내 던진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투옥되어 비참한 환경에 내던져지게 되고, 출옥했을 때는 동료들마저 그를 배신자라고 낙인찍는다. 결국 그는 도망치듯 나라 밖으로 항해하게 된다.
이후 그가 걸어가는 인생여정은 험난함 그 자체이다.
"꼬마아이들이 귤껍질과 바나나껍질을 던질 곱사등이나 기괴한 괴물 같은 게 필요했던 겁니다. 검둥이들을 웃겨줄 만한 무언가를요….당신도 그날 밤 어릿광대를 보았을 테지요. 2년 동안 전 그 광대 짓을 했습니다. 당신은 흑인이나 중국인에게도 인도주의적인 감정을 품고 계시지요? 그러나 한 번 그들의 손아귀에 잡혀 보십시오! 어쨌든 전 곡예를 익혔습니다. 아주 형편없을 만큼 불구자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그들은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진짜 곱사등이처럼 제게 혹을 만들어 붙여주었습니다. 이 팔과 다리도 마찬가지였지요."
걸인처럼 이곳저곳을 부랑하던 그는 어느 날 난폭한 선원을 만나 쇠꼬챙이에 몸을 관통 당하게 되고 이로 인해 불구자가 된다. 다리를 절게 되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인데다가 얼굴에 흉터까지 남아서 얼굴을 본 이들이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추한 외모를 가지게 된 것, 이러한 신체적 조건 때문에 웬만한 곳에서는 취직을 할 수 없었고 그는 서커스에 들어가서 곱사등이 광대노릇까지 해가며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간다.
그러한 그가 탁월한 혜안을 가진 혁명가가 되어 이탈리아로 돌아와 옛 동지들과 조우하는 장면은 읽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세월이, 시련이, 고통이 그를 단련하여 열정을 품은 혁명가가 되도록 한 것이다. 위대한 인물은 유복한 환경에서 탄생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험난한 여정을 거쳐서 탄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험난한 여정을 거친 후 스스로를 단련해서 진주가 된 이들에게 더 인간적인 지지를 보낸다.
혁명가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뇌를 그린 이 작품은 이후 많은 이들, 특히 공산권 국가에서 듬뿍 사랑받았다. 주인공 ‘아서’는 문화대혁명 당시 젊은이들의 이상형으로 떠오르기도 했고 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 의해 영화음악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이후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연극과 오페라로 각색되었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에 견줄만한 대표적인 혁명 소설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세련된 구성과 다양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는 현대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이 읽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스토리가 뻔히 보인다는 한계가 있다. 줄거리의 전개가 너무 평이하게 펼쳐지고 등장인물의 다음 상황이 손쉽게 예측되어 갈등과 해소과정에 그다지 감정이입이 일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의 미학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순진하고 맑은 영혼을 갖고 있던 소년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비참한 상태에 던져져서 어떤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지. 백지 상태의 인간이 신이 내린 다양한 시련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어떤 색깔로 물들여 가는지를 지켜보는 가슴 절절함. 그 한 가지가 결국 독자를 책의 끝장까지 이끌고 갈 것이다.
등에
에델 릴리언 보이니치 지음, 서대경 옮김,
아모르문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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