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장관을 지냈던 윌리엄 페리 스탠포드 대학 교수와 당시 국방 차관보였던 애쉬톤 카터 하버드 대학 교수가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대를 선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윌리엄 페리(왼쪽) 전 국방장관과 그의 글이 실린 <워싱턴포스트> 캡처 화면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설이 한반도 상공을 휘감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저명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선제공격을 주장하고 나선 당사자들이 클린턴 행정부 때 고위 관료를 지낸 바 있는 대북 온건파라는 점에서 한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크다.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페리와 차관보를 지낸 애슈턴 카터는 22일 <워싱턴포스트> 공동기고문을 통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계속 추진한다면, 미국은 미사일 시설을 공격해 이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이 핵무기를 장착하기 위한 것으로 단정하면서, 이러한 위협을 방치하면 북한은 더욱 대담하게 핵무기와 미사일을 늘려나갈 것이라는 경고를 통해 이와 같은 위험천만한 주장을 뒷받침하려 한다.
북한의 이성에 대한 이중잣대
특히 이들은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시설을 공격하더라도 북한이 남한을 보복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한에 대한 보복 공격 즉, "수 주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자신들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김정일 체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페리와 카터의 김정일 체제의 합리성에 대한 자기모순적인 주장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할 경우, 미국의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수천개의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미사일 공격하는 순간 국가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가공할 보복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페리와 카터는 북한이 미국을 미사일 공격할 만큼 무모하고,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더라도 북한이 한국 내 주한미군에 보복하지 않을 만큼 이성적이라고 판단하는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정당화 할 때는 김정일 체제의 무모함을 강조하고,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보복공격이 없을 것이라는 희망사항을 피력할 때는 김정일 체제의 이성을 들먹이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는가?
페리와 카터는 "남한은 오늘날 미국의 영토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한이 수십년간 미국으로부터 안보 지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고,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지나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아님은 물론이다.
오히려 페리와 카터는 위험천만한 주장을 하기에 앞서, 남한의 안보 위협에 대해 보다 사려 깊게 이해해야 한다. 남한의 안보 위협은 북한으로부터도 오지만,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으로부터도 온다. 북한의 남침에 의해서든,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의해서든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그 자체로 파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페리와 카터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문제의 칼럼에서도 밝힌 것처럼, 1994년 한반도 위기 당시에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타진한 인물들이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선제공격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대북 선제공격이 북한의 보복공격을 야기해 한반도 전면전으로 이어지고, 이는 수백만의 한국인과 수만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