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 새만금 간척사업(예정)지 위를 철새떼가 날고 있다. 2002년 촬영.오마이뉴스 권우성
칠면초는 붉은 기운을 더했고 비갠 뒤 하늘빛이 평화롭습니다. 바다와 갯벌이 만나는 물끝선까지 걸어가며 생각합니다. 지난 달만 해도 뒷부리도요와 흑꼬리도요, 붉은어깨도요가 3만마리 이상이나 햇살을 받으며 먹이를 잡아먹고 있었는데…. 떠나간 새들이 가을에도 다시 올까?
비가 온 다음날이라 오전 내내 갯벌이 젖어있었습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농게나 칠게 구멍이 밟힙니다. 구멍 속에는 살아있는 것들도 있고 이미 죽어 초파리가 들끓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비온 뒤에 축축해진 것을 바닷물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절절 매는 두토막눈썹참갯지렁이들이 부쩍 눈에 띕니다. 한쪽은 이미 죽었는지 초록색인데 꼬리 쪽이라도 끊고 들어가지 못해 버둥거립니다. 바닷물이 들지 않으면서 부쩍 마르고 딱딱해진 뻘 속으로 빨리 파고들지 못한 갯지렁이들은 오후가 되면 말라죽을 것입니다.
게 구멍 속에는 산 것과 죽은 것이
오후에는 화포 갯벌에 다시 가보았습니다. 바닷물과 민물이 오가던 갯골 가득히 구멍에서 나와 커다란 집게발을 든 채 해바라기를 하던 농게들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갯골도 거의 사라졌고요.
물끝에선 가까이 걸어가서야 농게 몇 마리를 만났습니다. 육지 가까이 살던 농게들이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바다 쪽으로 옮겨와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나마 오후 내내 해가 내리쬐면서 갯벌은 하얗게 소금기가 올라오고 농게가 급하게 뻘을 먹은 흔적도 말라갑니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한달에 한번 새만금 갯벌에 갔습니다. 2003년에 삼보일배가 끝난 뒤 뭔가 해야 할 듯해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 참여했지요. 지난3 년 동안을 떠올리면 서울과 군산을 오가는 고달픔이나 얼굴이 부어오르며 딱딱하게 굳을 정도의 추위, 여름의 더위와 무릎까지 빠지는 뻘 위에 말뚝을 박는 힘겨움이 먼저 떠오릅니다.
사람들에게 새만금의 소중함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절박한 데 비해 나의 지난 3년은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다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나마 방조제를 막기 전부터 새만금에 다닌 것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생명으로 가득한 갯벌을 보고 다녔으니까요.
자연은 계절에 따라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보여주는 것이 달랐습니다. 갯벌에 들어가 칠게와 농게를 관찰하고 백합과 동죽을 캐보는 일, 갯벌에 찾아오는 새들을 하나하나 세고 식물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모두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갯벌에 찾아가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제부터는 생명을 기록하기보다 수많은 죽음을 기록하고 증언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