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사실상 천자의 나라

제후국에는 있을 수 없는 원구단...독립국가의 상징

등록 2006.06.24 19:25수정 2006.06.2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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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독립적인 제천행사가 열렸던 원구단. 일제에 의해 헐린 이후로 지금은 팔각당과 석고만이 남아 있다.

독립적인 제천행사가 열렸던 원구단. 일제에 의해 헐린 이후로 지금은 팔각당과 석고만이 남아 있다. ⓒ 서울시청 <서울문화재> 홈페이지

그동안 붉은악마들이 열띤 응원을 벌인 서울광장 동쪽에는 원구단(圓丘壇)이라는 제례 시설이 있다. 서울시 중구 소공동 87-1에 소재하고 있는 원구단은 한민족이 사실상은 천자(天子)의 나라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은 제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제천행사가 열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최고 통치자를 가리킬 때에 사용된 천자라는 것은 말 그대로 천제(天帝)의 아들을 가리킨다. 천명(天命)에 따라 천제를 대신하여 세계를 통치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천자가 다스리는 곳은 독자적 세계관을 가진 독립된 세계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독자적인 하늘과 독자적인 땅을 갖는 신성한 지역이 된다. 설령 좁은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천자가 다스리는 곳은 외부 세계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천자에게는 고유한 특권이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천제 즉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낼 수 있는 특권이 있었던 것이다. 개념상으로 볼 때, 이것은 자식이 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천행사는 천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특권이자 의무였다. 왜냐하면, 천신의 자식도 아니면서 천신에게 제사지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천행사는 천자만의 고유 특권

이처럼 천자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으므로 제후국에서는 천신에 대한 제사가 있을 수 없었다. 만약 제후국에서 제천행사를 갖는다면 그것은 천자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적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독립된 주권을 갖고 있다는 상징이 되는 동시에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명확하게 천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한민족도 독자적인 제천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사실상의 천자국가임을 과시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한민족은 삼국시대 때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제천행사를 수행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천단(祭天壇)도 건립했다. 이러한 제천행사는 고려시대까지 원구제(圓丘祭)라는 이름으로 계속 행해지다가 우왕(재위 1375~1388년) 때부터 친명정책에 따라 폐지되고 말았다.


친명파가 집권한 조선시대에는 독자적인 제천행사가 많은 제약을 받았다. 세조 2년(1464) 지금의 한남동 부근에 원구단을 설치하고 제천행사를 올렸지만 13년 뒤인 1457년에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고종 34년(1897)에 대한제국을 선포함에 따라 지금의 소공동 자리에 원구단을 세우게 되었다. 고종은 1897년 10월 11일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그런데 일제는 1913년에 원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지금의 조선호텔)을 지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팔각당과 석고 3개뿐이다.


한민족도 독자적 제천행사 거행

오랜 기간 동안 중국과 사대관계를 맺고 중국의 책봉을 받은 한민족이 이처럼 독자적인 제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한민족이 형식상으로는 중국에 대해 사대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과 대등한 독립국가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민족이 하늘에 대해 독자적인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한민족 스스로가 하늘의 아들 즉 천자임을 자부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국제관계 때문에 형식상 중국에 사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한민족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시 한민족의 독자적인 제천행사에 대해 제동을 걸지 못했다. 친명정책을 취한 조선시대는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를 제외하고는 중국이 한민족의 제천행사를 저지할 수 없었다는 것은, 형식상의 외피와 관계없이 한민족과 중국이 사실상 독립적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아시아 최강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일정 정도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한민족은 독자적인 제천행사를 통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사실상의 천자국가임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과거의 사대관계를 내세워 한민족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독자적인 제천행사의 증거물인 원구단의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중국의 논리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붉은악마의 힘이 솟아올랐듯이, 서울광장 바로 옆에 있는 원구단에서는 천자국가로서의 자부심이 용솟음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615>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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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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