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단체장의 경험을 살리지 못하는 배경은?

[지역언론 별곡-131] 주목받는 퇴임 단체장의 참회록과 고언

등록 2006.06.25 14:06수정 2006.06.2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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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지방자치 4기 출범이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으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자치무대 위의 ‘퇴장’과 ‘등장’ 교차 속에 공직사회 내부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단체장이 새로 바뀌거나 단체장의 소속정당이 교체되는 곳은 지방선거 후유증이 조직개편의 뇌관을 건드린 형국이다.

인사회오리에 내홍을 겪는 곳도 적지 않다. 전임자 편에 서서 아첨하거나 줄을 섰던 정치 공무원들은 새 단체장과 함께 입성하게 될 측근 인사들을 ‘점령군’에 비유하면서 가장 불안에 떠는 모습이다.

‘누구는 된다’, ‘누구는 안된다’며 지방의회 의장단 구성을 놓고 말들이 많다. 중앙정치 입김이 다시 개입하고 있다. 기초의원과 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라는 주문이 이 때문에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민선자치 4기 출범 앞두고 새 등장인물에만 집중 조명

a 광주일보는 ‘물러나는 3선 김흥식 장성군수의 후배들을 위한 고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군정을 수행해 오면서 축적한 암묵적 지식 일부를 공개했다.

광주일보는 ‘물러나는 3선 김흥식 장성군수의 후배들을 위한 고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군정을 수행해 오면서 축적한 암묵적 지식 일부를 공개했다. ⓒ 광주일보

지방선거가 끝나면 유행가처럼 되풀이되는 가사지만 언론은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바쁘다. 잘 사귀어 보려함일까. 지역 언론사들은 새 인물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단체장 4선 연임제한 규정 때문에 올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3선 단체장의 입을 클로즈업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민선자치 11년 경력의 노하우를 후임자들에게 전해주려는 백서를 공개한 사례는 아직 없다.

바로 그 때문이다. 일부 언론사들이 새로 무대에 서게 될 인물보다 퇴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식을 공유하려는 시도가 주목을 받을 만 하다.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을 공개하기 위한 차별성이라는 측면에선 새겨볼 만하다.

<광주일보>는 23일 3선 자치단체장의 인터뷰 기사를 1면에 실어 시선을 끌었다. 후배 단체장들에게 남긴 고언들이다.‘물러나는 3선 김흥식 장성군수의 후배들을 위한 고언’이란 제목의 기사에는 군정을 수행해 오면서 축적한 암묵적 지식의 일부이긴 하지만 공개됐다.


<광주일보>는 기사에서 “민선 1기부터 세 번이나 연임하는 동안 벽지산촌을 전국적 지방자치 모델로 끌어올린 그이기에 충고는 값지다”고 전제했다. 또한 “단체장 개인의 처신에 가장 경계해야 할 덕목으로 토호세력에 흔들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타 지역 초선 단체장들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광주일보, ‘3선 퇴임군수, 후배 위한 고언’서 암묵적 지식 공유노력


“군수가 흐트러지면 지역 전체가 흔들린다는 그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 어떤 유혹, 토호세력의 위세에도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고 고백한 퇴임군수의 말은 시사하는바 크다.

“중앙정부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항상 잘 살피고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꺼리를 잘 만들라”는 주문은 많은 경험에서 비롯된 암묵적 지식으로 손색없어 보인다. 인맥관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못산다고 칭얼대지만 말고 꼭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계획을 잘 만들라”는 고언엔 깊은 노하우가 함의돼 있다.

<광주일보>는 다음날 사설 ‘자치는 정치가 아니라는 퇴임군수의 말’ 이란 제목에서 고언을 다시 되새겼다.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되 충고를 한번쯤 되새기자는 차원에서 시도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암묵적 지식의 공유를 위한 신선한 의제로 차별성이 돋보였다.

이에 앞서 3선을 마치고 물러나는 경북 김천시장의 참회록 또한 주목을 끌었다. 전국 일간지를 통해 공개된 때문일까. 일부 지역언론사들 사이에 ‘논란’ 또는 ‘파문’으로 재 전달돼 생경해 보였다. 빛 바랜 의도가 아쉬움을 남겼다.

<동아일보>는 21일 ‘물러나는 3선 시장의 참회록’이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박팔용 김천시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당장 주민들에게서 좋은 소리를 들을 만한 일을 정책의 우선 순위에 두었던 일, 현실적으로 실천이 어렵지만 힘껏 해보겠다며 시간 끌기를 했던 일,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두고 생색내기용 정책을 집행했던 일 등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3선 마치고 물러나는 시장 참회록’ 논란야기

a <동아일보>는 21일 ‘물러나는 3선 시장의 참회록’이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박팔용 김천시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는 21일 ‘물러나는 3선 시장의 참회록’이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박팔용 김천시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 동아일보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한나라당 공천이면 막대기만 꽂아도 된다는 말이 나오는 지역에서 두 번이나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 시장이 성공적인 민선시장의 대표적 사례”라며 기사에서 그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참회록 내용 중에는 예산문제가 역시 화두다. 지방행정의 가장 큰 난제임이 드러났다. 중앙부처를 돌며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모양이다. <동아>는 기사에서 “예산을 받으려고 1년에 30∼40번은 서울로 올라갔다. 1년에 4분의 1은 중앙에 예산 앵벌이 하러 간다고 보면 된다”고 고백한 박 시장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인터뷰에서 박 시장은 기초단체장이 말 못하는 고충 중의 하나인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관계도 털어놓았다. “천신만고 끝에 김천시 종합운동장 예산 50억 원을 따냈더니 지역구 의원이 자신의 선거홍보물에 업적으로 떡 하니 올리더라”면서 “정당 소속 단체장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제대로 못한다”고 밝혔다. 지방자치의 중앙예속 심화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공무원들은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시장이 돈 먹었다면 직감적으로 알 것”이라며 “그러면 그 때부터 영이 안 서고 행정이 꼬인다”는 박 시장의 고백은 후임자들이 충고로 새겨들을 만하다.

“임시적 운전기사 자리를 놓고 취직시켜 달라고 힘있는 사람,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100건 정도 청탁이 들어왔다”며 “일단 일일이 만나줬다”고 한 그의 고백은 상세하게 전달됐다. 평상시 같으면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를 전제했을 내용이 다분히 포함됐다.

재임시 오프 더 레코드 재임 후 참회록에 공개된다면?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참회록 기사 중 “재해복구비를 더 타내기 위해 다리를 파손시켰다”는 발언이 문제됐다. 일부 중앙 및 지역 언론사들은 “박 시장의 발언이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연합뉴스> 보도를 재인용한 곳도 있다. “늦게나마 주민들께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고백한 참회록이 논란이 된 것이다. 다시 해명하느라 당사자는 진땀 흘린 모습이 역력했다.

다음날 해명보도에서 드러났다.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데 애로점이 많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노후 된 다리를 낀 지역의 주민들이 새 다리를 놓기 위해선 수해 때 다리가 아예 떠내려가는 게 더 좋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는 웃지 못할 고충을 사례로 들었을 뿐”이라고 그는 해명했다.

그러나 떠나는 자치단체장들의 고백과 참회록을 바라보는 언론계 안팎의 시각이 여러 갈래로 갈리고 있다. 재임기간이 많이 남았더라면 요청했을 오프 더 레코드를 취재원과 기자 사이에 묵시적으로 간과한 것일까?, 암묵적 지식의 공유가 우선인가, 취재원 보호가 우선인가? 가 그것이다.

재임기간 중 ‘오프 더 레코드’임을 전제하면서 사석에서 주로 회자됐던 말들이 퇴임을 앞두고 고언 또는 참회록으로 백서가 아닌 언론에 인터뷰 기사로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언론이 취재원을 밝히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선 취재원에게 어떤 정보를 밝히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데 있다. 사찰권이나 수사권이 없는 언론으로서는 최대한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취재원과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합의 내용 중엔 잠시 취재원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보도하지 않거나 취재원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보도하는 것도 포함된다. 통상 이런 취재 방식을 ‘기록하지 않는다’라는 뜻에서 오프 더 레코드라고 부르고 있지만 들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내용인지, 기자들에겐 늘 엄청난 판단력을 요구한다. 참회록이나 고백의 인터뷰 기사는 특히 그러하다.

게다가 처음 시작하는 단체장들은 3선 단체장들이 겪어왔듯이 많은 시행착오와 더러는 실패를 겪을 것이 뻔하다. 이런 때문에 떠나는 3선 단체장이 자신의 시행착오니 정책 실패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어 뒤를 이을 초보 단체장들에게 선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강준만 교수, “정권교체의 공통된 과오 중의 하나는 암묵적 지식 공유 무시”

이 때문에 숨겨진 암묵적 지식 찾기와 공개는 의당 언론 몫이 됐다. 그러나 이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게 자신의 경쟁력이기 때문에 남과 쉽게 공유하려 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암묵적 지식 공유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가 이뤄지지 않은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공개하기를 꺼려하는 게 보편적인 추세다.

인식론의 대가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가 주장한 대로 명시적 지식(focal knowledge)보다 암묵적 지식은 사적인 믿음과 관점, 가치와 같은 무형적인 요인을 포함하는 개인적인 경험에 새겨진 지식이기에 더욱 값질 수 있다.

이와 관련,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공통된 과오 중의 하나는 이전 정권의 암묵적 지식을 무시한 것”이라며 “암묵적 지식은 공유돼야 한다”고 그의 글에서 주장해 왔다.

정권 차별화는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국정운영의 대부분은 연속성을 갖는 것이고,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작 암묵적 지식이 필요한 건 행정인데도 그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장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암묵적 지식을 후임자는 물론 시민사회에 전달하기 위한 책 한 권 낸 적이 없다.

선거철에 만든 자기 홍보용 책자는 많지만 정작 암묵적 지식 공유엔 선뜻 나서질 않는 게 현실이다. 강 교수는 이런 때문인지 사회적 암묵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해 연재하게 하거나 기자들이 직접 취재해 쓰거나 하는 방식으로 적극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신문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암묵적 지식이 공유되게끔 앞장서는 게 인터넷 시대에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는 그의 주장을 곱씹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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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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