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해방군? 중국 인민지원군?

[보도 그후] 어떤 명칭을 쓰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등록 2006.06.26 10:37수정 2006.06.2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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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나의 제목에 여러 입장의 단어가 섞여 있다. 어쩌런 이런 모습이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복잡한 사정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지.

하나의 제목에 여러 입장의 단어가 섞여 있다. 어쩌런 이런 모습이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복잡한 사정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지. ⓒ 장익준


기자가 쓰는 글들은 주로 교육, 책동네, 영화 등에 몰려 있다. 논쟁이 될 주제로 기사를 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열화와 같은 댓글 반응을 경험해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6.25를 맞아 중국군과 미군이 펴낸 한국전쟁 관련 화보집을 소개한 기사를 놓고 좀 당황스럽달까 예상치 못한 반응을 접했다.

기자가 소개한 책은 <그들이 본 한국전쟁>이라는 사진집으로 모두 1~3권이 나와 있는데 1권은 중국군 입장에서, 2~3권은 미군 입장에서 펴낸 사진집이다. 모두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각국 참전군인들이 직접 펴낸 책으로 자료 가치가 높다고 생각되어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올렸다.

기자가 먼저 놀란 것은 <오마이뉴스>에서 붙인 제목을 보고서였다. 기자는 그냥 건조하게 '[서평] 그들이 본 한국전쟁'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편집 과정에서 '중공군 눈에 비친 한국전쟁의 모습'이라는 제목아래 '중국 해방군과 미 해외참전용사의 사진 엮은 <그들이 본 한국전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 기사에는 본 기자의 글 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주로 '인민지원군'이나 '해방군' 또는 '중공군'같은 표현을 두고 북한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한 글과 그것을 냉전적인 사고방식이라 비판하는 글들이었다. 덧붙여 내재적 접근에 대한 비판과 역시 그것에 대한 반비판도 있었다.

기자는 기사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표현을 썼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국가 차원에서 공식 참전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정규군이 참전한 것이 아니라 중국 인민 스스로 모인 자원자들이 참전한 것으로 그들을 일컫는 공식 명친이 '중국 인민지원군'이다. 기자는 이 책이 이른바 '중국 인민지원군'이 주체가 되어 펴낸 책이라는 점과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명칭을 쓴 것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표현을 썼다.

'중국 인민지원군'은 영어 자료에서는 'Chinese Volunteer Group' 정도로 쓰이는 어찌보면 건조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 이 표현을 본 일부 독자들은 이 표현이 북한을 지원하러온 군대를 우호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년 사이 맥아더 동상이나 강정구 교수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런저런 대립들에서 보여지듯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입장은 현재 정치적 대립들과 엮어지면서 감정적인 반응으로 흐르기도 한다.

오히려 기자를 더 당황스럽게 한 것은 편집부에서 붙인 제목이었다. 제목을 보면 과거 반공정권 시절에 즐겨 쓰인 '중공군'이라는 표현과 그 반대라 할 (그리고 기자는 기사에서 삼가 쓰지 않았던) '해방군'이라는 표현이 공존하고 있다. 거기에 미군의 경우 참전용사라는 우호적인 표현이 있다. 한 제목 아래 극단을 달리는 표현들이 섞여 있는데 어쩌면 이런 단어 선택의 곤란함이야 말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우리들 입장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사정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해외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을 어떻게 표현할까? 외면적으로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왔다지만 실제로는 중국군이 개입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 중국군 명칭인 '중국 인민 해방군'(Chinese People's Liberation Army)로 표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본의 경우 그냥 속편하게 '중국군'(中國軍)으로 적는 경우가 많고 영문 자료에서도 그냥 '중국군'(Chinese Army)로 적는 경우도 제법 있다.

우리 경우엔 어떻게 적는 것이 나을까? 최근 KBS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냥 '중국군'이라고 적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국 군대들의 경우 '미군', '영국군', '터키군' 같은 식으로 표기한 경우가 있으니 중립적으로 그냥 '중국군'으로 표기하는 것도 무난하다고 생각된다.


'중공군'의 경우 과거 반공이 강조되던 시대에 쓰이던 표현으로 과거의 유산이라 적극적으로 쓰라고 권장하기는 어렵지만 한중수교 이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쓰이던 표현이어서 때에 따라 이 표현이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을 중공군으로 특정지어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다. 다만 한중수교와 함께 중공이라는 표현이 중국으로 옮겨온지 오래기 때문에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기는 어렵다고 본다.

'중국 인민지원군'이나 '중국 인민 해방군'같은 표현의 경우 상대방의 입장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당사자 표현을 그대로 옮겨야 뜻이 잘 전달되는 차원에서 일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인민지원'이나 '해방'같은 표현들이 단지 원문 표현을 인용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전면적으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쉽게 말해 그냥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정도로 쓰면 될 것을 가지고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은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입장을 두고 몇 가지 의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정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단지 역사를 평가하는 입장 뿐 아니라 오늘날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매듭될 문제는 아닌 듯 싶다.

하지만 의견 차이가 심한 영역일수록 합의된 수준에서 중립적인 단어를 써서 의견 교류가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들의 표현을 고집해서 의견을 강조하는 경우도 가능하겠지만 일부러 대립을 격화시킬 의도가 아니라면 굳이 무리한 단어 사용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최근 중국어권 방송전문 채널을 보면 마오쩌뚱의 활약을 그린 '팔로군'이라는 드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내용을 보면 각종 토론을 하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을 무협지 보듯 우리나라 케이블에서 볼 수 있다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1990년대 이후 공개된 구 소련의 기밀문서를 보면 마오쩌뚱은 김일성의 구원 요청을 받고 중국군을 참전시킨 수준이 아니라 전쟁 전부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개입했다는 소련측 판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정구 교수와 뉴라이트 그룹과의 논쟁에서도 중국군에 대한 평가가 주요 쟁점이 되기도 했었지요. 지금까지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한국전쟁을 보기도 했지만 실제 대규모 병력을 참전시킨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중국군의 역할에 대해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최근 중국어권 방송전문 채널을 보면 마오쩌뚱의 활약을 그린 '팔로군'이라는 드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내용을 보면 각종 토론을 하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을 무협지 보듯 우리나라 케이블에서 볼 수 있다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1990년대 이후 공개된 구 소련의 기밀문서를 보면 마오쩌뚱은 김일성의 구원 요청을 받고 중국군을 참전시킨 수준이 아니라 전쟁 전부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개입했다는 소련측 판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정구 교수와 뉴라이트 그룹과의 논쟁에서도 중국군에 대한 평가가 주요 쟁점이 되기도 했었지요. 지금까지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한국전쟁을 보기도 했지만 실제 대규모 병력을 참전시킨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중국군의 역할에 대해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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