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히딩크 코드'를 아느냐"

[해외리포트] 호주 이미 승리 분위기... 내일 새벽 1시 이탈리아와 16강전

등록 2006.06.26 16:59수정 2006.08.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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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새벽 열리는 호주와 이탈리아의 16강전 경기를 앞두고 호주에는 히딩크 열풍이 불고 있다. 사진은 <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판.
27일 새벽 열리는 호주와 이탈리아의 16강전 경기를 앞두고 호주에는 히딩크 열풍이 불고 있다. 사진은 <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판.
"이탈리아는 지지리도 운이 없다. 월드컵 3회 우승 팀이 FIFA 랭킹 44위의 호주 팀에 지다니… 그것도 두 번 씩이나 '히딩크 코드'에 희생된 이탈리아 팀이 너무 불쌍하다."

한국의 '붉은 악마'격인 '그린 앤드 골드 군대(Green and Gold Army)'의 시드니 북부지역 본부인 <더 란츠> 클럽에서 만난 응원단장 마크 워렌은 27일 새벽 1시(호주동부시간)에 시작되는 호주-이탈리아 전의 응원을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마치 호주가 이탈리아를 격파한 것처럼 패자에 대한 동정심까지 보인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히딩크 코드'를 들먹였다. 그렇다고 가정법을 활용한 것도 아니고 호주의 승리를 기정사실처럼 말했다.

'히딩크 코드'를 아시나요?

호주 응원단 <그린 &골드 군대>의 마크 워렌.
호주 응원단 <그린 &골드 군대>의 마크 워렌.윤여문
호주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큰 이벤트 중의 하나가 될 호주-이탈리아 독일월드컵 16강전을 앞두고 호주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월드컵 역사와 객관적인 전력에서 형편없이 밀리는 나라의 국민들답지 않게 달콤한 '승리 무드'에 젖어있다.

호주가 지금 축제를 벌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커루'의 월드컵 16강 진출 못지않게 큰 경사인 '호주의 딸' 니콜 키드먼이 지난 25일 시드니에서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다. '호주의 사위'로 대접받던 톰 쿠르즈와 이혼한 여배우 니콜 키드먼은 모국사랑이 유난히 강해 "호주 남편을 맞아서 더없이 행복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새신랑 키스 어반이 지독한 축구광으로 신혼여행까지 미루면서 '사커루' 응원에 나서서 니콜 키드만이 투덜거렸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다. 키스 어반은 뉴질랜드 태생이지만 어릴 적부터 퀸즐랜드에서 성장한 호주시민이다.


이렇듯 니콜 키드먼 부부까지 현혹시키고 있는 '히딩크 코드'가 지금 호주에서 비밀스럽게(?) 떠돌고 있다. 6월 26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는 히딩크의 비밀 코드가 책으로 출간되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을 정도다.

<데일리텔레그래프>는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국에서 거둔 업적을 상세하게 보도하면서 '히딩크 코드'의 진원지가 한국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신문은 또한 이탈리아 팀 관계자가 "한국은 호주와 달랐고 이탈리아도 변했다(Korea were nothing like Australia and Italy have changed)"라고 한 말을 인용했다.


반면에 오늘 아침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호주-이탈리아 경기를 앞두고 이탈리아에서는 "호주가 이길 것"이라는 말이 최고의 조크라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페루자의 한 시민이 "호주가 이길 것 같다"는 말을 하자, 주변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리면서 "세련된 축구를 하는 이탈리아가 줄기차게 뛰기만 하는 호주에게 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화가 이탈리아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

한편 <시드니 모닝 헤럴드> 인터넷 판이 실시한 여론조사(poll)에서 호주네티즌들의 60% 이상이 호주의 승리를 점쳤다. 참고로 지난 6월 19일 조별예선 2차전에서 만난 브라질과의 여론조사에서는 호주 네티즌의 32%만 호주가 승리할 것이라고 답변해서 큰 대조를 이룬다.

호주 일간지 <데일리텔리그래프>에 보도된 골프를 치며 여유있게 긴장을 풀고 있는 호주팀.(왼쪽) 오른쪽은 '세계를 발 아래에'라며 호기를 부린 <데일리텔리그래프>.
호주 일간지 <데일리텔리그래프>에 보도된 골프를 치며 여유있게 긴장을 풀고 있는 호주팀.(왼쪽) 오른쪽은 '세계를 발 아래에'라며 호기를 부린 <데일리텔리그래프>.
이탈리아에 져도 카퍼레이드 한다

'그린 앤드 골드 군대(Green and Gold Army)'의 시드니 북부지역 본부인 <더 란츠> 클럽의 응원단장 마크 워렌은 "그럴 리 없지만, 설령 호주가 져도 잃을 것이 없다. 부담은 이탈리아가 더 크다. '히딩크 코드'는 이런 대목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크 워렌의 이런 발언은 지금 호주사람들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속으로는 호주가 이탈리아를 꺾어주는 기적을 바라면서도, '히딩크 코드' 운운 하면서 겉으로만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호주당국자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도 엿보인다. "시드니 멜버른 등의 대도시에서는 이탈리아 전 승패와 관계없이 카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사커루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업적을 이미 이루었다."

히딩크 감독은 한 술 더 뜬다. 16강 진출을 위한 크로아티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사커루는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축구는 이기는 것 보다 멋진 경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한다. 그러다보면 승리가 따라온다"고 말한 바 있어 호주의 입장이 대체로 홀가분하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한편 호주언론이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이룬 '4강 신화'다. 특히 이탈리아 전을 앞두고 그 당시 골든 골을 기록한 안정환 선수가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한국-스위스 전의 스튜디오 해설을 맡은 레일 라식 전 호주 감독은 "처음부터 안정환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큰 실책이다.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가 4년 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골든 골을 넣은 선수라는 것이 국제축구계에 잘 알려졌고, 그것만으로도 수비수가 달라붙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조재진과 안정환이 함께 움직였다면 박지성, 이천수의 공간이 훨씬 넓어졌을 것"이라면서 "지난 토고 전에서도 안정환은 위협적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라식 전 감독은 아드보카드와 히딩크를 비교해달라는 말에 난색을 표하면서 "비록 한국의 심판 운이 없었지만, 한국은 16강에 나가지 못했고 호주는 진출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는 이어서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 언론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비판을 함께 받았는데, 히딩크 감독은 호주 언론의 절대적인 성원을 받으면서 선수들과 어울려 축구를 즐기고 있는 특별한 감독"이라고 말했다.

한국팀 경기를 응원하고 있는 시드니의 '붉은 악마'들.
한국팀 경기를 응원하고 있는 시드니의 '붉은 악마'들.윤여문
"세계축구는 '신생돌풍'을 기다린다"

기술과 힘의 대결이 될 이탈리아-호주 전을 앞두고, 히딩크 김독은 "연장전에 들어가 승부차기로 승부가 날 것을 예상한다"면서 우루과이 팀과의 지역예선 최종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주장 마크 비두카를 빼고 루카스 닐, 크레이그 무어, 팀 케이힐, 해이 큐얼, 존 알로이시 등의 명단을 공개했다.

히딩크 감독은 우루과이와 맞붙으면서 승부차기로 승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비밀리에 승부차기 연습을 집중적으로 한 바 있다. 이 대목도 2002년 한국-스페인의 8강전을 떠오르게 한다.

결전을 앞둔 히딩크 감독은 25일 저녁 호주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세계축구계는 지금 '신생돌풍'을 기다리고 있고, 그 중심에 FIFA 랭킹 44위의 호주가 있다"면서 "호주 팀의 사기가 충천해 있다"는 말을 호주 국민들에게 전했다.

반면에 이탈리아 전을 이틀 앞두고 선수들과 함께 골프 라운드를 가진 히딩크 감독의 행동을 두고 마르셀로 리피 이탈리아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 골프 코스를 찾은 히딩크는 여우다. 4년 전에는 그가 이끄는 한국 팀에 당했지만 두 번 속지는 않는다"고 말했다고 AAP(호주통신)은 전했다.

한국-스위스 전의 패배로 상심한 한인동포들은 '붉은 악마'의 원조 국가답게 시드니 거리응원전에 대규모로 참여할 예정이다. 특히 시드니 시내에 위치한 벨모어 파크에서 호주의 옥외 생중계 사이트 운영사인 '스크린미디어 워크스'(Screenmedia Works)에서 '붉은 악마'의 역할을 부탁받기도 했다.

반면에 호주에 대규모 이민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은 "누가 이겨도 좋다. 그러나 우리의 심장은 지금 호주 땅에서 뛰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칫 호주의 패배로 패닉상태에 빠질지도 모르는 호주축구팬들을 경계했다.

2006년 6월 27일 호주국민의 성원을 듬뿍 받고 있는 '사커루'가 호주 월드컵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인지 호주는 물론 한국 축구팬들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독일월드컵 홈페이지에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네티즌의 79%가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가 16강에서 이탈리아를 꺾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뒤로 걸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호주의 상징동물 캥거루와 이뮤를 닮은 호주 팀이 수비전문 팀의 이탈리아를 상대로 히딩크 특유의 공격축구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줄기찬 공격을 퍼붓다 보면 '히딩크 코드'가 작용하여 아주리 군단의 빗장도 풀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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