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는 풀이 아니라 나물이었습니다

들풀조차 먹거리가 되었던 피난민 시절을 떠올리며

등록 2006.06.27 17:02수정 2006.07.0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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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개망초 꽃이 요즘 한창 입니다

개망초 꽃이 요즘 한창 입니다 ⓒ 김관숙

개망초 꽃들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흔한 꽃입니다. 아니 아무 데서나 피는 흔한 풀입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우리 동네 풀밭에도 길섶에도 둔치에도 하얗게 하얗게 피어 있습니다.


담배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하던 개망초 나물을 먹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이라기보다는 전쟁 중이던 아픈 시절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 개망초는 우리 부모님들이 먹던, 어린 내가 먹던 끼니를 잇게 해 주던 고맙고 고마운 풀입니다.

우리 가족이 피난을 갔던 그 골 깊은 산 아래 마을에는 유난히 나물들이 많았습니다. 논둑 밭둑 둑길 묵은 밭 빈터 할 것 없이 개망초 명아주 질경이 쑥 짚신나물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a 명아주. 지금은 안 먹지만 그 시절 먹던 맛은 잊지 않았습니다.

명아주. 지금은 안 먹지만 그 시절 먹던 맛은 잊지 않았습니다. ⓒ 김관숙


a 쑥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과 친숙합니다

쑥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과 친숙합니다 ⓒ 김관숙

피난살이를 하는 어머니들은 낮이면 나물들을 한 바구니씩 캐어가지고 들어와 나물들을 삶고 물에 우려서 된장에 무쳐 내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나물이 밥그릇 절반의 밥이었기 때문입니다.

개망초는 다른 나물들과 달리 담배냄새 비슷한 냄새가 납니다. 따로 삶아서는 동이 물에 담아 하루 종일 우려내고는 했습니다. 동이에 물을 몇 번이고 갈아 부어 흠씬 우려내도 냄새가 아주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피난을 가서 사는 처음 얼마 동안은 개망초 나물을 뜯는 이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산나물이나 명아주 질경이 짚신나물 쑥 소루쟁이 등등을 그것도 아주 연한 것으로만 골라서 뜯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피난민들이 자꾸 마을로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가 먹던 그 좋은 나물거리들이 산에서도 들에서도 찾아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개망초 나물을 뜯어다가 먹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개망초 나물은 길길이 웃자라 하얀 꽃을 피우는 등 쇠 버린 상태였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꽃이 피지 않은 것들도 꽤 있었습니다. 꽃이 피지 않은 망초 같은 것은 맨 위에 순이 연두 빛으로 연하디 연했고 밑둥에 새로 퍼진 싹은 마치 봄풀 같았습니다.


a 망초, 그래도 맨 위의 순은 연하디 연합니다

망초, 그래도 맨 위의 순은 연하디 연합니다 ⓒ 김관숙

우리 가족은 중농인 친척집 사랑채에 살면서 친척 도움으로 끼니는 거르지를 않았지만 그래도 나물이 부모님에게는 밥그릇 절반의 밥이었고 어린 내게는 삼분지 일 정도의 밥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제일 부잣집인 돌이네 묵정밭은 길길이 자란 개망초 풀들로 뒤덮여 있고 여기저기 연붉은 메꽃들이 기승을 떨며 기어올라 피어 있고는 했습니다. 작년에 도라지를 수확한 밭이라 일부러 묵히고 있는 중입니다. 그 묵정밭에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든 들어가기만 하면 돌이 할아버지와 돌이가 돌멩이를 던지면서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야, 너네도 서울 간다지?"

서울 수복 소식이 들려 온 지 며칠 후입니다. 대문 앞에 서서 꽈리를 불고 있는데 늘 나를 못살게 굴던, 나 보다 두어 살은 위인 옆집 돌이가 이상할 정도로 다정하게 물었습니다.

나는 대답 대신에 딴청을 부리며 양양하게 빠드득 빠드득 꽈리만을 붑니다. 어린 마음에도 이제는 무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내일 우리는 서울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개망초 나물 같은 건 안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너 그때 내가 저기서 나물 못 뜯게 해서 그러지? 그치? 대신 이거 줄게."

돌이는 뒤에 감추고 있던 손을 내밀었습니다. 빨간 꽈리들이 주렁주렁 달린 꽈리나무 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는 싹 돌아서서 대문을 삐이걱 밀었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대문을 쾅 닫아버렸습니다. 나쁜 자식, 막 돌멩이 던질 땐 언제고. 그것도 꼭 나한테만.

몇 년 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고등학생인 돌이가 봄 방학을 이용해 어머니와 같이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생전 처음 서울 구경을 온 것입니다.

어머니는 서울에 친척이 없는 그들 모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자장면도 사 주고, 전후 복구가 한창인 서울 구경을 전차를 타고 다니면서 두루 두루 시켜 주었습니다. 창경궁 덕수궁 명동성당 중앙청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을 당시 그렇게 불렀음) 한강 사육신묘지. 나는 일부러 그들과 동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돌이 어머니는 옥비녀를 꽂은 쪽진 머리에 한복을 입었고 우리 어머니는 빠글 파머 머리에 원피스 굽 낮은 구두를 신은 멋쟁이 차림이었습니다. 피난살이 때와 백팔십도 달라진 우리 어머니를 돌이 어머니는 무척 부러워하였습니다.

그 뒤 우리 가족은 그들을 잊고 살았습니다. 내가 여고 졸업반이던 여름방학 어느 날입니다. 건장한 군인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개구리참외 한 상자를 어깨에 메고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돌이였습니다.

"야아, 너 참 많이 달라졌다."

돌이는 나를 보자마자 꺼먼 눈망울을 번쩍하며 씩 웃더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때는 나도 철이 조금 들었던 때라 어머니의 체면을 생각할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이다' 하고 인사말을 했습니다.

돌이는 휴가를 끝내고 귀대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개구리참외 상자를 내려놓자마자 바로 현관을 나섰습니다.

"우리 집에서 농사지은 거야. 내가 담았어. 다음 휴가 때 또 올게."
"그땐 혼자 오지 말고 여자친구랑 와라. 내가 음악다방에 가서 커피 사 줄게."

나는 어렸을 때 꽈리를 빠드득 빠드득 불 때처럼 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돌이는 순간적으로 눈빛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저벅저벅 골목길을 나갔습니다.

어머니가 개구리참외 상자를 풀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얀 꽃을 달고 있는 개망초 풀들이 가지런히 그것도 두텁게 덮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깝게도 기차를 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고 오는 동안에 모두 시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제야 돌이가 '내가 담았어' 라고 한 말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가 그 풀들을 함부로 헤집어 버리려는 것을 내가 얼른 그대로 그러모아서 양은대야 물에 담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도 살아나지를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돌이네 묵정밭에 개망초 풀들은 묵정밭을 기름지게 하고 땅심을 살려야 하는 질 좋은 퇴비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온 가족들이 나서서 그 밭의 개망초들을 아무도 못 뜯어가게 했던 것입니다.

철부지들이라서, 돌이가 개망초 나물이 우리 가족에게는 절반의 밥이라는 것을 몰랐었듯이 나도 묵정밭에 개망초들이 묵정밭을 살려야 하는 퇴비감인 줄을 몰랐었습니다.

동심은 그래서 하나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만일에 하나가 되었더라면 아마도 개망초 하얀 꽃 같은 순수한 우정이 예쁘게 피어올랐을 것입니다.

a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 김관숙

언제부턴가 나는 개망초 하얀 꽃이 그냥 좋아졌습니다. 울타리에 핀 장미보다는 그 밑에 외롭게 피어 있는 개망초 하얀 꽃을 바라보다가는 걸음을 놓습니다. 장미는 예쁘기만 합니다. 그러나 개망초 하얀 꽃은 순수해 보이고 바라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a 그 시절 돌이와 묵정밭이 생각나서.

그 시절 돌이와 묵정밭이 생각나서. ⓒ 김관숙

돌이도 개망초 꽃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좋아한다 해도 여름만 되면 개망초 꽃들 때문에 어지간히 땀을 흘리고는 하면서 지낼 것만 같습니다. 지금도 아마 손자들의 재롱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농장 여기저기에서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 개망초 꽃들을 뽑아버리고 또 뽑아버리기에 정신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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