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을 하는 아들에게 띄우는 편지

그래, 돈이 필요하면 벌어야 한단다

등록 2006.06.27 16:59수정 2006.06.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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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퇴근을 하여 현관문을 들어섰더니 아내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빨간 눈에 어딘가 부은 듯한 낯빛이 아무래도 낯설었다. 그런 일이라곤 없었는데…. 문득 큰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차, 그거였구나. 큰 아이의 노가다(막노동) 알바를 알았구나.


그날 낮 어쩌다 서울에 있는 큰아이가 생각나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오랫동안 울려도 받지 않아 끊으려고 할 즈음 아이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다른 이들도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 부자는 전화 통화 때마다 몇 마디만 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 그냥 대화가 끊기고 마는데 그날은 달랐다.

어디 있냐는 물음에 파주에 있으며 돈을 벌기 위해 노가다를 한다고 했다. 노가다? 네가? 절로 물음표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곧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돈이 떨어진 것이었다. 며칠 전 제 엄마가 전화해 보니 녀석의 휴대폰이 통화정지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 떠올라 사태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안쓰럽다는 생각보다는 장하다는 느낌으로 마음이 흐뭇해졌다. 암, 그렇게라도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그런데 그게 아이엄마에게는 다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편의점 밤샘 아르바이트, 실내 포장마차 심부름 및 접시 닦기 등의 경력이 있음에도 '노가다'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강렬했는지 아이와 통화하면서 울었던 모양이다. 일당은 5만5천원이며 그중 밥값과 잠자리 비용으로 얼마를 떼고 나머지를 받는다는 말에 지금까지 씩씩했던 집사람도 자식사랑의 본능이 발동했던 것 같다.

"그나마 오늘처럼 비가 오면 쉬어야 한대요. 얼마나 벌어야 끝을 낼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고…." 마침 뉴스는 장마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a 살아계실 적의 어머니와 어린 두 아이

살아계실 적의 어머니와 어린 두 아이 ⓒ 고성혁

아이는 지금 휴학생이다. 나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입대키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유는 밴드에 있었다. 자기는 음악과 밴드를 말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며 따라서 1년만 군 입대를 연기하고 '끼'가 넘치는 친구들과 밴드를 구성하여 후회 없이 마음껏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스무 살이 넘은 아이의 완강한 저항에 아비로서 속수무책이었다. 한편으로 긴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서는 짧은 방황은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비의 역할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그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딱 1년이었다. 1년 후에는 이유 없이 군 입대를 하는 것. 둘째는 제 스스로 벌어 서울살이를 하는 것. 두 가지였다. 그런 이유로 아이의 휴대폰이 끊겼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더러는 아주 힘들게 생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스물이 넘은 성인이니 만큼 삶을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내 생각을 강조하며 걱정으로 조바심을 내는 아내를 다독여 왔는데 급기야 녀석이 노가다를 시작한 것이었다.


공사장 잡부든 길거리 행상이든 녀석에겐 삶의 값진 체험이 될 것이었다. 녀석도 아비가 광화문에서 세차를 하거나 밥을 먹기 위해 눈발 날리는 언 땅을 파헤쳐야만 했던 고단했던 생활을 알고 있으니 크게 할 말도 없을 것이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제 스스로 결정한 자랑스러운 일. 돈이 필요하면 당연히 막노동이라도 해야만 한다.

그래도 녀석에게는 언제든 돌아올 따뜻한 집과 부모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고픈 배를 잊기 위해 물을 마시고 긴 낭하를 배회했던 내 스무 살의 점심시간이 떠올랐다.

a 아내와 두 아이

아내와 두 아이 ⓒ 고성혁

'아들아, 사랑한다. 어찌 아비가 너의 힘듦을 모르겠니. 그러나 그것이 삶이고 생활이다. 삶은 네 것이고 네 삶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찌 아비로서 너에 대한 짠한 마음이 없겠냐만 지금의 내 몫은 너를 가만 놔두고 바라보는 것뿐.

네가 세 살이던 시절 출근 때마다 오토바이를 태워줬고, 다섯 살 나이에는 너와 함께 연을 만들어 날렸고, 열 살 나이에는 너의 손을 잡고 미니카 경기에 참여했잖니. 그때의 아비를 아름답게 기억하면서 부디 잘 이겨내다오.'

아내는 그래도 아이의 여자친구가 공사장으로 떠나는 아들을 보내며 마구 울었다는 말을 은근슬쩍 전하면서 그 아이의 예쁨에 눈물 젖은 얼굴로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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