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 완패 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나'는 고민에 빠져 있다. 2004년 3월 1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청과시장내 농협공판장 건물로 이사한 열린우리당사. 열린우리당은 다시 '처음'이라는 단어와 싸움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김근태의 눈물'은 이번이 두 번째다.
2년 전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손잡고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한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근태 의장은 소수여당으로서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말을 잇지 못했었다. 의총장도 숙연해졌다. 하지만 "결코 물러날 수 없다"며 의원들을 다독였다.
지금 그는 142명의 '제1당' 의장이지만 다시 눈물을 훔쳤다. 지난 26일 열린 지방선거 서울지역 낙선자들과의 간담회에서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은 전패였다. 구청장 하나 당선시키지 못하고 시의원도 비례대표 2명이 전부다. 이번엔 낙선자들이 김 의장을 위로했다. 김 의장이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여러분을 만나니 목이 잠깁니다…, 직접 만나야 여러분 가슴속에 맺힌 한이 풀리고…, 미안합니다"라며 말이 뚝뚝 끊기자 참석자들은 "우리는 괜찮습니다, 힘 내십시오"라며 격려 박수를 보냈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사석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데…, 이례적"이라며 "복합적인 심경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후보들에게 중앙당이 도움은 주지 못하고 되려 짐이 된 현실, 의욕적으로 출발했으나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의 반성과 회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책임감이 겹쳐진 감정일 거라는 얘기였다.
김 의장은 지난 26일부터 전국 시·도당을 돌며 출마자들과의 간담회를 갖고 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도봉구청장으로 나섰던 이동진씨는 "낙선하고도 울지 않았는데…, 김 의장이 그러니까 동병상련인지 감정이 복받쳤다"고 말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이동진씨의 경우 "정책의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화운동을 하며 뜻을 함께 해왔던 시간에 대한 참혹한 평가로 느껴졌다"며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살아온 삶과 겹치다보니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성과 억울, 책임감 뒤범벅
김영춘 의원은 요즘 말을 않고 있다. 서울시장 선대본부장을 지낸 그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독일로 가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월드컵 열광에서도 비껴나 있으려고 한다"고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 뒤 인터뷰 요청을 다시 했으나 "묵언수행 중"이라며 쓴 미소를 보였다.
얼마 전 만났다는 그의 한 지인은 "지쳐 보였다"며 "바닥부터 고민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지난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당원이 되겠습니다"고 외쳤던 그다.
우상호 대변인이 전한 의원들의 '내상'은 "허(虛)하다"였다. 지방선거 참패라는 '외상'에 대해 "사실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나' 하는 황망함이 있다"며 "한 군데 뭐가 빠진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잘못을 했더라도 너무 세게 맞으면 무서워지고 멍해지는 그런 느낌?
우 대변인은 '허'의 실체를 3가지로 정리했다. "열린우리당 당명으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는 것의 미안함, 수도권의 일당독재를 허용할 만큼 잘못한 건가하는 허탈함,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이 그것이다.
정봉주 의원은 10일째 병원에 입원중이다. 뚜렷한 병명도 없이 과로가 누적되면서 몸에 면역성이 떨어져 생긴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2년 동안 세 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다"고 한다. 법안 공부, 상임위 활동, 지역구 챙기기 등 통상적인 의정 활동을 했다.
정 의원은 "내가 잘하면 당도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국민은 당이라는 추상적 실체를 중요하게 봤다"며 "당과 의원은 공동운명체라는 점을 뼈져리게 느꼈다"고 말한다.
올초 열린정책연구원은 의원 개인별 지역구 지지도를 조사했다. 많은 의원들이 당 지지도를 웃돌았고 정봉주 의원의 경우 50%라는 결과를 통보 받았다. 하지만 의원 개인의 성취는 당과 따로 놀았다. 정 의원은 "의원들이 소신을 밝히는 백가쟁명 분위기가 당의 구심력으로 모아지지 않았다"며 "한마디로 당에 영(令)이 없었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