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바지 줄게, 새 바지 다오

[조물락주물럭5] 무더운 여름나기, 감물염 바지 만들다

등록 2006.06.28 12:20수정 2006.06.2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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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옷에 감물을 들여 얼룩이 보인다. 외출복으로 작업복으로 3년째 즐겨입는 옷.
구입한 옷에 감물을 들여 얼룩이 보인다. 외출복으로 작업복으로 3년째 즐겨입는 옷.한지숙
어느 새 여름의 한가운데를 향해 치닫는다. 시골의 볕은 도시의 그것과 달라 유난히 뜨겁고 이글거리는데, 벌써 조금만 움직여도 땀방울 떨어져 내리고 '덥다 더워' 소리가 절로 나니 땀 많고 더위 많이 타는 체질, 이번 여름은 또 어떻게 시원하게 보내나 벌써부터 고민이다.


작년에 처음 만든 끈셔츠. 모양 낸다고 '지시랑' 그림을 그려넣은 것이 조금 촌스럽지만 볼수록 입을수록 정이 드는 옷.
작년에 처음 만든 끈셔츠. 모양 낸다고 '지시랑' 그림을 그려넣은 것이 조금 촌스럽지만 볼수록 입을수록 정이 드는 옷.한지숙
작년 여름 2층집에 살 때, 나름대로 시원한 옷을 골라 입고 아래 위층 작업장을 오르내렸으나 땀범벅으로 온몸에 척척 휘감겨드는 옷이 퍽이나 거추장스러웠다. 마당에서 염색도 해야 하고 방 안에 들어앉아 바느질도 해야 하는데 우선 내가 편하고 시원해야 이런 작업도 기분좋게 할 터, 면에 감물 들인 것을 죽죽 잘라 끈 달린 셔츠 하나를 뚝딱 만들어 입었다.

감물염과 일반면으로 만든 양면 모자들. 시원한 느낌 때문에 감물염을 자주 이용한다.
감물염과 일반면으로 만든 양면 모자들. 시원한 느낌 때문에 감물염을 자주 이용한다.한지숙
혼자 있을 때도 민소매 옷을 입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에 끈 하나 달랑 달린 옷을 만든 속내는, 순전히 옷을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다양한 옷본은 가지고 있으나 옷집에 맡기지 않는 이상 손수 바느질을 해야 하니 소품만 주로 만들어 본 나로선 '옷 만들기'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목 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내가 너무 덥고 힘드니까 옷 만드는 것도 도전해 보게 되었다.

내 맘대로 옷 만들기. 바지로는 처음, 옷 만들기로는 두 번째 도전이다.
내 맘대로 옷 만들기. 바지로는 처음, 옷 만들기로는 두 번째 도전이다.한지숙
얼마 전, 인견에 감물 들인 원단으로 옷을 맞춰 입었다. 인견 자체가 시원한데 거기에 감물까지 들였으니 얼마나 시원할 것인가, 큰맘 먹고 내 옷 한 벌 장만한 것이다. 외출할 때도 매실 따는 작업을 할 때도 인견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역시나 땀도 차지 않고 더없이 시원하다. 요즘 외출이 잦아 바깥 밥을 자주 먹으니 허리에 살이 조금 붙어 바지가 불편하다. 끈 셔츠 한 장 만들어봤으니 이번엔 바지도 하나 만들어봐?

10년 넘게 입은 바지. 아까웠지만 가장 편해 바지 본으로 이용했다.
10년 넘게 입은 바지. 아까웠지만 가장 편해 바지 본으로 이용했다.한지숙
10년 넘게 즐겨입는 여름 바지가 있다. 가볍고 시원한 체크면에 허리는 고무줄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 입었어도 색깔조차 변하지 않은 채 여름이면 다른 옷보다 훨씬 손길이 자주 가는 정든 바지다. 이 바지의 모양새라면 가장 편하고 시원할 듯해 바지의 재봉선을 튿어 본을 그렸다. 바지 옷본들이 여러 장 있지만 선 따라 그리는 정식 과정을 생략하고 싶을 만큼 마음이 조급해진 때문에 뜯어낸 바지 조각으로만 본을 그렸다.

염색 할 때 굵고 가는 실들도 함께 물들여 놓는다. 이렇게 이용하게 되어 뿌듯하다.
염색 할 때 굵고 가는 실들도 함께 물들여 놓는다. 이렇게 이용하게 되어 뿌듯하다.한지숙
허리에 넣을 고무줄도 넓고 좁은 여러 종류 있지만 고무줄 바지는 더욱 자신이 없어 황토로 물들인 굵은 실을 허리끈으로 이용하기로 한다. 재봉틀을 다룰 줄 모르는 데다가 손바느질의 재미를 매력으로 생각하다가도 이처럼 내가 필요한 것들을 꼼질거릴 때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바지를 만들면서 내내 드는 생각 하나, 오버로크 기계라도 하나 있으면 정말 편하겠다.


완성된 감물염 바지. 요즘 이것만 입고 다니는데 여러 장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날 정도로 시원하다.
완성된 감물염 바지. 요즘 이것만 입고 다니는데 여러 장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날 정도로 시원하다.한지숙
바지 안쪽을 들여다보면 실밥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이음새도 삐뚤빼뚤하지만 그것은 나만 아는 비밀. 바짓가랑이 두 장을 이으면서 조급한 마음은 속도를 더해 갔다. 얼른 이어 두 다리 꿰었을 때의 느낌이 궁금해 손놀림은 더욱 빨라졌고 허리춤만 남긴 채 모두 이었을 때까지 몇 번을 입고 벗으며 '나홀로가봉'을 했는지.

동네에 모임이 있어 입고 갔다. 장마가 시작되어 아직 비는 나리지 않아도 후텁지근한 날씨, 가랑이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어드는데 다른 욕심 하나가 고개를 든다. 내친김에 블라우스도 하나 만들어…? 아예 모시나 삼베에 물들인 것으로 또 한 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 목덜미가 서늘하다.

덧붙이는 글 |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짙푸른 감잎이 싱그러운 여름입니다. 감꽃, 하나둘 떨어지고 땡감을 주워모을 때…,
곧 감물염의 계절입니다.

덧붙이는 글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짙푸른 감잎이 싱그러운 여름입니다. 감꽃, 하나둘 떨어지고 땡감을 주워모을 때…,
곧 감물염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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