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을 재개정하지 않으면 학교급식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법, 지난 수능에서의 단순부정행위자(휴대폰 소지) 구제 등 다른 법안들도 모두 처리하지 않겠다고 한다. 사학개혁국본과 전교조, 학벌없는사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27일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무려 1300여 킬로미터를 걸어 서울에 도착한 교수노조도 여독을 풀 새도 없이 집회에 동참했다.
사설왕국처럼 운영되던 사학에, 국민이 개방형 이사라는 이름으로 감시의 눈 하나 붙이는 것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은 국가의 입법기능을 또 다시 마비시키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퇴임시에 사학법 재개정을 특별히 당부했다. 한나라당에게 충정의 대상은 사학재단인가? 한나라당은 사학재단의 사설왕국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려 하는가?
한나라당은 사학법으로 사학을 전교조가 장악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모두 거짓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사립학교 교사들의 전교조 가입 비율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전교조 교사들은 개방형이사 추천에 작은 영향력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개방형이사는 전교조를 포함한 여러 주체들의 의견을 모아 복수추천 되고 결정권은 재단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건학이념에 맞지 않는 인사는 재단에게 거부할 권한이 있다. 그러므로 개방형 이사를 통해 전교조나 좌익세력이 사학을 접수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분명히 거짓이다.
한나라당도 자신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집요하게 전교조와 좌익을 거론하는 건 국민의 레드콤플렉스와 노조혐오증을 자극해 사학개혁을 막겠다는 저의다. 아직도 이런 구시대적 발상을 하는 정당이 있음을 개탄한다. 아직도 이런 구시대적 흑색공세가 버젓이 통용되는 우리 공론장의 수준을 개탄한다.
대전 동명중학교의 전교조 선생님 두 분은 재단의 비리를 고발했다가 해임 당했다. 서울 동일여고의 선생님들은 비리를 알렸다가 고발과 직위해제를 당했다. 경기도 평택 한광여고의 한 선생님도 학교법인의 회계조작을 알렸다가 곧바로 직위해제 당했다(교육희망 06.6.25). 한나라당이 말하는 전교조가 학교를 점령하는 사태란 이런 것을 말함인가? 개방형 이사가 재단의 비리와 황제경영을 감시하는데도 재단이 감히 개방형 이사를 자를 수 없는 사태를 한나라당은 '전교조의 학교접수'라고 표현하는가?
최근 발표된 사립학교 감사 결과에 따르면 124개 학교 중 문제가 적발되지 않은 학교는 단 30여 곳에 불과했다. 또 올 4월의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1998개(초중고 1673곳, 대학 325곳) 학교 중에 초중고의 경우 전체 교비회계(5조9644억원) 가운데 정부와 학부모 부담률이 96.2%(정부 56.5%, 학부모 39.7%), 법인전입금 비율은 고작 2.2%였다.
학교법인의 수익용 재산에서 발생한 이익은 최소 80% 이상을 학교 운영경비로 써야 한다. 그러나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263개 사립대학의 지난해 수익용재산 운용순익은 3001억원이지만, 학교 운영경비로 쓰인 것은 1874억 원으로 62.4% 수준에 그쳤고, 그 중 56곳은 전출액이 0원으로 하나도 없었다.
이런 건조한 수치들의 나열로 사립학교의 실태와, 우리 국민이 사립학교에서 당한 고통을 다 헤아릴 수 없다. 국민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사립학교에 자식들을 저당 잡혔다. 교육은 공공의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도 공공의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설사 개인의 재산권에 속한다 해도 운영은 공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물며 사립학교는 개인 자산도 아니다. 이미 공공에 출연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운영자금은 거의 전적으로 국민이 공동부담 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설왕국의 제왕처럼 군림하려는 사학재단 때문에 국민의 가슴엔 한이 맺혔다.
국가 교육체제는 공공, 즉 우리 국민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립학교는 사설학원이 아니라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은 자식을 어쩔 수 없이 사립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나라에 태어난 죄로 자식을 사설왕국에 보내야 했던 부모들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학생들의 심정은 또 어떠했겠는가.
감시하는 것으로도 부족하고 운영에도 개입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자신들을 사설왕국의 제왕으로 착각하는 재단 측 인사들이 그 어떤 공공의 개입도 막고 있다. 정치가 진정 국민일반의 이익과 의사를 대변한다면 정치가 앞장 서서 사학재단의 횡포를 견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땅에 정치가 공공의 것으로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거꾸로 국민일반의 이해에 반하면서 사학재단의 사리사욕만을 대변하고 있다. 공공을 대리하지 않고 사욕을 대리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청부사 집단인가?
사학재단이 한국의 대표적인 기득권 집단이요 국민 위에 군림하는 봉건적 토호 집단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하지만 공화국의 공교육은 봉건적 토호들의 위세 위에 있는 것이다.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의 재력으로 학원을 설립해 운영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공교육으로서 국민의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학교라면 국가공동체의 공공적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민주공화국의 근원적인 헌법 정신이다.
한나라당과 사학재단이 민주공화국을 짓밟고 있다. 불과 2명의 개방형 이사조차도 안 된다는 그들에게 발목 잡혀 나라의 입법중추가 멈춰서고 있다. 장상 민주당 공동대표는 '등'자를 넣어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지금의 사학개혁안도 극히 부족한 안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흔들려, 또 다시 농성과 1인 시위로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정세가 닥쳤다.
열린우리당이 집권해 교육부문에서 이룩한 단 하나의 업적이 '불완전한 사학개혁'이다. 이마저도 후퇴한다면 열린우리당이 지난 선거에서 국민에게 호소했던 말들은 모두 달콤한 거짓에 불과하게 된다. 입법부 내에서 수구기득권세력의 공세를 막을 현실적인 힘은 열린우리당이 가지고 있다.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책임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학개혁이 후퇴하면 열린우리당이 책임을 지게 된다. 책임의 끝은 심판이다.
사학법 재개정은 막아야 한다. 재개정하더라도 개선해야지 개악해선 안 된다. 한나라당과 사학재단이 원하는 건 개악으로서의 재개정이다. 국민이 나서서 정치권을 채근하고 사학재단에 힘을 보여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사학법 위헌 여부 판결에도 국민여론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사학법 재개정 공세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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