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여성 '자청비'를 찾아서

[서평] 참 재미있는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를 읽고

등록 2006.06.28 16:21수정 2006.06.2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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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 현암사

그리스 로마신화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을 줄줄 꿰는 어린이나 젊은이들을 요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른바 '신화열풍'이 불어 닥친 이후 발생한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우리 신화의 본령과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도 도처에서 이루어졌으며, 결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신화는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신화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뮈토스 Mythos'는 본래 '이야기된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신화의 첫 번째 속성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전(口傳)에 의지하였으므로 신화는 하나의 완결된 판본이 아니라, 다양한 이본과 변형본을 지니게 되었다. 그 결과 신화는 때로 매우 모순적이고 모호한 양상을 띠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전되면서도 반드시 유지되는 기본적인 얼개나 틀은 일정하게 양식화되면서 특정 모티프와 사건전개 그리고 반복법 같은 언어형식을 창출하게 된다. 따라서 여러 판본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전개에 다소간 편차가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적인 내용이 있기 마련이다. <신화>의 저자 돔머무트-구드리히는 그것을 명쾌하게 요약한다.

"신화에는 기억, 전통, 관습과 같은 문화전반이 표현되어 있다. 신화에는 하나의 세계상 전체가 들어있다. 낮과 밤의 변화, 사계의 흐름에 따르는 초목의 생장과 소멸, 인간의 탄생과 죽음, 천둥과 번개 등과 같은 자연의 힘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야기되는 신들과 신화의 의미는 상황과 장소, 역사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는다." (<신화>, 해냄, 2001, 9쪽)

짚어 볼만한 지은이의 몇 가지 생각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이하 <우리 신화>)에는 모두 스물한 편의 신화가 담겨있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작품 선별기준을 확연히 밝힌다.


첫째, 문헌신화를 배제하고 대부분 무속신화인 구전신화만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둘째, 구전신화 가운데 우리 겨레의 정서를 온전하게 담아내고 보편성을 갖춘 것을 골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신화를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다시 쓰거나 고쳐 썼다고 덧붙인다. 구전된 것은 우리 겨레의 것이므로 지은이는 개작을 그다지 저어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과문한 내가 보기에 우리 무속에는 '유불선' 삼교의 영향이 골고루 담겨 있는 듯하다. '장유유서'로 표현되는 유교의 근간은 오늘도 온 나라에서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무속 혹은 민간신앙에 깊이 침윤해 있는 유교의 가르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거의 모든 사찰에서 '삼성각'이나 '산신각'을 만날 수 있으며, 수많은 성황당 내지 당산나무가 존재한다.


이런 연유로 <우리 신화>에서는 '삼교'의 가르침을 매우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 하나의 정본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이 신화의 세계이자 본질이다. 지은이가 개작이나 윤색에 괴로워하지 않았음은 그가 신화의 본질 가운데 하나에 도달해 있음을 뜻한다. 그것의 적절성 여부, 이를테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읽힐 수 있는가는 문제로 남는다.

스물한 편의 신화 가운데 세 편을 골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지금'과 '여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재미있으며, 유용한 정보와 적정선의 도덕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 편의 신화에 담긴 이야기 줄거리가 자연스럽고 매끄러워 하나의 생생한 '설화문학' 내지는 '서사문학'으로 시원하게 독서될 수 있음도 큰 원인이다.

오구신 바리데기: 버린 자식의 지극한 효성과 환생신화

인간세상 삼나라의 오구대왕은 옥황상제가 거주하는 천하궁의 점쟁이 가리박사의 말을 무시하고 서둘러 길대부인과 결혼했다가 딸만 내리 일곱을 낳는다. 일곱째 딸을 보게 된 오구대왕은 분노로 몸을 떨다가 아이를 버린다. 이름도 제대로 지어주지 않고 바리데기란 별명만 붙여줄 따름이다. 버려진 바리데기는 늙은 거지부부 손에서 잘 자라 15세에 이른다.

이 무렵 오구대왕은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 유일한 희망은 서천서역국 동대산의 약수를 마시는 것이다. 길대부인의 간절한 요청에도 금지옥엽 키운 여섯 딸은 서역정토 혹은 저승세계인 그곳에 가려하지 않는다. 길대부인은 마지막 희망 바리데기를 찾아 나서고, 모녀상봉이 이루어진다. 바리데기는 갖은 어려움을 뚫고 환생(還生)꽃을 가지고 귀환한다.

<우리 신화>에서 되풀이되는 몇 가지 전형화가 '바리데기'에 들어있다. 우선 인간의 모든 것을 주재하는 천하궁 (내지는 옥황궁) 주인의 위세와 권위에 관한 것이다. 가리박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에 따른 업보가 줄줄이 세상에 나온 딸 일곱으로 표현된다.

(우리 신화>에서 '병막이신 거북이와 남생이 형제'를 빼면 자식이 하나나 셋, 일곱 내지 아홉으로 드러나 있는 점이 흥미롭다. 불균형과 부조화에서 균형과 조화로 나아가려는 지향의 발현이 아닌가 한다.)

두 번째는 자식을 버리거나 내쫓는 행위다. 다산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거나, 지나친 자의식을 지닌 자식을 벌주거나 ('감은장 아기'), 공동체 규율을 깨뜨린 자를 징벌할 경우 ('자청비') 자식은 집밖으로 내쫓긴다. 하지만 그들은 성공하여 귀환한다. 신화수용자인 민중의 기대지평을 만족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윤리적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세 번째는 '15세' 나이에 관한 것이다. <우리 신화>의 주인공들은 예외 없이 정형화된 성장과정을 겪는다. 순서가 더러 바뀌지만 그것은 돌에 걸음마, 세살에 말하기, 다섯 살에 짐 지기, 일곱 살에 말 타기, 아홉 살에 글공부, 15세에 과거응시 내지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시작한다. 바리데기의 영웅적인 모험도 15세에 시작하여 파란만장한 역정을 내보인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야 비로소 홀로 설 수 있었다는데, 신화 속 인물들은 훨씬 빠른 인생살이를 경험한다.)

네 번째는 환생화에 대한 것이다. 바리데기는 동대산 산지기 동수자의 요구를 들어준 다음에야 거기서 삼천리 떨어진 서천꽃밭에서 환생화를 구할 수 있었다.

"칠흑 같은 검은 꽃은 죽은 사람 뼈를 살리는 뼈살이 꽃, 살빛처럼 샛노란 꽃은 살을 살리는 살살이 꽃. 핏빛처럼 새빨간 꽃은 피를 살리는 피살이 꽃, 물빛처럼 새파란 꽃은 숨을 살리는 숨살이 꽃, 눈처럼 새하얀 꽃은 혼을 살리는 혼살이 꽃이라." (71-72쪽)

부당하거나 억울한 죽음, 제 명을 다하지 못한 죽음, 원한에 사무친 죽음은 반드시 해원상생 시키려는 신화수용자들의 간절한 바람이 '환생화'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버려진 자나 쫓겨난 자가 그런 소망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고정된 틀과 도덕률에 제한받지 않는 유연성을 확인할 수 있다. 주류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민중의 지혜라고나 할까!

자청비와 문도령: 남존여비에 도전하는 맹렬 여인상

농신으로 널리 알려진 '자청비' 이야기는 매우 색다른 데가 있다. 옥황궁 문곡성의 아들 문도령과 한날한시에 태어난 자청비는 동개남상주절과 서개남금수절의 경쟁관계로 인하여 정수남이라는 경쟁자를 가지게 된다. 정수남은 자청비 아버지 오로대감의 여종 정수남의 아들이다. 여기에는 시주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찰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나타나 있다.

그들 모두가 열다섯 살 되었을 때 사건이 시작된다. 동개남상주절로 글공부하러 가던 문도령이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자청비를 만난다. 부모를 어렵게 설득한 자청비는 남장한 채 글공부하러 문도령과 동행한다. 떠나려는 딸과 그것을 막는 부모의 대화를 보자.

"딸자식이 무슨 글공부를 한단 말이냐? 물 길어 밥하고 베 짜서 옷 짓는 일만 배우면 그만이지?" "어머님, 아버님. 그런 말씀 마세요. 딸자식이라고 글 못 배우게 하면 나중에 두 분 돌아가신 뒤 제사에 축문, 지방은 누가 쓴단 말입니까?" (106쪽)

여자는 집안 살림, 남자는 글공부와 과거급제라는 정해진 도식과 역할분담에 반기를 드는 자청비의 태도는 당당하다. 그녀가 부모를 설득하는 무기는 무남독녀 외딸로 부모의 제사를 제대로 모시겠다는 것이다. 축문과 지방으로 표현되는 유교적 전통과 습속 및 그것을 준수하고자 하는 대갓집의 일상이 눈에 선하게 들어오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청비는 글공부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문도령을 능가하여 그를 괴롭히는데, 문도령이 제안한 '오줌 멀리 내갈기기' 내기장면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압권이다.

"오줌 멀리 갈기기 내기라니! 자청비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문도령은 벌써 오줌을 여섯 발이나 갈겨 놓고 뽐내면서 어서 해보라고 하는 거야. 자청비는 궁리 끝에 대나무 대롱을 몰래 바지춤에 감추어두고 그리로 오줌을 갈기니 열두 발이나 나가거든." (108쪽)

남장여자가 실행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우리는 신화에 담겨있는 생활상의 일면을 웃음과 함께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악의 없는 해학이야말로 우리 신화 내지는 문학과 예술의 정수 가운데 하나일지 모르겠다(해학과 대비되는 '풍자'는 우리 문학과 예술에서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늦깎이 문도령은 먼저 정체를 밝힌 자청비에게 돌아오리라 기약하고 하늘로 올라가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그는 아버지 명에 따라 서수대왕 딸아기에게 장가들어야 한다. 자청비는 정수남의 유혹과 잔꾀를 물리치고 마침내 하늘로 올라가 문도령을 만나지만 예비 시부모의 고된 시험을 이겨내야 한다. 그것은 불 위에 작두를 걸어놓고 작둣날을 타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청비'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오늘까지도 남아있는 '무속의 전형'을 보여주는 본보기다. 시련을 극복한 자청비는 문도령을 대신하여 서역의 백귀군대까지 격파한다. 옥황상제로부터 공로의 대가로 갖가지 씨앗을 받은 자청비는 인간 세상에 그것들을 뿌린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이다.

"그 뒤로 문도령은 상세경으로 큰 농신이 되고, 자청비는 중세경으로 작은 농신이 되어 인간세상 농사짓는 법을 잘 다스렸어. 정수남은 무엇이 되었는고 하니, 하세경으로 목축신이 되어 온갖 집짐승 기르는 일을 다스리게 됐지." (121쪽)

자질과 능력에서 문도령을 훨씬 능가하는 자청비는 중세경에 멈춰버린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청비는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는 세상에 도전장을 내 당당히 승리했지만 끝내 그런 세상의 지배질서에 편입된다. 전복이 아니라 순응에 익숙했던 우리사회와 구성원들의 시각과 관점을 모두 만족시키는 결말이다. 여성우위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조왕신 여산부인과 문왕신 녹두생이: 후덕한 본처와 악독한 후처의 전형화

집안에는 집을 지키는 열명의 신이 있다고 한다. '시왕'이라 불리는 그들은 주신인 성주신 이외에 지신, 터주신, 조왕신, 삼신(아기 탄생을 주관하는 신), 문왕신, 업왕신(곳간의 재물 지키는 신), 철융신(장독간 지키는 신), 마부왕(마구간과 외양간 지키는 신), 측신이다. 그 가운데 조왕신과 문왕신, 그리고 측신을 한번 살펴보자.

주년국 남선고을의 남선비와 여산부인은 혼인하던 해부터 아들을 출생하여 일곱 형제를 내리 얻는다. 알뜰한 여산부인은 천성이 게으른 남선비에게 장사밑천을 장만해주고 배를 태워 보낸다.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도착한 남선비는 장사고 집이고 다 잊은 채 주막집 딸 노일자대에게 홀려 돈을 몽땅 날리고 눈까지 멀게 된다. 여산부인은 남편을 찾아 나선다.

후처 노릇을 자처한 노일자대는 여산부인을 오천강 연못에 빠뜨려 죽인다. 눈먼 남편 남선비는 그런 노일자대가 여산부인인 줄 알고 고향으로 데리고 온다. 일곱 아들 가운데 막내인 녹두생이만 노일자대가 친어머니가 아님을 간파하고 의붓어미의 정체를 밝힌다. 달아나던 노일자대는 급한 나머지 뒷간으로 들어갔다가 문기둥에 목을 매 자살한다.

녹두생이는 형들과 함께 어머니 여산부인의 시신을 오천강에서 찾아낸다. 그리고는 하늘나라 서천꽃밭에서 환생화를 구해다가 죽은 어머니를 살려낸다. 그들이 죽을 때가 되자 옥황상제는 여산부인을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으로, 녹두생이를 문을 지키는 문왕신으로 노일자대를 뒷간을 지키는 측신으로 만들어주되 부엌 쪽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한다.

악독한 의붓어미는 동서고금의 전형적인 이야기 모티프 가운데 하나다. <우리 신화>의 '칠성님과 옥녀부인'에서도 이것은 나타난다. 시기와 질투에 불타는 후처의 악행은 전처소생 아들의 생간을 요구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 전개는 조선왕조 태종대에 만들어진 '재가금지법'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며, 소월의 시에서도 되풀이된다.

'조왕신과 문왕신'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게으르며 놀기 좋아했던 남편 남선비를 옥황상제가 헛간이나 지키는 '잡신'으로 만든 일이다. 일부종사한 여산부인이 따뜻한 부엌의 신이 된 것과 비교하면 이것은 형벌에 가까운 결과다. 그러나 의붓어미를 알아보지도 못했던 다섯 아들을 '오방신'으로, 여섯째 아들을 '뒷문왕'으로 삼은 것은 다소 작위적이다.

"오방신(장)은 중국 도교계통의 신령으로 인간에게 평안과 태평과 재수를 가져다준다고 생각된다. 무당들은 이 신령을 관성제군 (관우) 만큼이나 위력적인 신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무, 조흥윤, 1985, 98쪽)

'자청비'에서도 옥황상제의 논공행상은 불공평하였다. 하지만 온 가족을 고루 고려하고, 부족한 가부장을 가차없이 질타하는 최고권력자의 선고는 추운 물속에서 오래도록 죽어있던 여산부인에 대한 배려만큼 정당한 것이다. 부엌 쪽을 보고 뒷간을 짓지 않는 우리 건축의 오랜 전통을 설명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조왕신'과 '측신'의 대립이기도 하다.

글을 마치면서

<우리 신화>의 지은이는 글을 쓴 목적과 바람을 매우 명징하게 드러낸다.

"글쓴이는 우리 신화에 나름의 질서를 얹고 싶었다.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가 거대한 '한국 신화'의 틀 안에서 톱니바퀴 구실을 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6쪽)

지은이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런 의도가 어느 정도 관철되었는지는 생각할 여지가 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자료들에 대한 폭넓은 대조와 면밀한 분석 및 종합적인 작업이 선행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문헌신화에 주로 나타나는 '건국신화'와 전국 각지에서 수집되는 전통적인 이야기와 설화에 대한 전체적인 조명이 선결되어야 할 터이다.

충분히 겹쳐지고 자주 반복되는 모티프와 공통되는 형식적-내용적 특징들을 전면적으로 살피면서 동아시아 전반에 출현하는 신화와 전설로 시야를 확장하면 더욱 풍요롭고 튼튼한 얼개가 마련되지 않을까 한다. 요즘 국문학계를 필두로 몇몇 연구자들의 집념 어린 노력과 풍요로운 결실이 조만간 상호침투와 상승작용을 일으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가 마침내 문학과 예술의 다하지 않는 원천을 발굴한다면 '문화의 시대' 21세기를 훨씬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시간대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논의되고 있는 마당에 제도적인 틀과 아울러 내용적인 면까지 깊이 사유할 근거를 우리는 꼭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도 <우리 신화>가 제기하는 문제는 결코 작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지음, 현암사, 2004.

덧붙이는 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지음, 현암사, 2004.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지음,
현암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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