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땅이 된 나의 텃밭과 꽃밭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자 지렁이가 살고, 달팽이는 사랑을 나누고...

등록 2006.06.29 09:10수정 2006.06.2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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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땅을 조금 빌려 땅콩을 심었습니다. 비닐을 사용하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땅을 조금 빌려 땅콩을 심었습니다. 비닐을 사용하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 배만호


a 사랑을 나누고 있는 달팽이입니다.

사랑을 나누고 있는 달팽이입니다. ⓒ 배만호

대부분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을 시작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만 일을 끝낼 수 있지요. 시간이 흘러가야 나만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직장 생활은 따분하고 지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지루한 일상에 작은 보람이나마 느껴보려고 꽃밭을 가꾸고, 마당 청소를 하고, 애써 텃밭에 신경을 쓰곤 하지요. 강물처럼 흘러가고 다시 오는 것이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뭘 하며 흘러 갔냐가 중요하겠지요.

출퇴근을 하며 길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참으로 아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 출퇴근 시간을 쪼개서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꽃밭과 텃밭을 관리하는 것이지요.

저의 일터에 커다란 방이 하나 있어 그곳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집으로 갔다 왔다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껴진 시간을 투자하여 만든 꽃밭과 텃밭을 바라볼 때는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유난히도 아침잠이 많은 제가 일찍 일어나게 된 것은 마당과 밭에서 자라는 온갖 농작물 때문입니다. 밤새 얼마나 자랐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잘 잤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이지요.

그래서 아침이면 세수를 하기에 앞서 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밭이지요. 밭에 가면 호박 넝쿨은 다른 작물에 피해를 적게 주려고 구석진 곳으로 자라나게 합니다. 오이 넝쿨도 바로 잡아 줍니다.


그러다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며 속으로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제일 기분이 좋을 때는 수꽃을 발견하고 암꽃을 따다가 수정을 시켜주는 일이지요. 벌들이 하는 일이지만 꽃들이 커다란 잎사귀에 덮여 잘 보이지 않으니 수분이 되지 않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풀을 뽑기도 하고, 또 너무 많이 자란 가지를 솎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한참을 들여다보곤 하지요. 그렇게 아침을 보내다 보면 한 시간이 언제 갔냐는 듯이 지나갑니다.


그러면 서둘러 목초액을 뿌리기도 하고, 식초를 뿌리기도 하지요. 하루 동안 진딧물이 또는 다른 벌레들이 애써 키운 자식 같은 이들을 괴롭히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우려고 하니 가끔은 벌레를 손으로 잡아주기도 합니다.

a 담장을 타고 자라는 호박넝쿨. 개도 예쁜 표정을 짓네요. 버려진 개였는데, 키운지 석 달 정도 되었습니다.

담장을 타고 자라는 호박넝쿨. 개도 예쁜 표정을 짓네요. 버려진 개였는데, 키운지 석 달 정도 되었습니다. ⓒ 배만호


그러다가 참으로 이상한 모습을 바라보고 눈이 멈췄습니다. 귀여워 보이는 달팽이 두 마리가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잠시 민망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려다 카메라를 가져와 사진을 몰래 찍었습니다.

연인처럼 보이는 달팽이 두 마리는 그래도 세상일은 모른다는 듯이 사이좋게 붙어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 사진을 찍으며 바라보다가 모른척하며 지나갔습니다. 아마 달팽이 부부도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아니면 둘만의 시간을 방해해서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겠지요.

어느 시골이든지 농약을 치지 않고, 비료도 뿌리지 않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비료가 아니면 농사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제초제를 사용하고, 살충제를 사용했다면 아침마다 밭에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밤새 벌레들에게 얼마나 시달렸을까 하는 걱정도 없었을 것입니다. 호박잎을 어루만져 주며 암꽃과 수꽃을 서로 만나게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렇게 아름다운 달팽이의 모습도 볼 수 없었을 테지요.

자연은 참 고맙습니다. 풀조차도 잘 자라지 않는 땅이었는데 생명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으니 밭에 가면 거미들이 아주 많습니다. 땅 속에는 지렁이가 살고 잇습니다. 처음에 퇴비를 하고, 땅을 팔 때에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작은 생명들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상향인 듯 모여들고 있습니다.

a 노오란 호수에서 실컷 꿀을 모으고 있는 벌이 행복해 보입니다. 저 벌은 제가 키우고 있는 토종벌이지요.

노오란 호수에서 실컷 꿀을 모으고 있는 벌이 행복해 보입니다. 저 벌은 제가 키우고 있는 토종벌이지요.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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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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