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그 동생까지 대통령?

[해외리포트] 퇴임 앞둔 젭 부시 주지사, 백악관 향한 행보에 관심

등록 2006.06.29 14:34수정 2006.06.2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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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타임>지 인터넷판 6월 17일자. 임기 종료를 앞둔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점치는 보도가 최근 많아졌다.

<타임>지 인터넷판 6월 17일자. 임기 종료를 앞둔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점치는 보도가 최근 많아졌다.

2008년 차기 대권을 놓고 공화-민주 양당의 여러 대선후보들의 행보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요즘, 워싱턴 정가에서는 내년 1월 두 차례에 걸친 플로리다 주지사 임기를 마치게 되는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의 향후 거취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시 가문의 끝없는 '파워 상속'에 지겨워 하는 미국민들이 더 이상은 부시가의 후손에 표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공화당 정치 분석가들은 젭 부시가 이제부터 뭔가를 시작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언론에서는 젭 부시가 주지사 퇴임 후 곧바로 2008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것인지, 아니면 우선 상원의원에 도전해 숨을 고른 후 차기 또는 차차기를 노릴 것인지 '시기'가 문제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작 젭 부시 본인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선출마를 부정적으로 말해 왔다. 그러나 현재 워싱턴 정가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전현직 대통령인 그의 아버지와 형 조차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 부자, "젭은 대통령감" 한 목소리

지난해 6월 젭 부시의 아버지는 CNN의 '래리 킹 라이브' 쇼에 출연하여 "그가 대선 출마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나는 젭이 다음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며, 나의 아들은 매우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도 지난 5월 9일 중앙플로리다의 푸에르토리칸 클럽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젭이 대통령에 출마하기를 원하지만 본인의 의사는 아직 모른다"면서 "그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히 있다, 본인이 출마하게끔 강력하게 권유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직과 현직 대통령 부자가 합세하여 '젭은 대통령감'이라며 미리 선전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말도 안된다"며 웃어넘기고 있다. 사실상 젭 부시의 대선 출마설은 그가 2002년에 플로리다 주지사에 재선되면서부터 일기 시작했으나 그때만 해도 그의 측근들 조차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이 이같은 입장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2004년 플로리다에 네 차례의 초강력 허리케인이 휩쓸던 상황에서 침착하고 발빠른 그의 행보에 의해 피해가 최소화 되자 젭 부시는 일약 전국적인 인물로 떠 올랐다. 마침 대선 유세가 한창 열기를 뿜던 시기에 형과 함께 허리케인 피해 현장에서 심각한 얼굴로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두세달간 연이어 등장하면서부터 젭 부시는 이미 대선 무대의 조연급을 넘어서고 있었다.

'허리케인 젭'을 차기 '재난 대통령'으로

이후 걸핏하면 맞게되는 '허리케인 공습'으로 날이 새고 지는 플로리다에서 젭 부시는 허리케인 대비 및 피해복구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하우'를 축적해 왔고, 미국 남부의 허리케인 취약 지역의 상담역을 자임해 왔다.

그러던 차에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젭 부시의 주가를 더욱 올라가게 만들었다. 비록 루이지애나를 휩쓴 카트리나가 강력하기는 했으나 미국민들의 뇌리 속에서는 모든 면에서 플로리다와 자연스런 비교가 이루어졌을 터였다.

이같은 비교는 지난 16일 국토안보부가 발표한 통계자료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국토안보부는 미국 전역 50개 지역을 대상으로 허리케인, 자연발생 화재, 전염병 등의 재해를 만났을 경우 정보처리 및 대피 계획, 자원관리, 의료시설, 대피소, 대중 경보 상태 등에서 플로리다 주가 가장 준비가 잘 되어있다는 보고서를 내 놓았다.

국토안보부 보고서에서 10개 주가 '적합' 등급을 받았으나 허리케인 대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플로리다 주만 유일하게 모든 조항에서 '적합' 평가를 받았다. 38개 주는 '부분 적합'을 받았고, 지난해 카트리나 재앙을 당한 루이지애나와 웨스트 버지니아는 '부적합' 평가를 받았다. 9.11 사태 당시 테러리스트의 표적이었던 뉴욕과 워싱턴DC도 긴급상황 대책에서 '부분 적합' 평가를 받았다.

결국 허리케인 대비에 누구보다도 심혈을 기울여 온 덕에 젭 부시는 지난 2002년 주지사 재선에 너끈히 성공했고, 2004년 대선에서도 플로리다에서 부시에게 여유있는 승리를 안겨 줘 재선의 1등공신 역할을 했다.

플로리다 지역 신문의 오피니언 란에는 "헌법을 바꿔 '허리케인 젭'을 계속 주지사로 남게 하자"는 '농담'과 "차기의 '재난 대통령'으로 삼자"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허리케인 같은 대재난을 겪으면서 젭 부시의 대선 출마가 '말이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9.11 테러 사태 이후 미국민들의 재난 대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 정가에서 젭 부시 카드는 언제라도 떠오르게 되어 있다.

a 휴가중인 부시 가족. 왼쪽부터 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휴가중인 부시 가족. 왼쪽부터 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 연합뉴스

강력한 정책 추진력에 큰 인기, 그러나...

여기에다 주지사로서 젭 부시의 치밀한 정책 수립 능력과 추진방식에서 비롯된 업적들도 긍정적인 점수를 얻어 왔다. 젭 부시는 형인 조지 부시와는 다르게 정책 수립에 있어 마치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광적인 면이 있다. 일부 비판적 관측통들은 이를 두고 가문의 입지를 굳히려는데 목적을 둔 가족 차원의 강한 열망의 표현이라 여기고 있다.

젭 부시 행정부 전 대변인 코리 틸리는 <타임>지 최근호에서 "플로리다 주민들은 높아진 세금에도 불구하고 이에 준하는 대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정책에 (대한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그를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젭 부시가 1998년 주지사 임기를 시작한 이래 플로리다에서 줄곧 6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견지해 온 것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젭 부시는 일부 그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플로리다 수능시험제도(FCAT), 성과별 학교 및 교사처우 개선, 상위 20% 학생들에 대한 대학 입학 특혜 등 공립학교의 질적 향상을 위한 교육 정책에 강한 추진력을 발휘해 왔다. 또한 일반 메디케이드 수혜 환자들을 사립병원 시스템에 적용시키려는 의료정책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잠재적으로는 전국적인 의료 정책의 주요 모델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젭 부시의 이같은 '추진력'은 그를 선호하는 측에서는 긍정적인 면으로 받아 들이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독선'으로 평가한다.

최근 공화당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플로리다 주 의회가 젭 부시의 야심찬 교육 정책에 비토를 한 것도 그의 추진력이 항상 긍정적인 평가만을 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플로리다 주 의회는 플로리다 주민투표에서 콩나물 교실 해소안이 통과되었음에도 불과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며 이를 철회하려는 젭 부시의 시도를 묵살하고 이 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젭 부시는 이에 앞서 지난해에도 공립학교에서 실력이 저조한 학생들을 사립학교로 보내는 '바우처 프로그램'을 부활시키려다 주 대법원이 이를 위헌적이라는 판결을 내려 기가 꺾이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3월 주 대법원 판사들이 배석한 가운데 벌어진 연설에서 느닷없이 "사법부의 바우처 프로그램에 대한 기각은 상식에 반하는 처사"라고 비판하고 나서 공화당 지도자들을 당황케 했다.

a 지난 1999년 12월 22일 플로리다 탤라하시에서 가진 한국전 참전용사비 제막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젭 부시.

지난 1999년 12월 22일 플로리다 탤라하시에서 가진 한국전 참전용사비 제막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젭 부시. ⓒ 김명곤

"대통령 되려면 여론 수렴과 충고에 귀 기울이라!"

젭 부시의 이처럼 고집스럽고 울컥 화내는 성격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대선 출마에 잠재적인 시비 거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젭 부시의 절친한 친구이자 검사인 톰 럼버거는 <타임>지에 "젭은 플로리다 주 역사상 가장 영리한 주지사 중 한 명이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식만 고집한다든지 쉬운 길로만 가려는 성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젭에게는 좀 더 많은 의견과 충고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젭 부시는 특별히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이를 지나치게 정치 이념화해 무리하게 확장시키려 하다 가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지고 위계질서가 무너지면서 주 아동복지 정책 기관이 대단한 비리와 근무 태만으로 비난 받기도 했으며, 변칙적인 세금 우대 정책으로 사립학교에 돈을 기부하는 기업들에게 수만 달러의 자금 혜택을 주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보수 카톨릭 신자인 젭 부시는 그의 형처럼 기본적으로 세상을 암흑과 광명의 대립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이같은 성향은 테리 시아보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올봄 공화당이 양원을 지배하고 있는 플로리다 주 의회는 젭 부시가 오랫동안 지지해왔던 청소년 범죄자들을 순화시키기 위한 수용소인 '부트 캠프'를 폐쇄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 의회가 부시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패쇄한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1월 한 수용자 소년이 캠프 경비원들에게 두들겨 맞아 죽은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치 시저 현 브로와드 카운티의 민주당 대표는 "플로리다는 중도적 위치에 서있는 주 라고 할 수 있는데, 젭 부시는 대다수의 플로리다 주민들과 발을 맞추지 않고 혼자만 앞서 나아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2008년 대선, 젭 부시에게는 적기 아니다?

일단 워싱턴 정가에서는 올해 53세의 젭 부시가 8년간의 주지사 임무수행과정에서 보여 준 뛰어난 능력으로 미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지사중 하나라는 점에서 '대통령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치 갈렌 공화당 대변인은 <올랜도 센티널> 6월 10일자에 "만약 젭 부시가 출마한다면 다른 후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서 "미국에서 부시집안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특별히 이름을 알리기 위해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인지도 면에서도 타 후보에 비해 월등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

그러나 바로 이점이 그가 2008년 대선에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는 데 우선적인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측근들의 분석이다. 즉 부시가문의 연이은 대권 도전이 정치적인 유력가문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세습 왕조'를 세우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측근들은 2008년이 아닌 2012년이나 2016년에 출마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한 간단치 않은 그의 가정사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젭 부시의 딸 노엘리는 현재 약물 중독에서 회복 중에 있는데, 경우에 따라 그를 포함한 가족 전체에게 대 혼란을 가져 올 위험천만한 정치적인 곡예로부터 어느 정도 휴식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젭 부시가 이같은 이유들 때문에 2008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일부 정치분석가들은 젭 부시가 최근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존 멕케인의 예상치 못한 방문을 받은 것을 두고 2008년 대선에 부통령 후보로서 지명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현재 워싱턴 정가에서는 젭 부시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무대의 중심에서 오랫동안 떠나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력한 정치가 집안의 배경을 가진데다 이미 '보수주의자들의 스타'가 되어 있고, 플로리다 주지사로 대선길목을 지키고 있다 결정적 순간에 형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며 '이기는 맛'을 몸에 익힌 그가 뒷전에 물러나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퇴임후 당분간 젭 부시는 마이애미 저택에서 백악관을 향한 출사표를 던질 적절한 시기만을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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