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해금강호텔에서 열린 제14차 남북이산가족 개별상봉 행사에서 1978년 전라북도 군산시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실종된 김영남(가운데)씨의 딸 은경(일명 혜경)양이 남측 할머니 최계월씨를 만나기 위해 객실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많이 변했네요. 살이 좀 찐 것 같아요."
28년 만에 이뤄진 최계월(82)·김영남(45)씨 가족의 상봉 장면을 일본에서 TV를 통해 지켜보던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는 화면에 손녀 은경(19)양이 나타나자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김영남씨와 요코타 메구미 사이에서 태어난 은경양은 당초 '김혜경'이란 이름으로 일본에 소개됐다. 2002년 9월 고이즈이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했을 당시 북한 당국은 메구미가 자살했다는 통보와 함께 남편 '김철준'과 딸 '김혜경'의 존재를 알려왔다.
기구한 운명의 이 소녀는 이후 북한을 방문한 일본 정부관계자나 취재진들 앞에 계속 '김혜경'이란 이름으로 나타났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향해 "손녀를 만나러 북한에 오시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는 "우리가 가면 메구미가 죽었다는 통보가 기정사실이 된다"며 거부해왔다.
은경양이 다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년여만. 당시 중학생이었던 은경양은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가슴에는 김일성 배지, 김일성종합대학 배지와 함께 '김은경'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그리고 최계월씨에게도 스스로를 '김은경'이라고 소개했다.
북한은 왜 어린 소녀에게 그동안 가명을 사용하도록 했을까? 그리고 왜 지금 시점에서 실명으로 바로 잡았을까?
김혜경의 본명이 '김은경'임은 일본의 일부 관계자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김영남-요코타 메구미 부부와 교류가 있었던 귀국한 일본인 납치피해자 하스이케 가오루가 메구미의 부모에게 '김영남'과 '은경'의 실명을 알려줬다.
<아사히신문> 기자가 2002년 10월 평양에서 은경양과 인터뷰 할 때 서명을 요구하자 은경양은 '김은'이라고 써가다 급히 '은'자를 지우고 '김혜경'으로 고쳐쓴 일도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직 북한측의 공식적인 설명은 없다. 다만 김영남씨가 스스로 공작기관에 근무한다고 밝힌 점으로 미뤄 처음 일본과 접촉할 당시에는 정확한 신분을 감추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리고 김영남씨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이제는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이유로 이번 모자상봉을 반대했던 요코타 메구미의 어머니 사키에(70)씨는 상봉장면을 보고 "자식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면서도 "복잡한 기분"이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은경양에 대해서 "고독해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동안 북한측 설명의 모순점을 지적하면서 요쿠타 메구미가 살아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김영남씨가 29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어떤 증언을 하더라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며 벌써부터 선을 긋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