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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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6.06.29 17:53수정 2006.06.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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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뭇잎에 맞아 뒹군 빗방울을 맞은 솟은 밑을 내려다보고서 이상한 동물이 도망친 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솟은 오시를 깨웠고 오시도 밑을 내려다보고서는 안타까워했다.


-이런! 그걸 잡아가지고 가야 마을에서 얘깃거리도 생기는 건데!

솟은 지금이라도 내려가 이상한 짐승을 잡으려 갈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쏟아지는 비가 발자국을 지워버린 데다가, 마침 깨어난 수이가 솟의 태도를 힐난했다.

-마을에 데리고 가봐야 결국 죽이기까지 밖에 더하겠어? 차라리 잘 된 거지.

우렁찬 소리를 내리며 쏟아지던 비는 이윽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 그쳤고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오른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솟은 재빨리 나무에서 내려와 얕은 웅덩이에서 튀어 오르는 커다란 개구리를 잡아 패대기를 쳤고, 오시는 나뭇가지를 모아 펴서 젖지 않은 것을 골라 불을 붙이려 시도했다. 수이는 나무에서 작고 빨간 열매를 겨우겨우 한주먹 모아 솟에게 내밀었다. 솟은 시고 떫은 열매를 한가득 입에 넣고서는 그를 바라보는 수이를 마주 보며 씨앗채로 삼켰다. 수이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다 됐다.


마침내 오시가 불을 활활 붙이자 솟은 개구리와 허리에 찬 영양고기를 불속에 던져 놓았다.

-그 이상한 짐승이 불을 보고 올지도 모른다.


솟의 말에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고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오시는 부쩍 사방에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 이상한 동물은커녕 하이에나조차 기웃거리지 않았다. 배를 채운 솟 일행은 걸음을 서둘러 자신들의 터전인 마을로 향했다.

얼마 후 마을에 거의 다가왔다는 표식인 눈에 익은 산등성이 눈에 보일 즈음에 솟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시와 수이도 마찬가지였다.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살고 있는 인접한 두개의 마을은 결코 불을 꺼트리는 일이 없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불을 밝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이 사방을 뒤덮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다. 마을의 불은 냄새가 나는 풀로 유지시켰는데, 묘한 냄새가 나는 풀은 연기를 가득 피워내긴 했지만 벌레가 모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비가 내리면 불의 주위를 넓은 나뭇잎으로 덮은 뒤 계속 이를 지켜보고 보살폈으며 더 많은 비가 내려 사방에 물이 넘치는 일이 있어도 불은 높은 곳에 소중히 지켜졌다. 어쩔 수 없는 일로 불이 꺼지면 마을에서는 새로이 불을 받들어 모시고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며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울어 대었다. 그렇기에 마을에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연기가 그칠 날이 없었는데도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솟은 단숨에 마을을 향해 달음박질 쳤다.


마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있는 것이라고는 어지러이 쌓여있는 돌무더기와 거대한 동물의 뼈 무더기, 그리고 꺼진 불의 잔해뿐이었다. 뒤를 이어 달려온 수이와 오시도 이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다들 어디 간 거야?

먼저 정신을 차린 수이가 물었지만 솟과 오시가 그 물음에 대답을 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무슨 일이 있어 사람들이 한꺼번에 마을을 빠져나갔다고 해도 해가 지기 시작한 지금 즈음에는 돌아와야만 했다. 더구나 마을에는 갓난아이와 어린아이들도 상당수가 있었다. 그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솟 일행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거기에 솟은 더욱 이상한 점을 느꼈다. 주위는 아주 고요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평소 같으면 거대한 포식 동물의 울음소리와 새들이 날아오르며 짝을 찾는 소리가 있어야만 했음에도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솟과 수이, 오시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마을의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만약 짐승들의 습격으로 모두가 잡아먹혀 버렸다면 핏자국이라도 남아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조차도 보이지를 않았다.

-아악!

오시가 해가진 마을의 한가운데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솟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차분히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는 수이를 보니 차마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솟은 우선 불을 지피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오시를 뒤로 하고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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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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