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아는?, 자자"... '+α'가 필요해

[활동가와 차 한잔 ③] 경상도 사나이들의 모임 '좋아모' 김태성씨

등록 2006.07.06 11:38수정 2006.07.0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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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들을 빗댄 우스갯소리가 있다. 경상도 아버지들은 직장에서 돌아오면 다음과 같은 딱 세 마디만 한다는 것이다.

"밥도." "아는(애는)?" "자자."

표현에 인색하고 엄하기만 한 아버지, 자녀들도 그런 아버지가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하지만, 막상 아버지가 되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보고 배운 아버지의 모습이 자기가 알고 있는 아버지 역할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상도 사나이'를 자상한 아버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의 지역 시민단체인 '희망세상(전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모임 '좋은 아버지 모임'(이하 '좋아모') 회원이 바로 그들이다. '좋아모'는 직장에만 파묻혀 지내며 지역과 육아 문제에 무관심한 아버지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왔다.

공원 청소, 방범 활동 등 작은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아버지들은 자신의 자녀가 살고 있는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또 3년 전부터는 반송 지역이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복지우선투자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지역 주민과 학교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시돼 아버지들의 역할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두 아이의 아빠로 '좋아모'에서 활동 중인 평범한 직장인 김태성(35)씨를 만나 '좋은 아버지'가 되는 방법과 그 과정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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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지역공동체 ‘희망세상’에서 '좋은 아버지 모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성(35)씨 ⓒ 김수원

[① 말을 배워라] 무작정 화내지 말고 잘못을 설명하라

아기와 한 몸으로 어머니가 되기 위해 준비해 온 아내와 달린 남편들은 아버지 준비에 무척 서툴다. 김태성씨도 막상 아버지가 되고 나서 걱정이 많았단다. 그래서 첫 아이가 두살 때던 2002년 '좋아모' 문을 두드렸다.

"대부분 사람들이 평소에 아이들에게 표현을 거의 안 하는 사람들이었고,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막막해하고 있었죠. 그래도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그런 아버지들이 좋아모의 '좋은 아버지 학교'에서 배우는 건 아이들을 이해하는 법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어떻게 읽는지, 아이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등 처음으로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대화 방법을 배우는 것.

이런 걸음마 학습은 6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서서히 변화를 낳기 시작했다. 아이가 잘못하면 무작정 화부터 내며 야단치던 아버지들이 숨을 고르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 둘을 둔 한 회원은 예전에는 아이들을 야단치면서 뭘 잘못했는지 설명도 하지 않고 버럭 소리만 질렀죠. 그런데 지금은 형과 동생에게 각각 무엇을 잘못했는지 상세하게 지적해 주고 아이의 의견을 듣기도 해요. 아이들 스스로 잘못했다는 걸 느끼게 돕는 거죠."

[② 엄마와 함께] '엄한 아빠, 부드러운 엄마'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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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 아이들과 함께할 일정을 논의하고 있는 '좋아모' 회원들. ⓒ 김수원

"아빠가 엄해도 엄마가 부드러우면 되지 않느냐고요? 엄마와 아빠, 두 사람 모두 두 가지 역할을 겸비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 역할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죠. 아빠가 엄할 때 엄마는 부드럽고, 엄마가 엄할 때는 아빠가 따뜻하게 대해야 해요."

김태성씨는 부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부 사이의 관계도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 또 아이가 부모 한쪽과 문제가 생겼을 때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좋아모와 같은 활동도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를 포함한 온 가족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좋은 아버지 모임들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아버지 단독으로만 활동했기 때문이에요. 아빠들이 힘들 때는 엄마들이 챙겨줘야 해요. 엄마들이 어려울 때도 마찬가지죠."

물론 아빠와 아이들만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얼마 전 좋아모의 아빠들은 아이와 함께 경주로 기차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엄마의 도움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갈 수 있었다고.

"아이와 잘해보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시간이 그전보다 훨씬 짧아져요. 설사 아이가 아빠한테 삐쳐 있을 때도 빨리 눈치채고 없앨 수 있죠(웃음)."

[③ 다른 가족들]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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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이현(6)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 김태성씨. ⓒ 김수원

좋아모 회원들은 여름휴가도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다른 가족들과 자주 모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서로 친해진다고. 아이가 하나뿐인 요즘 추세에 아이들은 그 속에서 언니, 오빠, 형, 누나와의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웃인데도 얘기를 안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우리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줘요. 첫째로 태어난 아이가 동생 역할을 경험할 수도 있는 거죠."

그렇게 친해진 아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헤어지는 순간이 아이들이나 부모들에게 힘든 시간이다.

하지만 좋아모 활동을 한다고 아이와의 관계가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아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힘든 경우도 있다.

"한 회원은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쯤 활동을 시작했어요. 평소에 집에서 큰 소리를 많이 치는 아빠였는데 활동하면서 많이 변화했죠. 그런데 아이가 아빠의 달라진 모습을 잘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때 어릴 때부터 아빠와의 관계가 무척 소중하다는 걸 느꼈죠. 아이가 어릴 때부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요."

직장 생활에 지쳐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고 싶은 아빠들에게 좋아모 활동은 힘든 주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마에게만 맡기고 돈 벌어오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과거의 아버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억이 있다면 좋은 아버지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아래는 김태성씨가 추천한 좋은 부모가 되는 네 가지 지침이다.

▲아이의 판단과 생각을 존중하자 ▲아이에게 모범이 되도록 하며 약속을 꼭 지키자 ▲자녀를 칭찬해 주는 아버지가 되자 ▲한 달에 하루는 가족의 날로 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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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희망이 꽃피는 지역공동체 ‘희망세상’ http://www.sesang.or.kr

덧붙이는 글 희망이 꽃피는 지역공동체 ‘희망세상’ http://www.ses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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