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 아저씨, 놀이터에 시계를"
"어린이 여러분, 달아드릴게요"

[희망버스- 부산①] 십년을 하루같이 주민들과 숨쉰 '희망세상'

등록 2006.07.06 13:20수정 2006.07.1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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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생이 마을신문에 "놀이터에 시계를 달아달라'는 글을 투고하자 동장이 다음 호에 "시계를 달겠다"는 답글을 보내왔다. 부산 반송동 얘기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 놀라운 이야기 하나

"동장 아저씨, 놀이터에 시계를 달아주세요. 동생이랑 놀다가 시계가 없어서 집에 늦게 들어간 적이 많아요. 그래서 시장 부근 놀이터에도 시계를 달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거기는 아이들도 많고, 오고가는 어른들도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예은이 올림."

"어린이 여러분, 시계를 달아드릴게요. 현재 해운대구청 사회과에 요청한 상태이며 구청에서 처리가 어려울 경우 지역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설치코자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반송2동장 김회신."

한 초등학생과 동장이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다. 이 편지는 한 달에 한번 발행되는 한 장짜리 마을신문에 실렸다. 마을신문을 통해 초등학생과 동장이 대화하는 마을. 놀랍고 신기하다.

그래서일까. 대도시에 있는 이 동네는 '2005년 전국 주민자치센터박람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얘기다. 참, 마을신문의 이름은 <반송 사람들>이다.

# 놀라운 이야기 둘

부산은 다른 영남지역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가 매우 강한 곳이다. 지난 5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다랑은 '싹쓸이'를 했다. 그러나 유독 열린우리당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들을 따돌리고 1등으로 당선된 곳이 있다.

해운대구 4선거구인 반송동 1·2·3동이 바로 그 곳, 화제의 주인공은 고창권(40) 의원이다. 식당일을 하는 한 할머니는 "한나라당(소속)으로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고창권이니까 찍었다"고 했다.

고 의원은 반송동에서 95년 의원을 개원한 뒤 십년 넘게 지역운동을 해왔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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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세상은 '행복한 나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한달 수익금은 약 50만원. 이 돈은 모두 홀로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등을 돕는데 쓰인다. ⓒ 희망세상

# 놀라운 이야기 셋

한 지역공동체운동 단체가 주최하는 어린이날 행사에 참가자가 1만여 명에 이르렀다면 믿겠는가. 사실이다. 9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반송 어린이 놀이 한마당'이 바로 그것.

주민들은 각종 부스에 설치된 어린이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하고 게임도 하며 한 바탕 마을잔치를 벌인다. 단체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안 왔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오지 말래도 온다"고 즐거운 푸념을 한다.

어린이날 톡톡히 재미를 본 이 단체는 4년 전부터 중학생들의 축제도 준비했다. 중학생들 스스로 준비해서 개최하는 '별별축제('별같은 반송아이들의 별난 축제'의 줄임말)'다. 2년 전부터는 성인들을 위한 축제도 열고 있다. 아무래도 이 단체는 '잔치'로 승부를 낼 모양이다.

나눔가게에서 재활용품 팔고,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책 읽어주고

세가지 놀라운 이야기를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반송동'이고, 또하나는 지역 공동체운동단체인 '희망세상'이다. 그러니까,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지역공동체운동을 하고 있는 '희망세상'이라는 단체가 이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인 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을 제치고 1등으로 당선된 고창권 의원도 희망세상의 창립자이자 활동가다.

'희망세상'은 98년에 창립했다. 작년까지의 이름은 '반송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단체명을 바꾼 이유는 활동의 폭을 더 넓히기 위해서라고 한다. 반송동에서 쌓은 십년의 지역운동 경험을 다른 지역으로까지 퍼뜨리고 싶다는 바람과 자신감에서 내린 결정이다.

대체 이들의 호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김혜정 사무국장은 "십년 동안 사람들 가슴에 남는 사업을 했었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대체 가슴에 남는 사업은 어떤 사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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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사무국장은 약 십년동안 반송동에서 지역공동체운동을 해왔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반송동은 부자동네가 아니다. 60년대 수정동에서 강제철거당한 이주민들과 90년대 이후 서민 아파트 입주한 주민 등이 어울려 사는 지역이다. 해운대구 전체 생활보호대상자의 60%가 반송동에 살고 있고, 이 중 20%는 장애인이다. 그렇다보니 사업은 자연스럽게 '나눔'에 맞춰져있다.

희망세상은 '행복한 나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로부터 재활용품을 받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한 달 수입은 대략 50만원. 수익금의 전부는 소년소녀가장이나 여성가장, 홀로노인을 후원하는 데 쓴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아이들의 공간. 필독 권장도서가 비치돼 있고, 매주 토요일은 '책 읽어주는 날'로 정해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어른과 아이들이 책을 매개로 만나는 것.

'좋은 아버지 모임'에서는 가족단위의 농촌봉사활동을 통해 농촌의 어려움도 함께 나눈다. 물론 반송동 내 어려운 이웃돕기는 기본이다. 야생화 학습장을 공동으로 가꾸며 자연과 함께 숨쉬는 삶을 꿈꾼다. '어린이·청소년 리더십 교실'에선 나눔을 실천하는 민주시민 소양을 공부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마을신문 <반송 사람들>을 발행한다. 희망세상의 한 달 예산은 150만원에서 200만원. 이중 50만원이 마을신문 발행비로 쓰인다. 8절지 한 장, 네쪽에 불과한 지면. 신문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정도지만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APEC에 나홀로 반대... "희망세상이니까"

겉보기엔 어느 단체에서나 할 법한 평범한 사업들이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십년을 하루같이 거르지 않고 해왔다는 것이다. 어린이날 행사에 1만여 명을 모으는 힘도, 한나라당 텃밭에서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나가서 1등을 할 수 있는 힘도 여기서 나온다.

"예산이 없어 마을신문을 두 달 못낸 적이 있었어요. 주민들이 '왜 신문 안내냐'며 걱정하시고, 동네 지나가면 반가워서 손잡아주며 '고생 많지' 말씀하시고…. 정말 우릴 많이 기다리고 지지해 주시는 것을 느껴요."

김 국장의 말은 회원 200명뿐인 작은 단체가 주민들에겐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 실감나는 사례도 있다.

반송동엔 16개의 단체가 있다. 흔히 '관변단체'라 불리는 단체가 태반이고 '색깔있는 NGO'는 희망세상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매월 넷째주에 함께 마을청소를 한다. 어린이날 행사를 할 때는 다른 단체 회원들이 나와 부스 안내를 하거나 교통정리 등을 하며 제 일처럼 돕는다.

부산에서 APEC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일이다. 국제적 행사였던 만큼 부산시민들은 환영 일색의 분위기였다.

반송동에서도 희망세상을 빼곤 모든 단체들이 찬성하는 행사였다. 희망세상은 반대입장을 밝히고 '고이즈미 일본총리 방한반대' 펼침막까지 내걸었지만 이를 탓하는 단체는 없었다. 오히려 "희망세상이니까"하며 인정했다. 김 국장은 "많은 주민들이 마을에 NGO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얘기했다.

10년을 멈추지 않았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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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세상 사무실 벽면은 활동사진과 월 계획이 채우고 있다. 앞으로 십년 후에는 어떤 활동모습과 계획이 이 벽면을 채울까. 답은 바로 희망세상의 역사 안에 있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내년이면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희망세상. 한결같은 실천의 대가로 주민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고민은 있다. 김 국장은 "주민들이 보기에 앞으로 십년 후에도 희망세상은 주민들의 부빌 언덕일 수 있을까"라는 말로 고민의 일단을 내비친다.

그래서 희망세상은 '지역공동체 운동을 하는 활동가를 많이 배출하는 그릇'이 되고자 한다. 보다 많은 지역에서, 보다 많은 주민들이 지역공동체의 희망과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희망세상은 요즘 '어린이·장애인 전문도서관'을 세울 꿈을 키우고 있다. 김 국장은 "주민들 참여는 얼마든지 끌어낼 수 있다"며 도움줄 곳을 찾고 있다.

이 끝없는 자신감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아마 그 답은 십년을 하루처럼 주민과 함께 살아온 희망세상 역사 안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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