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 시인의 집 꽃밭모악산방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그를 만나지 못했고 시간이 한참 흐른 어젯밤 그의 시집을 꺼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그의 시를 읽다 잠든 아침, 멀리 손님이 찾아왔고 함께 점심을 했다. 그런데 그 분이 박남준 시인의 집을 찾아간다며 함께 가자는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묘하다. 어젯밤 그의 시를 읽었는데 다음날 그를 만나러 간다니 말이다.
그의 시는 소박하고 섬세하고 소년 같다고들 한다. 그가 살고 있는 집도 그런 소박한 함석지붕을 가진 시골집이다. 아마 초가집에 함석만 올린 집일 것이다. 그를 찾아가서 차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는 시 이야기가 아니라 농사 이야기였다. 호박을 어찌 심어야 하는지 그는 나름의 농사경험을 가지고 열심히 설명했다.
"호박은 말이죠? 처음에 나는 것을 꼭 따줘야 합니다. 그래야 이 놈들이 위기의식을 느껴서 호박을 많이 생산하거든요. 아, 그리고 처음 꽃 피는 것들은 대부분 수꽃인데 이것은 전부 따줘야 해요. 그래야 줄기가 많이 뻗죠. 그 다음에 암꽃이 피면 그땐 수꽃을 그대로 둬야죠. 뭐 많이 좀 빼먹으려고 하는 것이기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아 거름 말인데요. 오줌발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오줌에 거름이 많은데요. 일단 오줌을 받을 통을 두 개 준비해서 한 통을 채우면 다른 통에 채우죠. 그렇게 다시 한 통이 채워질 때쯤 되면 처음 통에 있는 것들은 모두 발효가 되거든요. 그럼 물을 섞어서 땅에 직접 뿌려 주면 최고의 비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였다. 그의 차를 마시면서 나눈 이야기들이다.
그는 이런 때는 꼭 농부 같은 사람인데 이틀 전 이 마을에 찾아 왔다던 호반새가 아직 자기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면서 서운해 하는 아쉬움이 많은 착한 사람이었다.
집을 떠나던 우리에게 그는 오늘 같은 날은 막걸리에 파전을 먹어야 한다면 지천에 전거리 들이라고 아쉬운 듯 말했지만 더 붙잡지는 않았다.
그의 시집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역시 그런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닮기 시들이다. 나는 그의 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만한 문학적 소양이 없다. 이 시집은 1995년에 나온 시집이니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다. 10년 된 시집을 소개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도시가 답답하여 산속에 혼자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그의 시를 읽어보기 바란다.
그 안에 산속에서 혼자 사는 남자의 향수가 그대로 담겨 있으니 말이다. 끝으로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라는 시집에서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이 시를 읽으며 사라지는 농민들의 얼굴과 그들의 꿈이 생각난다.
꿈같은 꿈같은
일터에서 돌아오는 낭군을 위해 들녘에 나가 나물을
캐고 봄쑥이며 냉이 씀바귀 나물무침이며 된장을 풀어
보글보글 뚝배기에 된장국을 끓이고 불을 때어 저녁밥
을 짓고 아! 그런 다소곳하고도 아미 고운 조선색시
다시는 없겠지요.
가르마 같은 논밭길을 걸어오며 모락모락 멀리 밥짓는
저녁 연기 바라보다 고단한 하루의 일과를 씻은 듯
털어내며 가슴 뿌듯한 행복으로 발걸음 재촉하는 그런
그런 눈매 선한 조선 사내도 다시는 다시는 없겠지요.
덧붙이는 글 | 박남준 시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모악산방이 있습니다.http://www.moacsanbang.com
농산물직거래운동을 하는 참거래연대에도 옮깁니다.open.farmmate.com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박남준 지음,
창비,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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