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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알려주고 있다. 그 답이란 무엇인가? 두 개의 여권에 200개가 넘는 스탬프를 찍었다는 여행자 박준에 따르면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가? 많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두려움,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사서 고생할 것 같은 두려움, 돌아와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두려움 따위가 모두 그 이유가 된다.
그 이유가 어떻게 여겨지는가? 전부 타당하다. 카오산으로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난다는 계획을 세워보자. 일단 시간이 문제가 된다. 직장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렵게 시간을 마련해도 문제다. 한 달 후에 직장에 아무런 문제없이 적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
학생이라면 어떨까? 방학이라는 여유시간이 있지만 걱정되기는 매한가지다. 또래들은 한 달 동안 영어학원을 다니는데 혼자 사치스러운 짓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그것은 무엇이든 걱정거리가 될 수 있고, 두려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을까? 여행자들의 말처럼 직접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럼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그 한 달은 정말 만족스럽게 살 수 있을까? 여행을 포기한 대가로 적응하기 위해 일을 하고, 영어실력을 위해 공부를 하면 만족하게 될까? 후회하지 않을까?
그들은 그래서 떠났다. 박준이 카오산에서 만난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바람처럼 지나갔다. 딱히 특별해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매일 그랬듯이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떠나게 됐다. '매일매일'이라는 단어가 답답했던 게다.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적지 않은 나이, 여행을 하는 동안 돈을 못 버는 것을 생각하면, 사회적인 기반이 흔들릴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떠났다. 그도 아니라면 매일매일에 진저리를 칠 것임을 안 것이다. 그러면 그 누군가는 어떻게 됐을까?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그 누군가는 누구보다 기쁘게 웃고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누워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다가 짐을 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그래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게다. 일상의 구속을 참을 수 없던 게다. 그로부터 2년이 넘도록 그 사람은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보며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서다. 그러면 그 누군가는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여행 중이다. 누구보다 시원한 웃음을 머금고서.
학교라는 공동체 생활을 어려움을 느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인도를 여행하는 누군가는 어떨까? 박준은 '대한민국 평균'에서 멀어지는 것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기야 누구나 그것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누가 그런 길을 선택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그 사람은 한껏 웃어 보인다. 진심으로 웃고 있다. 그러면서 되레 묻는다. 꼭 그 길만 가야하는 것이냐고. 그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금쪽같이 아껴 쓰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고 덧붙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꺼내기가,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라도 또래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홀로 인도를 여행한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는 없다.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그렇게 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지금 자연스럽게 '학교에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기성세대가 부끄럽게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여행을 통해서 자신을 알아 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고 있다. 웃으면서, 진지하게.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그들은 정말 평범하다. 언어를 못하기도 하고, 돈이 궁하기도 하고, 집을 걱정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돌아올 '이곳'에 대한 염려가 크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 때문에 여행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다. 돌아와 더 잘 살기 위해서다"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움을 뒤로하고 손에 든 지도와 인생이라는 지도 위에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여행을 왜 떠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려보자. 그 질문에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떤 결론을 내려줄까? 질문은 의미가 없어진다. 대신에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른 것을 알려준다. 누구나 그들처럼, 그 '누군가'처럼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돌아와서 더 힘을 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진솔하다. 그런 탓에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은 무게감이 두둑하다. 더욱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에 무게감은 더해진다. 여행을 떠나는 게 두려운가? 그렇다면 이것, 배짱이라고 불리는 무게감을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충전해보자. '여행 비타민'으로써 그 효과가 제법이다.
떠나지 않고는 없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여행의 로망이 가득하다. 또한 두려움 같은 것은 말끔히 치워준다. 그러니 무엇을 망설일까? 여행을 떠나자! 이 길 위에서라면 그 말을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온 더 로드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넥서스BOOK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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