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육필원고와 타자 원고. 작가들은 쌓여가는 원고지들을 보며 먹지 않아도 배불렀을 것이다.박태신
예전에 저도 400자 원고지에다 글을 써보았습니다. 그 느낌을 뭐라고 할까 내 글을 촉각으로 느끼면서 쓴다고나 할까요. 내 글을 읽다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빨간펜으로 직접 수정을 합니다. 한 줄 끝부분에 띄어쓰기 표시가 필요한 부분은 그 표시를 하기도 합니다.
보통 연습장에 초고를 쓰고 나중에 원고지에 옮깁니다. 초고는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들의 뭉치들이고 그걸 씨줄 날줄 정돈해 놓는 일이 원고지 쓰기가 됩니다. 연습장은 저 같은 경우 줄이 쳐지지 않은 누런 갱지를 선호했습니다. 글씨체는 보통 30도 정도 기울기 마련인데 그렇게 칸과 줄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써내려갔습니다. 필기 속도보다 빠른 생각을 잡으려면 이런 방식이 저에겐 좋았습니다.
갱지나 백지는 컴퓨터 화면의 빈 공간과도 비슷합니다. 컴퓨터가 좋은 점은 제 나름대로 자판을 마구 쳐도 글씨가 정돈되어 자리자리 놓인다는 것입니다. 문단별로 옮기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워드 앞에서 생각을 따라잡느라 땀을 흘리기를 즐깁니다. 아쉬운 것은 제 손으로 수정한 흔적을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빨간 펜으로 정성껏 수정한 원고는 저자와 편집자 또는 '초교의 나'와 '재교의 나'가 만나고 있다는 흔적입니다.
출판사 다닐 때 200자 원고지에 펜으로 쓴 역자 원고를 많이 보았더랬습니다. 빨간 펜으로 교정을 보고서 조판집에 넘기곤 했습니다. 지금도 원고지에 글을 쓰는 작가가 있을까요. 모르긴 해도 그런 작가의 원고를 맡게 되는 편집자는, 점점 보기 힘들어질 육필 원고를 접한다는 점에서 선택받은 이일 것입니다. 원고와, 워드 정리해서 처음 나온 초교를 대조하는 지난한 작업을 견딜 수 있다면요.
사진을 찍고 있는데 관리 아저씨인 듯한 분이 오셔서 1층 휴게실로 안내해 주십니다. 덕분에 문학의 세계 정확히는 작가들의 세계를 좀 더 살펴봅니다. 아! 세계사에서 펴내는 잡지 중에 '작가 세계'가 있지요. 그 책들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중 제가 좋아하는 작가를 특집으로 다룬 책을 잠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