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와 멋진 건물이 어울린 곳

[창이 있는 풍경 24] 파주 출판단지

등록 2006.06.30 09:15수정 2006.06.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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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효형출판사 전경. 계단을 돌아 올라가게 되어 있다. 언뜻 다양한 크기와 두께의 책들을 쌓아 비슷한 모양의 집을 지을 수 있겠다 싶었다.

효형출판사 전경. 계단을 돌아 올라가게 되어 있다. 언뜻 다양한 크기와 두께의 책들을 쌓아 비슷한 모양의 집을 지을 수 있겠다 싶었다. ⓒ 박태신

헤이리 마을을 들른 김에 파주출판단지도 찾아갑니다. 200번 버스 타고 대화역 방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멋진 신식 건물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출판단지입니다. 너무 넓어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는 곳에서 내렸습니다. 다행히도 그곳은 단지 내 상가건물이 있는 곳이었고 눈에 익은 출판사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출판사 건물들은 각각 개성 넘치는 모양새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출판사, 인쇄소, 유통업체 등의 집합체인 출판단지로 이사 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서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생산과 유통을 위해 마련된 곳이지만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영세한 출판업계의 특성상 단지 내로 들어오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출판 유통업체와 출판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사정을 조금 알고 있습니다. 출판사 개별로 도서관리와 영업을 하기보다는 유통업체가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또 인쇄나 제본 업체도 모여 있으면 운송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제가 좋아하는 출판사들이 보입니다. 좋아한다고 하기보다는 호감 가는 곳이라고나 할까요.

여행과 역사에 관련된 책을 많이 내는 효형 출판사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벽과 계단에는 베이지 색 나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곳 2층에는 자사 서적을 전시·판매하는 매장이 있는데, 손님이 요청할 때만 문을 여는 서점이라고나 할까요, 3층 영업부로 가서 문을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아늑하게 꾸며놓은 곳에서 마음에 드는 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카페의 역사>, <마음의 섬> 등이 눈에 띕니다. 수첩에 적어두고 빌려보기라도 해야 하겠습니다. <향수의 여정>이라는 책은 욕심이 나는 책입니다. 만약 읽게 된다면 저에겐 아주 새로운 '여정'이 될 분야입니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여행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여행지가 새로운 여행지(책)를 소개하겠지요.

처음 찍어둔 책 <에코토이, 지구를 인터뷰하다>를 삽니다. 환경을 사랑하는 이들의 여행담입니다. 계산하고서 수첩 같은 메모지를 몇 개 얻습니다.


a 효형출판사 매장. 이 곳의 책들은 모두 한 식구. 그 중 한 권을 가져왔다. 우둔하게도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다.

효형출판사 매장. 이 곳의 책들은 모두 한 식구. 그 중 한 권을 가져왔다. 우둔하게도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다. ⓒ 박태신


책을 만들어봐서 아는데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고 나서 책이 만들어져 들어올 때면 기대를 하기 마련입니다. 책이 잘 만들어지고 판매가 잘 되면 뿌듯해집니다. 서점에 가서 내가 편집한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특히 정성을 기울인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처음엔 편집부 문을 열었습니다. 편집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책을 기획하고 있을까요. 예쁜 건물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책들이 하나씩 서가에 꽂히는 즐거움을 이곳 식구들은 누리고 있겠지요.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을 만드는 것과는 별개의 것임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책이 좋아서 편집 일을 하려고 하기가 쉬운데 그저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보는 것과 책을 만드는 일은 결코 동일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싶다면 책 만드는 일에 대한 호기심 정도만 가지는 것이 낫습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하다보면 책 읽기가 더 어려워지거든요.

a 민음사 사옥. 이곳 계단 창가에서 듣는 비 내리는 소리는 어떠할까. 철지붕에 부딪히는 소리, 콘크리트에 맞닿는 소리, 창가를 스쳐가는 소리...

민음사 사옥. 이곳 계단 창가에서 듣는 비 내리는 소리는 어떠할까. 철지붕에 부딪히는 소리, 콘크리트에 맞닿는 소리, 창가를 스쳐가는 소리... ⓒ 박태신


민음사 사옥은 무척 큰 건물입니다. 살짝 안을 들여다보니 책 창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역사도 오래되고 만들어내는 책의 수도 엄청난 출판사입니다. 우연이지만 이날 제가 집에서 들고 온 책도 이 출판사에서 나온 <가스통 바슐라르>입니다.

창고에는 절판된 책도 소량 보관하고 있을 것입니다. 출판사에 있을 때 그런 책을 문의하는 전화를 가끔 받았습니다. 책값과 우편료를 송금 받으면 우체국에 직접 가서 보내주곤 했습니다. 가끔은 절판된 책을 새로 편집해서 내놓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책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지요. 예전 모양 그대로 펴내기도 하고, 책 사이즈를 키우기도 해서 내놓기도 합니다.

새로 편집된 책을 처음 본 독자는 그 책이 처음 인이 박히겠지만 이전 책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예전 책에 대한 인상이 남아 있어서 느낌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예전 것이 더 좋을 수가 있습니다. 새로 편집된 책은 아무래도 종이가 고급스러워지고 판형이 커지고 해서 값이 오르기 마련입니다. 그 책은 아무래도 새로운 분위기를 지니게 되겠지요.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공간도 달라지겠지요. 책은 그렇게 분위기를 지닌 카페 같다고 할까요.

민음사 건물은 3층에 조종석(편집부)을 둔 거대한 비행기 같습니다. 벌건 철판으로 둘러싸인 조종석 창 너머에서 조종사들이 다음 기착지를 향해 펜을 굴리고 있겠지요. 다음 기착지에 많은 책들을 내려놓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겠지요. 출판은 그렇게 새로운 세상에 책과 사람들을 내려놓고 만나게 하는 일입니다. 얼마 전 이 출판사가 창립 40주년을 맞이했답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민음사는 한길사, 열화당과 한 건물에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세 출판사 모두 거대한 비행기가 되어 이곳 '출판 공항'에 자리를 트고 있지요. 열화당 이사장님은 이 출판단지를 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분입니다. 그분이 알려주신 그분의 선친 집 ‘선교장’을 보기도 했습니다. 강릉 가시면 꼭 들러볼 곳입니다. 그곳에도 '열화당'이 있거든요.

a 민음사 사옥 전경. 철은 철대로 콘크리트는 콘크리트대로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창가로 녹이 번지지는 않을까..

민음사 사옥 전경. 철은 철대로 콘크리트는 콘크리트대로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창가로 녹이 번지지는 않을까.. ⓒ 박태신

덧붙이는 글 | 2회 걸쳐 파주 춣판단지 이야기를 싣습니다. 이번은 첫 번째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2회 걸쳐 파주 춣판단지 이야기를 싣습니다. 이번은 첫 번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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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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