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 먹은 노무현 대통령의 '식언'

[取중眞담] 4년 전 후보 시절의 '교육 공약'을 기억하시나요?

등록 2006.07.03 14:58수정 2007.06.15 15:59
0
원고료로 응원
a 2002년 7월 18일 서울 배명중학교에 일일교사로 방문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특강 이후 교직원식당에서 교사·학부모들과 함께 학교급식을 먹으며 교육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02년 7월 18일 서울 배명중학교에 일일교사로 방문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특강 이후 교직원식당에서 교사·학부모들과 함께 학교급식을 먹으며 교육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학교급식 먹기 1년형에 처함!"

오늘(3일) <한겨레>에 실린 <한겨레21> 광고 문구입니다. 국회의원, 공무원, 일부 교장 선생님들께 내리는 처벌이랍니다. 벌칙은, 매일 11시 지정된 중학교에 모여, 12시 종이 땡 치면 달려나가 선착순으로 줄을 선 뒤 10분만에 후딱 먹는 거랍니다. 어기면 화장실 청소.

'피식'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웃을 일만도 아닙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학교급식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역시 밥은 하늘이고, '밥심'을 당할 자가 없는 모양입니다.

문득, 2002년 7월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였던 시절, 서울의 한 중학교에 '짬밥'인 학교급식을 먹으며 교사 ·학부모와 교육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정치부 기자로 이날 노 후보를 취재하러 동행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노무현 대통령은 보통 사람보다 식성이 좋습니다. 그 날도 식판을 들고 학교급식을 배식받던 그는 주방장을 향해 "(한 주걱) 더 주세요"라며 1.5인분 가량의 밥을 '쟁취'했습니다. 자기 자리로 돌아와 수저를 들던 그는, 사회자가 "그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할까요"라고 묻자, "밥 먹고 합시다"라고 곧장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덕분에 취재기자들도 간만에 맘 편히 취재수첩을 놓고 수저를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 날 그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는 "(내가 만약 당선된다면) 교육인적자원부 장관(현 교육부총리)만큼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한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학부모 : 학부모이자, 송파구자치신문 주부기자다. 지금껏 교육부 장관이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과 같이 임기를 같이 해야 한다고 본다. 수시로 교육부 장관이 바뀌고 교육정책이 바뀌면 학부모나 아이들이 혼란을 겪는다.

"제가 듣기만 하고 제 의견이나 정책을 말하는 것을 뒤로 미루겠다고 했는데 이 문제만큼은 답을 명확히 드리겠다. 교육정책 일관성에 대해 국민불신이 크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는 큰 방향성과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변동이 심하다는 지적은 인정한다. 일관성만큼이나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교육부 장관의 임기는 대통령의 임기와 같이 하도록 노력하겠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그와 같은 뉘앙스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걸로 압니다. 제 기억으로는 '대통령 임기와 함께 하고 싶어했던' 정부부처는 유일하게 교육부였습니다. 첫 조각을 할 때부터 당시 고건 국무총리와의 조율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에 자신이 1순위로 생각했던 사람을 앉히지 못했습니다. 다른 부처의 장관을 뜻대로 미는 과정에서 교육부 장관은 다른 사람으로 양보한 셈입니다.

a 2002년 7월 서울 배명중학교에서 일일교사로 50분간 특별수업을 마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학교 식당에서 반찬을 고르고 있다.

2002년 7월 서울 배명중학교에서 일일교사로 50분간 특별수업을 마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학교 식당에서 반찬을 고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긴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대통령 임기 4년차인 지금, 교육부의 수장이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최장수 장관이었다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처럼 '롱런'한 분도 기억에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해 1월 개각 때는 당시 이기준 서울대 전 총장을 임명했다가, 안팎의 심한 반발에 부딪혀 5일만에 사표를 수리해 '역대 최단임 교육부 장관'이라는 오명을 남기기조차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오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끝내' 교육부 장관으로 앉혔습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의 반발과 보수언론의 '코드 인사'니 '회전문 인사'니 하는 단결된 비판에 불구하고 말입니다. 보수언론의 흑백논리에 동의하지도 않을뿐더러 김근태 의장 말대로 장관 인사권자야 대통령이니, 저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다만, 임기 초에 철썩같이 약속하고 다짐했던 '교육부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이 어느 순간 휘발유처럼 증발해버렸는지 안타깝습니다. 당시 먹었던 학교급식의 밥에 '기억상실증'의 약이 섞여 있었던 건가요? 지금 발생한 학교급식 파문과 교육부총리 인사 논란을 보면서, 딱 4년 전 이맘 때의 기억이 씁쓸하게 교차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밥은 하늘입니다. 그리고 '밥심'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 합니다. 학교급식을 먹으며 했던 노 대통령의 '식언'을 되씹어 보면 볼수록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후보 #학교급식 #민주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폭염에도 에어컨 타령이 없는 독일 폭염에도 에어컨 타령이 없는 독일
  2. 2 런던도 난리났다... 30분 줄 서서 먹는 한식의 정체 런던도 난리났다... 30분 줄 서서 먹는 한식의 정체
  3. 3 룸살롱 다녀온 택시 손님의 말... 우리 가족은 분노했다 룸살롱 다녀온 택시 손님의 말... 우리 가족은 분노했다
  4. 4 잘 나가는 행담도휴게소, 우리가 몰랐던 100년의 진실 잘 나가는 행담도휴게소, 우리가 몰랐던 100년의 진실
  5. 5 "이 정도로 지지율이 급등하는 건 내 평생 처음 봤다" "이 정도로 지지율이 급등하는 건 내 평생 처음 봤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