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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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6.07.03 16:59수정 2006.07.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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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 봐

솟은 그 주위를 지나가며 이 나무를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지만 미처 이런 열매가 숨겨져 있으리라는 건 알지 못했다. 나무의 열매가 우거진 나뭇잎에 가려 밖에서는 미쳐 보이지 않았기에 몰랐던 것이었다. 오시가 나무 밑에 서서 거기서 대체 뭘 하냐는 표정으로 솟과 수이를 올려다보았다. 솟은 오시의 발밑을 겨누어 열매를 내던졌다.


그 순간 솟은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 일부러 피어올린 연기는 아니었고, 우연히 난 불로 인해 매캐하게 뿜어져 나오는 연기도 아니었다. 마치 땅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듯이 연기는 넓은 지역에 퍼져 있었다. 수이도 그 광경을 보기는 했지만 자신만이 알아낸 탐스러운 과실에 더욱 관심이 있었을 다름이었다.

-저곳으로 가보자!

솟은 나무에서 뛰어 내리다시피한 후 연기가 나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영문을 모른 채 오시가 무작정 그 뒤를 따랐고 수이가 한참을 쳐져서 나무에서 내려와 그들을 뒤좇았다.

-여길 봐!

솟이 우뚝 멈춰 땅에 마치 내던져 있듯이 누워 있는 거대한 들소의 시체를 가리켰다. 들소는 눈을 뜬 채 죽어 있었고 배와 등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상한 것은 시체냄새를 맡고 올 독수리나 하이에나는 고사하고 파리 떼조차 모여들지 않고 있었다.


-먹을 수 있을까

평소 같으면 품에 지니고 다니는 날카로운 돌로 들소의 배를 헤집고 내장을 꺼내었을 오시도 뭔가 꺼림칙한 느낌에 들소의 시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먹을 것은 많아.

수이가 걸어오며 찡그린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솟과 오시는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곳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곳에는 타버린 나무와 풀 그리고 숯덩이가 되어버린 돌물들의 사체가 발 디딜 틈 없이 널려 있었다. 창공을 날아다니던 독수리도,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던 치타도, 사나운 표범도, 거대한 송곳니를 가진 검치호도, 떼를 지어 몰려다니던 영양과 들소 떼도 모든 것이 한 덩이 숯덩이로 화해 있었다.

솟 일행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고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보통의 불이 났다면 이 동물들은 대부분 안전한 강가로 몰려갔지 앉아서 불꽃이 자신의 몸을 살라먹도록 머물러 있지는 않았을 터였다.

-아!

수이는 사체 하나를 보고서는 땅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솟이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분명 자신과 같은 사람의 시체였다. 숯덩이가 된 얼굴은 눈두덩이 텅 빈 해골이 드러나 있었고 끝없는 절규를 하는 것 같이 턱은 벌어져 있었다. 그러한 시체는 주변에 두어 구가 더 있었다. 도무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시체를 보며 솟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불이 나고 있는데도 마을을 떠나 이리로 왔다는 거야?

오시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일은 없어! 이런 일은 없어!

솟은 오시를 위로해주러 갔다가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아이를 꼭 감싸 안은 채 숯덩이가 된 모자(母子)의 시체가 누워 있었다.

-그래 이런 일은 없어......

모든 것이 타서 누워 있는 죽음의 벌판에 살아 있는 세 명의 인간들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벌판의 끝에서 두 마리의 짐승이 느리게 다가오는 것이 솟의 눈에 보였다. 솟은 그것이 하이에나라고 해도 풀 한포기 남아나지 않은 참극의 벌판에서만큼은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 순간 벌판을 꿰뚫어버릴 듯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솟은 하늘을 올려보았지만 하늘에는 구름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솟은 거센 비가 내려 이 모든 비참하고 끔찍한 광경을 씻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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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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