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들판에 섬처럼 떠 있는 실상사

등록 2006.07.05 16:11수정 2006.07.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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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실상사 천왕문 앞에 서면 지리산 천왕봉이 하늘에 맞닿아 걸려있다.

실상사 천왕문 앞에 서면 지리산 천왕봉이 하늘에 맞닿아 걸려있다. ⓒ 한석종

실상사(實相寺)는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만수천을 끼고 너른 들판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한 여름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새록새록 자라나는 벼이삭들과 지리산 자락의 산색이 서로 어우러져 끝없는 초록 바다를 이루는 그 속에 한 점 섬처럼 떠있다.

남원 인월에서 뱀사골 방면으로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고 이 삼거리에 서서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면 지리산 천왕봉이 하늘과 맞닿아 걸려있고 그 발 아래 너른 들판이 펼쳐지는데 이 가운데에 실상사가 있다.


"무슨 절이 마을 앞에, 그것도 끝없는 초록 바다를 이룬 들판 한 가운데에 염치도 없이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서 있을까?"

나는 만수천의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소울음 소리가 귓전에서 점점 멀어짐과 동시에 시야에 또렷이 다가오는 실상사를 바라보면서 이런 의문을 품었다.

실상사에 이르는 길목에는 3기의 돌장승이 세워져 있는데 원래는 4기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1930년대 대홍수로 인해 1기가 물에 휩쓸려 없어지는 바람에 지금의 3기만 남았다고 한다.

장승은 남여 한 쌍씩 세워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곳의 장승은 남녀를 판별할 수 없는 형상으로 1기씩 띄엄띄엄 세워져 있다. 유달리 큰 눈과 코에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쓴 모습에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사찰은 깊은 산중에 자리 잡은 산지가람인데 비해 실상사는 평지에 그것도 너른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참으로 특이하다.


a 유달리 큰 눈과 코에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쓴 모습에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유달리 큰 눈과 코에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쓴 모습에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 한석종


a 한 손에 탑을 들고 천왕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이 독특하다.

한 손에 탑을 들고 천왕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이 독특하다. ⓒ 한석종


a 갖가지 모습들의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이는 백장암 3층석탑.

갖가지 모습들의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이는 백장암 3층석탑. ⓒ 한석종

웅장하고도 섬세한 지리산 자락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찰이 들어서 있는데 그 중에 평지가람 사찰은 이 곳 실상사 외에 단속사가 하나 더 있다. 하지만 단속사는 그 옛날 영화는 어디로 갔는지 석탑만이 덩그러니 남아 폐허가 된 채 세월의 무상함만을 달래주고 있다.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우리나라 선문의 효시인 ‘구산선문’은 이곳 ‘실상산문’에서부터 처음 시작된 우리나라 선풍(禪風)의 발상지다.


무심히 바라보면 사방이 터져있는 들판 한 가운데에 멋쩍은 듯 엉거주춤 서 있어 한편 생뚱맞게 보이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수많은 국보와 보물로 가득찬 보물 창고나 다름이 없다.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여럿 있으며 이 곳에 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실상사에는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33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보물34호), 석등(보물35호), 부도(보물36호), 삼층쌍탑(보물37호), 증각대사응료탑(보물38호), 증각대사응료탑비(보물39호), 백장암 석등(보물40호), 철제여래좌상보물(보물41호), 청동은입사향로(보물420호), 약수암목조탱화(보물421호) 등 보물급이 즐비하다.

실상사의 중심법당인 보광전 앞뜰에는 두개의 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데,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두 탑 모두 탑의 머리장식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정형을 보여주고 있다.

a 너른 들판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실상사는 꾸밈의 흔적이 없고 기품이 절로 묻어난다.

너른 들판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실상사는 꾸밈의 흔적이 없고 기품이 절로 묻어난다. ⓒ 한석종


a 실상사는 천년호국사찰로서 유독 일본에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실상사는 천년호국사찰로서 유독 일본에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 한석종


a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실상사 극락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실상사 극락전 ⓒ 한석종

실상사에서 북쪽으로 약 3km쯤 내려가다 보면 백장암 휴게소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비탈진 산길을 구비구비 돌아 1km쯤 오르면 백장암에 이르게 되는데 이 오막살이 같은 조그마한 암자에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낮은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의 구조와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기법을 보인다.

보통의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데 비해 이 탑은 너비가 거의 일정하며,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다. 층을 이루지 않고 두툼한 한 단으로 표현된 지붕돌의 받침도 당시의 수법에서 저만치 벗어나 있으며 또한 탑 전체에 조각이 가득하여 기단은 물론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인다.

실상사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전설이 구전되어 내려오는데 이를 증명하듯 실상사 보광전의 범종에는 일본지도가 그려져 있다.

스님들이 이 속설을 믿고 예불 때마다 종에 새겨진 일본지도를 두드리는 바람에 종에 새겨진 일본지도 중 훗카이도와 규슈지방만 제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독도 영유권 분쟁과 독도근해 탐사 문제로 양국이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는 이 시점에 실상사 창건 설화와 보광전의 범종에 얽힌 전설은 들으며 또 다른 느낌으로 실상사에서 일본을 체험하고 길을 나섰다.

a 1996년부터 10여년동안 실상사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기와로 만든 탑.

1996년부터 10여년동안 실상사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기와로 만든 탑. ⓒ 한석종


a 실상사의 영화를 짐작케하는 거대한 주춧돌.

실상사의 영화를 짐작케하는 거대한 주춧돌. ⓒ 한석종


a 실상사를 창건한 증각대사의 탑비.

실상사를 창건한 증각대사의 탑비.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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