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주름살이 저를 키웠습니다

장마철에 오신 부모님은 피곤한 아들 때문에 일찍 떠나시고...

등록 2006.07.04 19:03수정 2006.07.0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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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게 웃으시며 팔짱을 끼는 부모님 " 두 분의 주름살이 저를 키우셨습니다"
어색하게 웃으시며 팔짱을 끼는 부모님 " 두 분의 주름살이 저를 키우셨습니다"조태용
도시에서는 장마철에도 일을 하지만 시골에서는 장마철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작년 장마철에 오셨던 부모님은 1년만에 다시 장마철이 되어서 저희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동생이 전화를 했습니다.

"형, 형 집에 가려는데 가도 괜찮아."
"혼자서? 아니면 부모님이랑. 어 부모님이랑."
"그래 그럼 와라."

사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도 토, 일요일에 출근을 해야 했고, 저도 중요한 행사가 있었지만 1년만에 오시겠다는 부모님을 그런 이유로 못 오시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3시간 후 빗속을 뚫고 부모님과 함께 동생이 도착했습니다.

아내는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일찍 퇴근을 했고, 저 역시 행사를 일찍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년 전에 부모님이 처음 오셨을 때 우왕좌왕하던 아내는 능숙하게 요리를 하면서 푸짐한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원추리 꽃을 보시는 어머니 "꽃보다 당신의 인생이 더 아릅답습니다"
원추리 꽃을 보시는 어머니 "꽃보다 당신의 인생이 더 아릅답습니다"조태용
결혼 후 제 집에서 두 번째 차려드리는 식사였습니다. 상 위에 올라온 것을 보니 고추, 가지, 양파, 된장, 배추김치, 파김치 등 모두 어머니가 보내준 것으로 만든 요리들입니다. 맛있다고 드시는 감자국의 감자도 보내준 것이고, 그날 먹은 밥도 부모님이 수확해 보내주신 쌀이더군요. 결국 부모님이 생산한 농산물로 부모님의 식사를 챙겨 드린 것이죠.


그 날 저녁엔 섬진강으로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문척교에 차를 멈추고 잠시 다리 위를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강바람이 참 시원하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낚시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비가 많이 와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동생과 아내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걷던 길은 저 혼자서 걷고 달리던 길과는 다른 느낌이었고 풍경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6시도 못 되어서 일어나셨습니다. 비좁은 집이 답답할 것 같아 부모님을 모시고 산책을 했습니다. 때마침 서시천에 원추리가 가득 피었습니다.


"꽃 정말 많다. 어디 멀리 구경간 것보다 좋구나."
"부모님 오신다고 해서 제가 심어놓은 겁니다.”
"그래 참 좋다."

아버지께서는 얼마 전 다치신 다리 때문에 불편해 하셨고, 어머니는 관절염으로 무릎이 아프셨지만 그래도 자식과 함께 하는 산책이 즐거운지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아들 집 오니까 좋아요."
"며느리가 밥도 해주고. 아들이 꽃구경도 시켜 주니 참 좋다."
"어머니 자주 오세요."

환하게 웃는 조카  "부모님은  저 나이 때 제 모습도 기억하고 게시겠죠"
환하게 웃는 조카 "부모님은 저 나이 때 제 모습도 기억하고 게시겠죠"조태용
원추리 꽃이 환하게 핀 꽃길에서 두 분에게 다정한 포즈를 취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색한 듯 팔짱을 꼈습니다. 환하게 웃는 두 분의 모습이 원추리 꽃처럼 보기 좋았습니다.

점심에는 여수에 사는 형이 형수와 조카들과 함께 왔고, 우리는 반달곰이 산다는 문수사에 갔다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피곤했던지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잠에서 깨자마자 부모님은 서둘러 짐을 챙겨 시골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마도 제가 곤히 자는 것을 깨우기 싫어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얘가 피곤한가봐."
"먹고살기가 힘들어 그렇겠지."
"어서 갑시다."

제가 잠들었을 때 어머니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와 그런 말을 나누었다고 아내가 말하더군요. 제가 낮잠을 잔 것 때문에 부모님이 일찍 집을 나선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렇게 짧은 방문이 끝났고 부모님께서는 다시 고향집으로 떠나셨습니다.

남들은 싫어하는 장마철이지만 부모님이 장맛비와 함께 온다고 생각하니 지루한 장마도 싫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장마는 여전히 비를 뿌리고 있습니다.

평생 벌처럼 일하시며 자식들을 키운 부모님 "고맙습니다"
평생 벌처럼 일하시며 자식들을 키운 부모님 "고맙습니다"조태용

덧붙이는 글 | 농산물 직거래 장터 참거래 농민장터에도 올립니다.(open.farmmate.com)

덧붙이는 글 농산물 직거래 장터 참거래 농민장터에도 올립니다.(open.farmm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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