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조금 수상하다"

[서평] 박진규의 <수상한 식모들>을 읽고

등록 2006.07.06 09:34수정 2006.07.0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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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박진규의 <수상한 식모들>을 읽었다. '수상한'이라는 내 마음을 끄는 수식과 '식모'라는 1년에 한번도 내뱉을까 말까 한 단어의 결합이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의 출발은 단군 신화의 '호랑이'이다. 단군 신화의 '곰'이 아니라 호랑이라고? 그렇다. 웅녀가 되어 단군 신화를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곰이 아니라, 동굴에서 뛰쳐나가 그 후의 행방은 알 수 없는,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호랑이 말이다.


동굴을 뛰쳐나온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설 속에서는 호랑이 역시 스스로 여자가 되었다. 호랑 아낙이 되었고, 이후 수상한 식모들로 계보를 이어간다. '수상한 식모들'이란 어떤 존재들인고 하니, 그녀들의 모임에서 나온 다음 말을 보자.

"여러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세요. 우리는 혼돈을 출산합니다. 깃발 대신 식칼을 들고 부르주아 가정의 거짓 행복을 재료 삼아 마음대로 요리합니다." (책 134쪽)

그렇다. 돈의 노예가 된 가정들에 침입하여 그곳의 평화를 약탈하는 전사들이 바로 '수상한 식모들'인 것이다.

동학 농민 운동에서 한국전쟁, 80년 5월의 광주를 얘기하면서 미니홈피를 이용한 사이버 테러까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는 이 소설에는 다양한 사회적 사건이 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각하지는 않다. 무릎까지 오는 그리 깊지 않은 물이 넓게 퍼져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현실과 환상의 경계도 모호하다. 귀에 들어가 꿈을 갉는 쥐와 수상한 식모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란….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것은 아니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진지하고, 경쾌하지만 가볍지는 않은 소설이 바로 <수상한 식모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는 직접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느끼는 것이 각자의 정답일 테니 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소설 자체보다 '수상작가 인터뷰'가 마음에 더 와 닿았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읽었던 나는 작가의 인터뷰 자체를 부러워하면서 읽었다. 그것이 내가 동경해 마지않는 '작가'가 된 사람의 인터뷰였기 때문이다.


"...소설은 오래된 사이버 공간이다. 소설 역시 독자와 쌍방향 교류를 한다. 소설의 문장을 따라가다가 자기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소설의 힘이다."

이 같은 작가의 대답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소설의 문장을 따라가다가 머릿속에서 딴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도 멋진 소설을 쓰고 싶다' 뭐 그런 생각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 소설에 관한 걸 께적거리게 된 것 같다.

소설가 박범신은 심사평에서 "읽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섬뜩해진다. 혹시 '수상한 식모들'이 내 주변에도 있는 게 아닌가. 옆에서 잠든 아내 얼굴도 새롭게 꼼꼼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런 이상한 힘을 이 소설은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나는 어쩐지 살짝 미소가 지어졌는데, 그런 내가 조금 수상하다. 작가가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혁명을 꿈꾸는 충실한 노예'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다.

나는 깃발 대신 식칼을 들고 부르주아 가정을 농락했던 수상한 식모들과는 달리, 식칼 대신 연필을 들고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어떤 혁명을? 어떤 혁명인지도 모르는 이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그때 소설 속 수상한 식모 중 한 사람이었던 소장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충고하고 싶은 건 삶은 이벤트가 아니라는 거예요. 삶은 운명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사건에 대한 자발적이고 생존적인 대항입니다. 일부러 싸우려고 섣불리 뛰어들지 말아요." (책 62쪽-63쪽)

그래, 그렇군. 가만히 있어도 가로막는 것들이 충분히 많은 이 세상에서 운명적인 여러 사건에 자발적으로 대항하면서 사는 거지, 뭐. 그러고 보면 모두가 수상한 식모들이 아닐까?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저마다 저항하고 또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좀더 제대로 멋지게 수상해져야겠다.

덧붙이는 글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수상한 식모들>, 문학동네, 2005.

덧붙이는 글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수상한 식모들>, 문학동네, 2005.

수상한 식모들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지음,
문학동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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