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부시 미국 대통령.백악관 홈페이지
상당수 언론이 물음표를 찍었다. 미국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미사일 발사 전에는 난리법석을 떨더니 발사 후에는 오히려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며 차분히 대응하고 있으니 지켜보는 이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난쟁이' '깡패'로 여기는 부시 미 대통령이 어제는 '지도자'란 호칭을 쓰기까지 했으니 미국의 행보는 상식의 뒤통수를 강타한 것이 분명하다.
대다수 언론은 북한이 대포동 2호 발사에 실패한 점을 태도 돌변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에 실제적 위협이 되지 않음이 확인된 만큼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점도 한 요인으로 꼽았다.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 결의안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어려워졌고, 금융제재와 선박제재를 이미 취한 상태에서 미국이 추가로 내밀 제재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냉큼 동의하자니 왠지 찜찜하다. 언론의 분석틀에 잡힌 미국의 판단은 너무 단선적이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대포동 2호의 발사 실패를 보고 안도할 만큼 상황이 단순하지가 않다. 미국은 98년 대포동 1호가 발사되자 '패리 프로세스'를 입안해 미사일 발사 중단과 제재 해제를 맞바꾸려 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위협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함경북도 무수단리에는 또 다른 대포동 2호가 대기하고 있다. 대포동 2호 하나만 보고 대포동 전체의 위력을 '날아봤자 태평양'이라고 단정할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안도한다? 선뜻 납득할 수가 없다.
대포동2호 대기중인데 미국이 안도?
대북 제재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수년 째 봉쇄돼 있었고, 따라서 제재의 실효가 떨어진다는 지적은 맞다. 미국이 가시적으로 제재 방안을 꺼내들지 않고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일본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북한 만경봉호 입항 금지를 포함해 9개항의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했다. 또 이달 중으로 대북 송금금지 등의 추가 조치를 내놓을 계획이다.
일본이 어떤 곳인가? 미국과 군 일체화를 추진하는 나라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일심동체라 평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찰떡공조를 유지해온 나라다. 그런 일본이 발 빠르게 북한을 압박하고 나섰다. 미국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분석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부시 미 대통령은 어제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 전화를 걸어 일본의 대북 제재조치를 언급하며 "일본의 강한 메시지를 평가한다"고 했다. 이어 오늘 새벽에는 한·일·중·러 지도자와 전화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받은 반응에 만족한다"고 했다.
부시 미 대통령은 무엇에 고무돼 만족감을 표시한 걸까? 눈 여겨 볼 보도가 있다. <한국일보>는 "한미 양국이…모처럼 한 목소리를 내며 공조를 과시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공조는 우리 정부가 미국 등의 대북 제재 방침에 대해 동참 의사를 적극 표명함에 따라 가능해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이 "중국의 (대북)기조는 자제력을 유지하는 쪽이지만 종전보다 강경한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가정해 보자. 이미 대북 압박을 실행하고 있는 일본에 이어 한국과 중국마저 대북 압박 대열에 동참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미국은 가만히 앉아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펴고 북한은 사면초가가 된다.
물론 단정을 내릴 수는 없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쌀과 비료의 추가 지원은 중단하되 남북 대화 틀과 일상적인 남북 경협은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단순 비교하자면 일본식 고강도 압박이 아니라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내기 위한 저강도 압박이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미국 입장에선 고강도든 저강도든 한국과 중국도 압박 대열에 동참하는 게 중요하다. 이들 나라가 어떤 곳인가? 일본과 손잡고 북한을 압박할라 치면 어김없이 제동을 걸었던 나라들이다. 그 탓에 압박 효과는 반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