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이 맘껏 숨쉴 수 있도록 '포쇄'하라!

환수위 "역사의식 준비 없는 실록반환은 죄악에 가까워"

등록 2006.07.08 17:01수정 2006.07.0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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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조선총독 데라우치와 동경제국대학 교수 시라토리가 공모해 월정사 오대산 사고에서 약탈해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은 7일 93년 만에 영어의 몸이 풀려 고국의 품에 돌아왔지만 도쿄대가 14일 정식으로 인도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아직도 우리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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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영어의 몸에서 풀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 환수위제공

이 같은 사실은 이미 서울대 관계 교수들의 입장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됐으며 문화재청 실무자들도 다름없는 문화재청의 입장을 확인해 주었다. 조국의 품에 안긴 실록의 주인이 아직도 일본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현실은 실록이 약탈문화재이기 때문에 반환해야한다는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의 주장과는 달리 연구용으로 기증받는 방법과 절차를 따랐기 때문에 생긴 업보이다.

이런 사태를 우려한 환수위는 6월29일 "도쿄대가 서울대에 기증하고 기증행사를 한국에서 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며 "도쿄대 기증-서울대 반환의 방식을 사용한다면, 북관대첩비의 경우처럼 문화재청과 서울대가 직접 일본으로 가서 받아올 것"을 제안했다.

환수위 자문위원장인 김원웅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은 "서울대가 북관대첩비의 선례를 참고해 사전에 문화재청, 환수위와 상의해서 정상적인 반환절차를 밟았더라면 이같이 국민들을 혼돈에 빠뜨리지 않고 축제분위기에서 실록을 맞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내며 "뭔가에 쫒기 듯 서두르는 서울대가 굳이 국민감정을 거슬리면서까지 한국에서 기증식을 강행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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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도쿄대와 1차협상에서 환수위 측 참석자를 소개하는 간사 혜문스님 ⓒ 송영한

이어서 김 위원장은 "우리는 실록의 기증이 이 땅에 있는 수천 권의 실록에 단순히 47책의 숫자를 보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때문에 그토록 기증이라는 방법을 반대했던 것"이라며 "우리가 찾아오고자 했던 것은 우리 민족이 겪었던 쓰라린 식민지배의 수모를 씻어내는 상징적 의미였으며 실록을 정정당당하게 반환 받았을 때 비로소 민족의 자존심이 서고 양국관계가 우호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도 "일본은 먼저 약탈한 사실을 인정하고 713책의 대부분을 불태워버린 잘못부터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하고 "우리의 사초(史草)를 제자리에 되돌리는데 약탈자인 일본이 주인행세 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며 이 같이 간교한 자들을 일본 지식인의 양심세력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14일 기증식 못지않은 서울대의 또 다른 가슴앓이는 문화재청장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실록관리주체 지정에 있다. 서울대 A교수는 7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실록의 관리주체 지정에 대해 "일본 측에 창피한 생각이 든다"며 "문화재청이 실록과 관련해 논의를 요청해도 참석하고 싶지 않다"고 일부 언론에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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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협상에서 사이고 도쿄대 도서관장이 경과보고서를 환수위간사 법상스님에게 전달하고 있다. ⓒ 송영한

그러나 환수위 관계자들은 "창피해야 할 것은 자기 것을 자기가 '기증' 받아오는 서울대의 역사의식 수준"이라고 일축하고 "실록관리주체 논란은 서울대가 먼저 지피고 나섰다"고 주장했다.

환수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5월30일 환수위 관계자들이 도쿄대와 3차협상을 하기위해 일본으로 날아가고 있을 때 서울대는 3차협상(31일)후에 동시에 발표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도쿄대로부터 실록을 기증받기로 한 사실을 언론에 흘렸고 도쿄대는 서울대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협상 중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한바 있다“고 밝혔다.

또 “2004년 기초자료조사부터 시작해 2년여에 걸쳐 실록반환에 공을 들인 환수위는 기증이라는 방법이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실록은 민족의 것이며 관리주체는 국민의 합의에 따라 최적의 장소에 하면 된다는 공식입장을 견지하고 실록이 돌아올 때까지 모든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할 것을 제의한바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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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3일 환수위 출범식 모습 ⓒ 송영한

그러나 단 보름 만에 두 장의 서류교환으로 실록을 기증받은 서울대는 환수위의 공을 가로챘다는 여론이 부담스러웠던지 실록을 규장각에 소장해야 한다는 논리를 강하게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소위 '순종칙령론'과 '총독부 취조국론' 등 무리한 발언들이 일부언론에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대 A교수는 "을사늑약으로 이미 주권을 잃어버린 이토 히로부미 통감시절인 1908년 순종칙령에 의해 규장각에서 관리권을 행사했으므로 당연히 규장각이 관리주체가 돼야한다"고 주장했고 현직 국사학자인 B교수는 한 발 더나가 "1911년 총독부 취조국(문화재약탈을 주도하던 곳)에서 실록을 관리했으므로 월정사는 소유권이 없다"는 식의 식민지배를 인정하는 발언을 해 일본 현지에 있던 환수위 협상단을 경악하게 했다.

현행 1999년에 개정한 문화재보호법 16조는 "문화재청장은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가 불명하거나 그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 의한 관리가 곤란 또는 부적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지방자치단체나 그 문화재를 관리함에 적당한 법인 또는 단체(이하 이 조에서 "지방자치단체등"이라 한다)를 지정하여 당해 국가지정문화재를 관리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실록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뒤 문화재청장이 지정하는 단체에서 관리하게 될 것이며 이는 이미 지난달 27일 문화재청과 환수위, 서울대의 3자모임에서 합의한바 있다.

환수위 공동의장인 정념스님은 "일본 도쿄대가 약탈문화재 성격을 희석시키기 위해 서울대에 기증이란 잔꾀를 쓰는데 서울대가 들러리서는 것은 서울대의 역사인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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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도쿄대가 실록을 서울대에 연구용으로 기증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 송영한

환수위 간사인 혜문스님도 "실록반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도쿄대와의 협상이 아니라 내부의 확신(실록이 돌아온다는) 결여와 공감대 형성이었다"며 "환수위가 공식 출범한 불과 백일 전만해도 서울대는 반환의 '반'자도 꺼내지 않았으며 3월24일 문화재청과의 간담회에서 조차 관계자들은 국제법에 따라 실록이 돌아오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27일 3자 간담회에서 서울대 국제법 전문가 C교수 역시 "국제법에 따르면 실록은 돌아오기 힘들었다는 등 기증이 최상의 방법이었다는 논지의 발언을 했다가 환수위가 일본 국내법에 따라 일본 측의 기록을 증거로 이미 민사조정신청을 도쿄법원에 낼 준비를 했다는 말을 듣고 머쓱해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환수위 실행위원장 문만기 교수는 "규장각이 실록을 소장한다는 것은 약탈자가 소장처를 지정하는 선례를 남기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규장각이든 월정사든 실록이 민족의 것이며 소장은 관계법과 국민의 합의에 따라 최적의 장소에 하면 된다는 환수위의 공식입장을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서울대 정운찬 총장의 발언을 빗대 "역사의식의 준비 없는 실록반환은 죄악에 가깝다"고 서울대의 졸속한 반환 절차에 다시 한 번 유감을 나타내고 "그나마 22일 월정사에서 고유제를 지내기로 한 것은 다행스런 일로 실록이 어서 빨리 답답한 나무상자에서 나와 고국의 따스한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을 맞아 맘껏 숨 쉬며 포쇄(曝曬:실록을 햇볕에 말리고 바람을 쐬는 일)의 자유를 만끽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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