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남았을 때 하지 말고, 지금 하자!"

[서평]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의 <인생수업>

등록 2006.07.08 16:23수정 2006.07.0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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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목숨이 한 달밖에 안 남았다면 나의 장기를 기증하고 싶습니다.
○ 한 달만 산다면 많은 음식을 장만해 친지와 친척들에게 베풀고 싶다.
○ 무상(無常)하구나, 잘 살았다!
○ 여행을 하고 싶다.
○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야심경을 암송하며 영혼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비우겠다.
○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행하리라, 자녀들과 추억을 많이 만들리라, 그리고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하직하리라.
○ 마지막 한 달은 평생 같이 살면서 뒷바라지해준 아내와 세계일주 여행이나 하고 싶소.
○ 여생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면 가진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주고 싶다.
○ 내가 그동안 인연을 맺고 살았던 사람들과 모여서 다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다.
○ 기독교인인데도 믿음 생활에 충실치 않았다, 지금이라도 주님께 용서를 빌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해야겠다, 한 달 동안 자식들과 동거하면서 후회 없이 서로 사랑을 나누고 싶다, 내가 평상시 아끼던 물건을 내 손으로 버린다.
○ 추억과 젊음을 함께 했던 여인을 찾아, 같이 즐기던 밤낚시를 해봤으면….
○ 남편과 자녀들의 건강을 빌고 가고 싶다.
○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다, 이때까지 해보지 못했다.
○ 자식들에게 화목하게 살라고 말하겠다.
○ 미움과 원망을 품고 살았는데 풀고 가야겠다.
○ 가족을 모아놓고 파티를 하면서 패물 등 내 물건들을 나누어 주고 축복을 빌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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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겉표지. ⓒ 이레

지난 6월 말 어르신들을 모시고 1박 2일 동안 진행한 <아름다운 생애 마감을 위한 시니어 죽음준비학교> 캠프에서 '이제 내 삶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아름다운 생애 마감을 위한 시니어 죽음준비학교>는 현재 서울시립 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나는 전체 4기(1기당 20명씩 18회 교육)의 교육을 맡아 진행하는 강사이다.

앞의 글들은 흰 종이를 앞에 두고 어르신 한 분 한 분이 고민 끝에 적어내신 내용의 일부이다. 일부러 이름을 밝히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누가 어떤 글을 적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며 깊이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내린 결론은 "한 달 남았을 때 하지말고 지금하자!"였다. 캠프에서 돌아가 식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워보고, 맛있는 음식을 해서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고, 죽는 순간에 하려고 미루지 말고 자식들에게 화목하게 살라고 당장 이야기하고, 버릴 물건도 좀 정리하고...목숨이 한 달 남았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왜 지금이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라는 말씀들을 하셨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도 결국은 어르신들이 말씀하신 것과 같지 않을까. 저자는 살아있는 우리들은 지금 인생 수업 중이며, 그 수업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들 인생 수업의 가장 위대한 교사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라,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상실과 이별의 수업,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영원과 하루,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용서와 치유의 시간,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각 장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우리들이 살아가며 맺는 관계와 그것의 상실, 남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죽음이란 우리들 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나가고 있다.

사실 요즘처럼 '죽음' '죽음준비'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한 번 불고 지나가버리는 바람이 될까봐 오히려 걱정이 되는 그런 열풍이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이런 때에 딱 맞춰 펴낸 그렇고 그런 책은 아닌지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였으며, 역시 류시화의 글이었다.

어르신들과 지겹도록 '죽음'을 이야기하는 처지라서 더 절실했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 모든 것들의 근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이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를 이 책은 지루하다싶을 정도로 차근차근 들려주고 있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지만.

비록 아주 잠깐의 결심이며 실천이라 할지라도,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보기로 한다. 커다란 코끼리 앞에 앉아 책을 읽어주고, 그 코끼리는 가만 엎드려 그것을 듣고… 책 표지 그림이 보여주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보기로 한다. 이 책은 이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숙제를 내게 내주었다.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이레,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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